TV조선 (이하 )이 1월30일, 방송 5회 만에 시청률 25.7%(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종합편성채널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지난해 방송된 (이하 ) 역시 5.9%에서 시작해 18.1%로 막을 내리기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송가인 신드롬’을 비롯해 이 불러온 트로트 열풍이 깔아놓은 ‘꽃길’이 첫 회 시청률 12.5%로 이어졌던 결과다.
‘남성판’이 되며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우승자 대우다. 우승 상금은 1억원, 가장 굵직한 부상은 대형 SUV(스포츠실용차)다. 차량 가격만으로도 우승 상금 3천만원을 웃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기획일 때 여성을 앞세우고 시장성이 확인되면 남성을 투입하는, 그래서 남성 출연자들이 훨씬 안전한 위치에서 더 큰 과실을 얻는 형태는 엠넷(Mnet) 시리즈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과 의 우승 상금 격차는 그 단적인 결과다. 그러나 액수만이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아니다.
“100억 트롯걸을 찾아라”()와 “대한민국 1등 트롯맨을 찾아라”()라는 홍보 문구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여성은 ‘100억’짜리 재화로서 가치를 부여받지만, 남성은 ‘대한민국 1등’이라는 권위와 명예를 얻는다. 심지어 ‘100억 트롯걸’이란 수사는 우승자에게 ‘100억을 위한 행사 100회가 보장’된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방송과 별도로 100회, 혹은 그 이상의 노동을 더 해야 하고 그 행사가 회당 1억원의 출연료를 준다는 보장도, 그 100억원이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트롯걸’과 ‘트롯맨’의 간극은 또 어떤가. 에는 ‘걸그룹부’가 있지만 에는 ‘보이그룹부’ 아닌 ‘아이돌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걸’이라 칭할 때 남성은 ‘보이’가 아닌 ‘맨’이나 성별과 무관한 기본형으로 칭해지는 존재다. 같은 40대 참가자여도 ‘걸’이어야 하는 과 ‘맨’일 수 있는 의 세계는 다르다.
적잖은 참가자가 성적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멘트와 자막으로 이들의 몸매와 노출을 끊임없이 부각했던 은, 역시 적잖은 참가자들의 훌륭한 무대와 별도로 선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쇼였다. 을 기획한 서혜진 TV조선 예능국장은 당시 “참가자들이 예선을 치를 때 입고 온 옷들이 더 야했다. 그 의상이 그들이 딛고 선 현실이라고 생각했다”며 “선정성 안의 진정성을 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부대 미션’ 등을 통해 참가자들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쇼에서 참가자 상당수는 더 절박하게 섹시 댄스를 추고 ‘행사 톤’ 애교를 보여줄 기회 이상을 갖지 못했다.
물론 에도 선정성은 있다. 일부 참가자는 가슴팍을 드러내며 공중돌기를 하고, 상체 노출과 ‘물쇼’를 보여주기도 한다. 붉은 드레스 차림에 가슴띠를 두른 참가자들이 줄지어 선 오프닝이 미스코리아대회처럼 보였다면, 구릿빛 복근을 쓸어올리는 붉은 장미를 클로즈업한 오프닝의 한 장면은 노골적으로 여성 대상 유흥업소를 연상시킨다. 참가자가 성적 매력을 드러낼 때마다 장영란을 필두로 한 여성 판정단의 열광적인 반응을, 리액션 컷의 80%를 책임지는 붐을 제외한 남성 판정단보다 훨씬 비중 있게 비추는 의도도 명백해 보인다. 박명수와 더불어 대개 덤덤한 태도의 이무송은 ‘젊고 잘생긴 남자’의 유혹을 받는 부인 노사연의 눈을 가리려 하거나 짐짓 과장되게 분개하는 남편 역할을 수행할 때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즉, 은 근육질 남성들의 노출을 바탕으로 한 공연 처럼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탈’을 제공하는 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판정단과 시청자의 마음을 끄는 방식은 의 그것과 비교해 훨씬 다채롭다.
서혜진 국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의 인기 비결로 “퍼포먼스를 곁들인 무대”를 꼽으며 “과는 다른 버라이어티쇼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에서는 마술, 태권도, 비트박스, 난타까지 온갖 볼거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이 ‘버라이어티’(다양성)는 이 사회에서, 미디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허락받은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몸에 꼭 끼는 의상에 날씬한 체형, 완벽하게 꾸민 모습을 이상형이자 기본형으로 요구받은 참가자들과 달리 참가자들의 체형과 외모, 차림새, 움직임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다. 코믹한 실력자, 성실한 맏형, 재능 있는 효자, 타 장르 출신 강자 등 각자 사연 있는 캐릭터로 만든 대결 서사 또한 흥미로워진다. ‘유소년부’가 신설돼 참가한 9살 홍잠언은 를 구성지게 열창했고 심사위원단은 “귀여워~”를 합창했다. 그렇다면 상상해보자. 에 9살 여아가 출연했다면 어떨까?
여아는 왜 여자다워야 하나인간의 기본형인 남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여성에게는 특정한 상이 요구되듯, 쇼비즈니스업계에서 여아는 남아와 달리 ‘아동’이기 전에 꾸밈과 애교 등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해야만 소비될 수 있는 존재다. 홍잠언과 같은 나이에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던 의 한 출연자는 과거 영상 속 행사 무대에서 올림머리에 반짝이는 민소매 드레스 차림으로 노래한다. 반면 의 세 초등학생은 ‘아이다운’ 옷차림과 태도로 쇼의 다양성에 일조했고, 뛰어난 재능으로 초반 화제성을 이끌었다. 그러니까 과 의 상금 격차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국 아주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한국 미디어는 여성에게 공정한 도전의 장을 제공하는가. 한국 사회는 여성이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허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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