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죽어야 법 만들까.”
이 문장을 입력한 뒤, 노트북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지난해 말 국회의 여성 법안 처리 현황을 정리하는 뉴스레터를 쓰던 때였다. ‘스토킹처벌법과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에 진척이 없다’는 소식을 전하는 부분에 중간 제목을 붙여야 했다. 원래 어떤 보도든 선정적인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생명과 관련한 내용이면 더더욱.
다른 표현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앞서 써놓은 본문을 재차 읽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집계한 수치를 인용했다. 지난 10년(2009~2018년) 동안 배우자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887명. 이는 민간단체에서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기록한 것이기에 ‘최소치’에 해당한다. 최소 4.1일마다 여성 1명이 친밀한 혹은 친밀했던 남성 파트너가 저지른 폭력으로 죽는다. 살인미수와 이에 준하는 위험까지 포함하면 최소 2.3일마다 1명의 여성 피해자가 발생한다. ‘아내 사망’ ‘전 애인’ 등의 열쇳말로 기사 검색을 해보면 최근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죽음을 멈출 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나는 표현을 수정하지 않았다.
“남성에게 맞아 죽기 위해 태어난 여성은 없다. 하지만 매일 어딘가에서는 가정에서 ‘강남역 사건’이 일어난다.”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2016) 머리말에서 아내 폭력을 ‘강남역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여성 폭력의 한 형태임을 명백히 밝힌다. 책의 부제는 ‘여성주의와 가정폭력’이다. ‘여성주의 시각’(feminist perspective)으로 성 중립적이거나 가족 중심적 시각의 가정폭력 인식이 은폐하는 성폭력의 발생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은 2001년 출간한 의 개정판이다.
887명,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가정폭력을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때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 맞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으로 개인화하는 것이다. 책은 가정폭력을 개인의 일탈이나 심리적 문제로 가두는 인식에 반대한다. “가정폭력적 접근 방식은 왜 때리는 사람은 ‘남성’이고 맞는 사람은 ‘여성’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남편이 스트레스 때문에 때린다면 왜 직장 상사나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은 안 때리는지, 술 때문에 때린다면 왜 아내들은 술을 먹고도 남편을 때리지 않는지, 분노 처리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라면 왜 그 분노를 언제나 ‘집안에서만’ 표출하는지, 폭력행위가 손실(형사상 제재, 이혼)보다 보상(분노 발산, 타인 통제)이 크기 때문에 사용된다면 왜 여성들은 이 방법을 쓰지 않는지, 종교와 성격 차이 같은 부부 갈등 때문에 때린다면 왜 남성들은 이혼한 이후에도 전 부인을 때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정희진은 아내 폭력이 일탈이 아니라 규범(정상적)임을 일깨운다. 우리를 둘러싼 “가부장제의 매트릭스” 속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길다. 인류사에서 아내 폭력이 ‘불법’이 된 시점은 인권 개념이 발명되고 여성운동이 발생한 뒤다. 18세기 프랑스 법은 아내 구타에 대해 위험한 도구 사용은 금지하되 때리고 차고 누르는 선에서 인정했으며, 19세기 영국에서는 매의 굵기가 남편의 엄지보다 굵지만 않으면 아내 구타가 정당하다는 ‘엄지손가락 법칙’을 발전시켰다. “오랜 세월 동안 가정폭력은 남성의 성역할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성역할의 비대칭성”에 있다. 정희진은 피해 여성 50명과 가해 남편 5명을 심층 인터뷰해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와 ‘남편의 착취에 맞서지 못하는 이유’를 친밀한 관계에 내재한 성역할에서 찾는다.
연구자: “주로 언제 폭력이 발생하나요?”
인터뷰이: “(…) 아침에 밥 먹으라고 (남편을) 깨우면 ‘여편네가 아침부터 재수 없이 잠자는 사람을 깨운다, 네가 매를 번다’고 그래요. 그러면 나도 너무 신경질이 나니까, ‘네가 밥을 먹어야 설거지하고 나가지!’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러면 이제 주먹이 날아오지요. 그렇잖아요? 여자는. 일단 남편 밥은 챙겨주고 나가야 하니까….”
여성의 ‘맞을 짓’이란 아내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뗄 수 없다. 아내 정체성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폭력을 유지한다. 아내는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지 않아도 폭력이 일어남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맞는다면 본인의 역할이라도 다 하는 게 속 편하다.
“설익은 강낭콩의 껍질을 벗겨서” “양말과 운동화를 세탁하지 않아서” “술을 못 마시게 해서” “휴대폰 검사를 거부해서”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아서” “성관계 동영상을 지워달라고 해서” “일을 그만두라고 하기 위해” 가해자들이 폭력의 이유로 내세운 말이다. 이렇게 “남편의 성역할은 아내의 ‘맞을 짓’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갖는” 반면, 여성의 역할은 아내·어머니·며느리로서의 ‘의무’이자 ‘도리’에 가 깝다.
“여성들은 매 순간 인간으로서 ‘권리’와 여성으로서 ‘도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남성 사회는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보다 도리를 아는 여성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근대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는 ‘안식처’이자 친밀성의 상징으로서 가족제도를 활용하며 아내 폭력을 교묘히 용인해왔다. 여성의 인권보다 가족 보호를 우선시한 것이다. 한국에서 1997년 제정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은 법의 목적으로 ‘가정 유지’를 지나치게 강조해 비판받았으며, 2002년 6차 개정 때에야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법의 목적으로 포함했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질적 격리가 어려운 점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연말·연초 정치권과 주요 언론의 관심은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여부에만 집중됐다. 이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이야기만 가득하다.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에는 잠깐 달라질까. 2017년 봄에는 국회에 소설 읽기 열풍(?)이 불었다. 한 국회의원은 동료 의원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으로 페미니즘 입문서의 ‘순한 맛’을 접했다면, 이제 을 읽고 성폭력을 막을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적 지위와 성역할 규범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폭력’만 없애려는 성폭력 대책은 폭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 때리기 쉬운 대상, 맞도록 방치된 생명들이 존재할 뿐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참고 문헌
자료집, 한국여성의전화, 2019년 12월10일.
, 르노 E. 워커 지음, 황애경 옮김, 1997년.
, 한국여성의전화, 2017년.
‘그 법은 국회를 통과했을까’, 뉴스레터, 2019년 1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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