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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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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성착취의 연결고리

아동·청소년 성범죄 변화 분석한 엘레나 마르텔로조의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등록 2020-03-08 00:15 수정 2020-05-03 04:29
십대여성인권센터가 2018년 11월 한국과 일본의 성착취 아동·청소년 피해 사실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2018년 11월 한국과 일본의 성착취 아동·청소년 피해 사실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중학생이 되고 나서 친구들이 SNS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만 안 하면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아서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자신의) 몸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친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걸 #일탈계, #살색계라고 부르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저도 친구들처럼 속옷만 입고 찍은 몸 사진을 하나 올렸는데 어떤 사람에게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받았어요. 제가 올린 사진이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한다며 자기 말대로 하면 학교 선생님이랑 엄마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지난해 11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공개한 성폭력 피해 상담 사례 가운데 일부다. 비슷한 시기 최초 보도로 ‘텔레그램 성착취’가 공론화한 뒤, 일부 언론에선 피해자 상당수가 10대 여성이라는 사실이 “놀랍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정말 놀랄 일일까? 텔레그램 성착취는 트위터 ‘일탈계’ 이용자를 목표 대상으로 삼기도 했는데, 앞의 발언에서 보이듯 ‘일탈계’는 이미 10대 또래 문화로 스며 있었다. 혹시 10대 여성들이 디지털성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 혹은 ‘예상해야 했던’ 일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 인식과 대응책 마련이 뒤처진 건 아닐까?

성착취 ‘수단’이자 ‘과정’인 그루밍

영국 미들섹스대학 범죄학 강사인 엘레나 마르텔로조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가로지르는 온라인 아동·청소년 성범죄와 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연구한다. 그는 정보기술 발달로 “변화하는 범죄의 양상과 확대되는 범죄 범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페미니즘을 포함한 여러 이론을 탐구할 뿐 아니라 경찰, 법의학 전문가, 청소년, 성범죄자 등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특히 그는 런던 광역경찰청 첨단기술범죄팀과 아동성도착전담팀의 온라인 성범죄 단속 현장을 직접 관찰하며 연구 자료를 모았다.

마르텔로조는 온라인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이해하기 위한 열쇳말로 ‘그루밍’(grooming)과 ‘성착취 이미지(영상 포함)’를 제시한다. 그루밍이란 성범죄자가 성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공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그루밍은 가상세계가 발달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1980년대 연구에서 현실세계 성범죄자들은 ‘아동을 학대하는 수법에 관한 전략 매뉴얼을 작성해달라’는 요구를 받자, ‘(아동을 대상으로) 동정, 칭찬, 우연한 접촉, 비밀 털어놓기와 특별한 관심 주기, 아이 부모와 친해지기, 선택에 관해서 아이 속이기, 두려움 조장과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키기, 포르노그래피 이용하기’ 등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아동·청소년이 성착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상황은 범죄자의 그루밍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해왔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를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었던 그루밍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면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영국에선 2003년 성범죄법을 개정해, 온라인 그루밍을 포함한 가상세계 속 접촉 행위를 새로이 성범죄에 포함했다.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착취 목적의 만남을 제안하거나 주선하는 행위 자체가 성범죄가 됐다.

성착취 영상에 대한 심각성도 재평가됐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소지한 이에 대한 형량이 6개월에서 5년으로 늘었고, 배포한 경우는 3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소지와 배포만 해도 성범죄자 등록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성착취 영상을) 소비하는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면 잠재적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요가 오프라인 학대를 지속시킨다. 범죄자가 한 일을 감상하는 사람 역시 “대리인에 의한 적극적 학대자”로서 범죄자에 해당한다.

엘레나 마르텔로조의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엘레나 마르텔로조의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온라인의 ‘낯선 친구’들

변화의 근거는 명확했다. 새로 출현하는 범죄 양상을 더 잘 이해하여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은 성범죄자의 동기와 범행 방식 모두를 바꿔놓았다. (…) 성범죄자들에게 아동·청소년을 학대할 새로운 기회를 주고, 성범죄에 관해 같이 이야기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성범죄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터넷을 변명거리로 이용한다.

현실세계에선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할 일들이 온라인에선 가능했다. 온라인에서 접근 가능한 엄청난 양의 성착취 이미지와 지지자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요”라는 정당화가 가능한 것이다. “인터넷은 아동 성도착자를 더 이상 단독 행동자가 아닌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큰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는 지지적 맥락을 제공한다.” 온라인 연결이 국제적 규모로 확대돼 수익성도 커졌다. “인터넷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이미지 배포를 촉진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범죄자들이 새로운 판매용 이미지를 제작하기 위해 더욱 많은 아동을 학대할 동기를 유발시킨다.”

또한 온라인 상호작용은 개인정보 노출에 둔감한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 방식과 결합했을 때 성착취 위험을 크게 높였다. 세계 각국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일정 기간 이상 채팅을 한 사람을 낯선 사람이 아닌 친구로 여긴다”. 영국의 한 연구에선 온라인의 ‘낯선 친구’에게 자신의 전자우편 주소, 휴대전화 번호, 소속 학교 정보, 사진 등을 공유하는 고위험 행동을 한 청소년이 20~30%에 이르렀다.

법만 바뀌어서 될 문제는 아니었다. 영국 경찰은 새로운 성범죄에 대한 지식과 기술 부족을 인정하고, 법 개정 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내부 인력의 훈련과 위장 작전에 자원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13살 여성 ‘루시’로 위장한 프로필을 만들어, 루시에게 접근하는 온라인 그루머 수십 명을 잡아들이는 식이다.

관심과 연대는 끊이지 않는다

마르텔로조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곳은 아동·청소년 인권센터 ‘탁틴내일’이다. 탁틴내일, 십대여성인권센터 등을 비롯해 수많은 여성·아동·청소년 지원단체들은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한국의 온라인 성착취와 관련한 법의 허점을 비판해왔다. 시대에 뒤처진 법제도가 1020 여성 집단을 얼마나 치명적인 성착취 위험에 노출시키는지를 자각한 시민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1월25일 텔레그램 성착취 처벌과 관련한 청와대의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겼고, 2월10일에는 국회의 국민동의청원도 10만 명을 돌파했다. 3월7일로 예정됐던 오프라인 시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됐지만,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관심과 연대는 끊이지 않는다.

“2020년의 여성들 역시 ‘더 이상 그 누구도 성착취의 피해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힘주어 말한다.”(2월14일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성명서 ‘우리는 모든 플랫폼에서의 성착취 종식까지 멈추지 않는다’ 중에서)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참고 문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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