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7월11일 열린 이 대회에서 선보인 한복 패션쇼 때문이었다. 패션쇼에는 수영복 대신 노출이 심한 ‘코르셋 한복’을 입은 미스코리아들이 나왔다. 이들의 사진은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고, 여성의 신체를 규격화하고 전시하는 미스코리아 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이 분노한 이유는 코르셋 한복이 전통 의상인 한복의 아름다움을 훼손했다는 데 있었다. 둥근 선과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한복의 미가 노출이 많고 섹시한 드레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패션쇼를 담당한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품은 한복 세계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해당 논란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양쪽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에는 같은 견해를 보인다.
여성을 옭아매는 가부장제·소비자본주의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 신화를 해체하는 것은 여성 종속의 문화적·사회적 원인을 찾는 3세대 페미니즘의 관심사였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탄생한 3세대 페미니즘은 여성성의 차이를 고민했다. 남성이 지성과 이성이라면, 여성은 감성과 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여성 몸은 억압과 통제의 역사를 경험한다. 전족이나 코르셋, 강제 불임 시술, 성 상품화 등 여성 몸은 아름다움을 이유로 통제 대상이 되었고, 근대로 오면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자 자기계발과 생존이라는 자유주의적 질서 아래에서 내면화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탈코르셋’ 운동은 이처럼 내면화한 여자다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들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젠더 규범을 비판하고 여성 몸을 통제하는 구조를 폭로한다. 긴 머리와 붉은 입술, 분홍빛 뺨 대신 숏커트와 노메이크업을 선택하고 하이힐이나 꽉 끼는 치마 등의 의상으로 자신의 신체를 제한하는 것에 반대한다. ‘여성소비총파업’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비산업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진 이 흐름은 아름다움의 신화를 유포해온 미디어를 전면적으로 공격한다. ‘고추아가씨’ ‘마늘아가씨’ 등 지역마다 존재하는 각종 ‘아가씨 대회’부터 가수를 뽑는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아름다움은 직업적 조건의 하나 혹은 자기관리의 표상으로 만들어졌다. 자기관리와 스펙 만들기가 지상 과제인 2019년 한국 사회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일종의 사회체제 근간을 흔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움직임을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이 1991년 처음 출간된 나오미 울프의 (김영사 펴냄, 2016)이다.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울프는 아름다움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가부장제와 소비자본주의가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제2의 물결’이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외치며 고용 기회 확장이나 정치적·법적 권리를 키웠으나 여성의 힘이 커진 만큼 여성을 옭아매는 이데올로기도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 예가 바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여성의 아름다움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아름다운 대통령 부인, 동안 외모의 여자 최고경영자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에게도 외모에 대한 수식어가 붙는다.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을 여성의 고용·승진 조건으로 제도화하기도 한다. ‘대학 새내기를 위한 메이크업’이나 여학생 취업 클리닉에서 화장과 복장 등을 지도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는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려면 당연히 자신의 외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기 위해 다이어트나 성형을 하는 것은 ‘스펙’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반면 뚱뚱하고 화장하지 않은 여성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울프는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사회적 강요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사회는 날씬한 몸매와 동안의 외모를 얻을 수 있다는 꿈의 언어를 제공해 여성이 계속 미용 제품을 소비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울프는 “아름다움이 여성과 제도를 잇는 다리가 되는 기회를 잡도록 여성에게 가르치고는, 그것을 결국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여성이라는 증거로 삼는” 사회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여성 성형수술이 선택인 때가 되려면이런 사회에서 그는 여성이 하는 성형수술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이 미용 성형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여성이 수술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공동체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돼야 한다.
“자기 분야에 여성이 이끄는 교수진이 있고 몇 세대에 걸쳐 여성 거물과 벼락부자들에게 기부를 받아 넘칠 정도로 풍부한 교수진이 자신에게 문호를 개방할 때, 여성이 이끄는 다국적기업들이 젊은 여자대학 졸업자들의 재능을 강력히 요구할 때, 고전 학문의 5천 년 역사를 빛낸 여성 영웅들의 청동 흉상이 있는 다른 대학이 있을 때”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의 사회에 진출한 여성을 향해 사회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조앤 리비에르가 말한 ‘가면으로서 여성성’과도 연결된다. 리비에르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일수록 사람들, 특히 남성 앞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과장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자신이 위협적이지 않은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간단한 도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귀여운 여자’를 연기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허점이 있어야 한다거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모두 갖춘 여성은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도 ‘귀여운 여자’론의 일종이다.
모성·순결… 여성을 무력화하는 것들경제적·법적 평등이 강화되는 동시에 모성과 가정, 순결, 아름다움에 대한 신화가 강제돼 여성들을 무력화한다는 울프의 이 책은 많은 페미니스트의 지지를 받았다. 울프가 지적하는 강요된 선택은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와 얽혀 있다. 아름다움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구조는 이 책이 나온 지 약 3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여성에게 자유로운 선택과 기회 평등이 보장되는가?’ 울프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허윤 문학연구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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