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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훈계하지 마라

정지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록 2020-02-04 22:05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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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는 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선거 개입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해 검찰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임종석’이란 이름은 ‘운동권’의 대명사다. 1980년대 20대였던 그는 학생운동을 한 경력으로 50대에 사회 주류가 될 수 있었다. 2000년대 지금 20대가 임종석처럼 학생운동을 하면 50대에 임종석 같은 유력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한겨레출판 펴냄·정지우 지음)의 서평을 운동권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저자가 “이를 갈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부분(‘대학 도서관을 둘러싼 상처들’)이 운동권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2019년 가을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서울대 총학생회가 도서관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의에 관심 없고 자기 앞가림에만 집중하는 20대에 대한 기성 지식인들의 각종 공격”이 쏟아졌다.

밀레니얼 세대의 대학생에게 학생회관보다 도서관이 중요하다. “대학교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의 거짓말이나 입시 지옥 끝에 취업 전쟁이 있는 현실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공기 같은 것이라 분노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왜 새내기가 도서관에 있어?’라고 말해도 되는 시기에 20대를 보낸 기성 지식인들의 기만이다.

도서관을 취업 전쟁의 진지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20대인가?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일이었다. …나의 공부, 나의 스케줄, 나의 미래만을 생각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면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다.” 청소노동자 파업에서 도서관을 제외해달라고 요구한 20대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 교육제도를 만든 기성세대의 자녀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해설서이자 386세대의 실패에 대한 보고서다. “청년층의 노력에 대한 냉소와 회의는 오히려 청년들이 항상 너무 노력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란 지적은 IMF 이후 전면화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완화하는 데 실패한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이다. 요즘 애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 문제라고? “교과서, 전과, 문제집,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권장도서, 논술을 위한 억지스러운 고전 읽기의 무덤에 파묻혀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학점 경쟁과 취업 경쟁은 대학생 또한 같은 처지로 내몰았다. 그들은 덜 읽고 싶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극’을 제시하는데, 20대의 실제 삶과 그들이 인스타그램에 전시하는 이미지의 간극이 대표적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정치사회적 기획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20대는 ‘소확행’이나 ‘노멀크러시’(출세나 화려한 삶에 집착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현상)로 몰려간다. 정규직, 결혼, 출산, 아파트, 사교육 등은 ‘N포 세대’인 20대가 이미 포기한 가치다. “이미 집을 보유한 기성세대는 끝없이 아파트값이 상승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불행한 세상은 더 이상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는 세상일 텐데” 집값이 계속 뛰는 세상은 20대에게 재앙이다. 기성세대는 훈계가 아니라 포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진명선 팀장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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