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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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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싸움을 상상하는 시간

1800년대 억압의 역사를 SF소설로 푼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
등록 2019-11-07 10:55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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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함 말이야.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옥타비아 버틀러의 중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나 문화 관련 특강을 할 때 “늘 추천할 만한 작품은 없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때마다 추천하는 것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공상과학(SF)소설 (이수현 옮김, 비채 펴냄, 2016)이다. 원제가 ‘친족’(Kindred)인 이 소설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흑인 여성 다나가 노예제도가 남아 있는 1815년의 메릴랜드로 타임슬립(시간 이동)하는 내용이다. 인종과 젠더, 계급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SF 작가다. 버틀러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여러 차례 받았고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한 첫 번째 SF 작가이기도 하다. 1947년생인 그는 남성 작가 중심의 SF 시장에서 등 흑인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바탕에 둔 작품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19세기로 타입슬립한 20세기 흑인 여성

특히 그의 대표작인 은 노예제도를 중심으로 흑인 여성의 삶을 재현한다. 현재(1976년)를 살아가는 다나는 백인 남자 케빈과 결혼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흑인과 백인 사이의 구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인종의 벽은 높았던 것이다. 둘 사이의 격차는 이후 케빈이 다나를 따라 타임슬립하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백인 남성인 케빈은 19세기에도 안전할 수 있었던 반면, 다나는 매순간 위험에 처했다. 다나가 타임슬립할 때마다 만나는 흑인 여성 앨리스는 자유인이 되려다 실패한다. 결혼한 앨리스는 흑인 여성이기에 언제든 노예로 팔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이 같은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합법적으로 결혼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던 다나가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예가 있는 1815년 미국 남부의 농장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나는 갑작스레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 뒤 물에 빠진 백인 소년 루퍼스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강가에서 깨어난다. 1815년이라는 과거로 간 그는 소년을 구하고 다시 1976년으로 돌아온다. 이후 다나는 소년 루퍼스가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간을 건너뛰어 1815년으로 간다.

다나가 목숨 걸고 구했던 루퍼스는 다나의 기대와 달리, ‘평범한’ 백인 남성으로 자라난다. 어릴 적부터 앨리스와 함께 자란 루퍼스는 자신의 사랑을 폭력을 통해 성취한다. 앨리스를 노예시장에서 사고 그를 성폭행하는 루퍼스는 자신이 앨리스를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백인 농장주의 아들로서 루퍼스가 배운 것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뿐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루퍼스는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다나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어 한다. 여성에게는 인종과 성의 억압이 이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는 왜 싸우지 않았나’의 답

옥타비아 버틀러는 다나와 루퍼스의 관계를 통해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안과 밖은, 흑과 백은, 남성과 여성은 얼마나 엄밀히 구분되는가. 주체적 여성인 다나는 타임슬립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왜 자꾸 19세기로 끌려가는지, 어떻게 하면 돌아올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백인과 흑인의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차이 등이 드러난다. 백인 여성은 사용자고 흑인 여성은 노동자인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토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페미니즘이 생물학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다나가 1800년대 마거릿 와일린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 거듭난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규범에 맞추어 살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억압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포착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현대적인 눈으로 관찰함으로써 연대의 복잡함과 우리 삶의 교차성을 제시한다. 성의 정치학과 함께 인종과 계급의 정치학 역시 중요한 억압 기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은 세대 갈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흑인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70년대 미국에서 청년들은 왜 부모 세대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우지 않았는지, 해방을 앞당길 수는 없었는지 비판하기 시작한다. 버틀러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1976년에서 1800년대로 타임슬립한 여성을 제시한다. 젊은 미국 흑인 여성으로서 백인 남성과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있지만, 노예제도가 잔존한 시대로 떨어지자 노예가 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던 삶을 보여준다. 다나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덜 맞기 위해 동료를 고발하고 따돌리는 흑인 여성들을 만난다.

앨리스는 자식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나가 만류함에도 루퍼스에게 굴복한다. 다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인의 총애를 받는 ‘적’이었다. 연대조차 불가능할 만큼 삶의 조건이 엄혹할 때, 그들은 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싸울 수 없었던 것이다. 버틀러는 생존 자체가 투쟁이었던 노예제의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 등 여러 소수자운동의 역사를 성찰하라고 권유한다. 지금 시각으로 과거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삶의 조건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투쟁

현실적 영웅으로서 다나는 흑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루퍼스에게 노예를 풀어주도록 설득한다. 루퍼스가 앨리스와 루퍼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자식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다나 덕분이다. 다나는 그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투쟁을 한 것이다. 흔히 SF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옥타비아 버틀러는 SF가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임을 주장한다.

SF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사회의 거울상을 직조해낸다. 지금-여기의 억압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거에 어떻게 싸웠고, 앞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버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페미니스트들은 SF를 통해 억압의 역사를 상상하거나 억압이 없는 미래를 상상한다. 지금-여기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페미니즘 SF가 주는 것이다.

허윤 문학연구자·부경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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