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여자들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여자 두 명 오면 호텔 방까지 잘 갈 수 있게 처리해.”
지난해 SBS funE에서 공개한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와 그의 동업자 유인석,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투자회사 ‘유리홀딩스’ 직원 등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다. 유리홀딩스는 클럽 ‘버닝썬’의 지분을 가진 주주이자, 다른 금융회사들과 함께 사모펀드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성접대를 한 의혹이 제기됐다. 클럽 버닝썬의 폭행 사건으로 불거진 여러 의혹은, 성접대, 불법 촬영, 약물 강간 등이 연달아 폭로되며 ‘버닝썬 게이트’로 커졌다. 보도 직후 YG엔터테인먼트는 “성접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하지만 1년여가 흘러, 6월 시작된 재판에서 유씨는 성매매 알선 혐의를 인정했다.
정부 기획 매춘에서 엔터테인먼트 매춘으로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한류’ 스타와 강남 부동산 자본, 아시아 금융 자본이 손잡은 ‘버닝썬 카르텔’은 클럽의 흥행 성공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왔다. 손님이 1억원짜리 ‘만수르 세트’를 비롯한 비싼 메뉴를 주문하면, 이른바 ‘샴걸’(샴페인 걸)들이 떠들썩하게 손님 테이블까지 메뉴를 옮겨주며 클럽 전체에 손님의 구매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은 ‘물게’(물이 좋은 여자 게스트)를 유치할 경우 더 높은 수당을 받았다. 버닝썬이 파는 상품은 사실상 클럽을 찾은 ‘젊고 예쁜 한국 여자들’이었다. ‘버닝썬 물뽕’ ‘버닝썬 VIP룸’이라는 제목이 붙은 불법 촬영물을 글로벌 포르노 시장에서 유통했고, 누군가는 영상의 ‘주인공’이 되려고 클럽을 찾아 돈을 썼을 것이다. 버닝썬의 성공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이익을 얻으려 나선 주주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여자’들을 “준비”하여 거래를 원활하게 진행하고자 했다.
<페미니스트 타임워프: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반비 펴냄)의 공동저자인 여성학자 김주희는 버닝썬 게이트를 두고 “실로 ‘강간 비즈니스’라 부를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공모 조직과 그들의 태연한 일상에 경악했다”면서도, “새롭지 않은 것들의 새로운 조합 방식을 목격”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는 “새롭지 않은 것” 중의 하나인 “남성들 간의 거래 카르텔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성들의 환대를 매개하는 방식”으로서 ‘접대’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처럼 “발전을 일구는 일에 성차별적인 역할이 부여되고, 심지어 성범죄가 권장되었던 역사” 가운데 하나로서, 1980년대를 소환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88올림픽의 ‘피켓걸’로 동원됐던 것처럼, 전국의 수많은 여성 청소년이 올림픽과 관련한 해외 귀빈 맞이 행사에 동원돼 꽃술을 흔들었다. 물론 남성들도 동원됐다. 그들은 발전을 응원하는 ‘피켓걸’이나 ‘선녀’를 맡는 대신, 발전의 주체로서 올림픽 개막식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굴렁쇠 소년, 태권도단 등 능동적 역할을 맡았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서울 도심부 재개발을 통해 윤락여성을 비롯한 도시 빈민들이 각종 재활시설에 수용됐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가난’을 치우려고 한 것일 뿐, 성매매 업소들은 오히려 정부의 ‘기생관광’ 장려 정책으로 몸집을 키우고 호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김주희는 “발전주의 시대 정부 기획 매춘은, ‘한류 시대’ 엔터테인먼트 매춘으로 완벽하게 계승”된 것이라고 평한다.
박정희 암살 사건 통해 장자연 사건 기억하기
여성학자 김신현경, 김주희, 박차민정이 함께 펴낸 <페미니스트 타임워프>는 이렇게 최근 한국 사회에 불거진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치의 이슈를 과거와 연결해 비평한다. 저자들은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함께 보는 이런 방법론을 “병치”(Juxtaposition)라고 명명하면서, “기억을 페미니즘적으로 전유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의 문제를 사유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러하듯, 기억하기란 자연적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기억의 경합과 망각을 수반하는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소수자들은 역사에서 배제되기 쉽기 때문에, ‘기억하기’ 실천은 더욱 정치적인 의미를 띤다. 저자들은 증거와 사료에 매달리는 실증주의적 방법을 지양한다. “증거가 제출되지 못한 이면의 정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실천”으로서 기억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은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될 가능성이 큰 경우도 많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과거사 진상조사까지 했지만, 별다른 수확 없이 마무리된 고 장자연씨 사건도 그렇다.
김신현경은 ‘장자연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암살 현장을 소환한다. 이날 현장에 있던 여성들이 모델, 가수 등 연예인임이 밝혀지면서, “그 후 오랫동안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성애화된 추문은 이들의 존재 양식을 규정해왔다”. 김신현경은 “여성 연예인이 공적 ‘접대부’로 취급되어온 제도와 문화,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매개 삼아 번성해온 한국의 정치, 경제, 언론의 남성 동맹”을 풀어헤친다. 사건의 중요 행위자 가운데 하나인, 술자리 접대를 강요한 기획사 대표의 경력은 1980년대 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한 대표로서 기성 남성 동맹에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신인 여성 배우를 동원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이 리스트와 유력 일간지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 단순히 ‘스캔들’로 대하거나 ‘개인적 일탈과 불행’으로만 기억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페미니스트의 시간여행법
이 밖에 저자들은 ‘강남역 사건’과 유영철 연쇄살인을 병치하고, ‘양공주’와 ‘원정녀’를 연결하며, 2012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관련 논쟁을 다시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한국 군형법에서 동성애 관련 규정의 시간적 특성도 다룬다. 저자들은 법을 통한 가해자 심판과 처벌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건 이후’ 기억에 주의 기울이기를 당부한다. “기억하기란 사건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간주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현재와 미래에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몫으로 끌어들이는 수행이자 실천이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을 병치해 자신만의 시간여행기를 써볼 수 있다.
김효실 <한겨레>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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