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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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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너

등록 2019-07-11 11:22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며칠 전 새벽에 보았다. 집 근처 공영주차장 옆 세모 땅은 넓어봐야 서너 평 남짓 될까. 고추, 가지, 상추, 방울토마토가 줄 맞춰 자라나는데 담벼락에는 호박잎이 무성했다. 남자 노인은 허리를 구부려 잡초를 뽑고 있었다. 좀더 걸어 올라가니 담벼락과 보도 사이 좁은 공간마다 노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풀을 뽑고 물을 주고 상추를 뜯고 있었다.

지자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났어도 노인들은 좀체 보지 못했는데 그날 한번에, 많이도 보았다. 낮이나 밤에 노인들을 못 본 이유는 그들이 새벽에만 나타나 게릴라처럼 일하고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 모퉁이를 도는데 고추밭에 세워진 목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토지는 ○○법인 사업예정지로 소유권에 기한 목적물 반환 내지 방해 청구에 의거, 경작물을 ○일 ○시까지 수거해주기 바라며, ○일 이후 추가 경작물에 대해서는 민·형사적 책임을 지울 것이며, 그동안 원인 없이 토지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임료 상당의 부당이득을 청구할 예정이다.”

좀 놀랐다. 남의 땅이었다고?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저와 같은 경고문은 흔했다. 사유지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공유지의 10% 가까이가 무단 점유된다 하고, 적발돼도 변상금만 내면 되니 무단 점유는 끊이지 않는단다. 개인이 도로나 임야를 무단 점유하고 소유권까지 받는 경우도 있었다. 처벌 수위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보다는 공유재산 관리에 허술한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등 말이 많았다.

마을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인 초지가 있다. 되도록 많은 소 떼를 풀어놓고 먹이려는 주인들 때문에 초지는 이내 황폐해진다. 널리 알려진 생물학자 개릿 하딘의 논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은 공유 자원에 강제 규칙을 부여하지 않으면 공유지는 결국 파괴돼버리니, 정부가 개입하거나 돈 있는 이들이 사유지로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앞의 사례가 이 논지에 해당하겠고 무단 경작에는 책임도 물어야 하겠지만 여전히 반복된다면 원인은 모른 채 현상만 지우는 셈이 아닌가.

주택과 보도 사이 자투리 공간은 잔디를 가꾸지 않은 다음에야 쓰레기가 쌓였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군가 거기에 버리면 다른 사람도 따라 버렸다. 쓰레기 땅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하니 급기야 이곳에 쓰레기 버릴 시 처벌, 감시카메라(CCTV) 가동 중 경고장이 붙고, 아니라면 언제 치워질지 기약 없는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곧 공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식의 대형 펼침막이나 철문이 세워진다. 나는 동네 자투리 공간이 냄새나는 쓰레기장이나 기약 없는 건설 예정지가 아닌 꽃 피고 열매 맺는 텃밭인 게 좋았다. 소유권 여부를 몰랐다면 노인들에게 더 고마웠을 것이다.

욕심 많고 분별 없는 노인네일까

사유지는 논외지만 국공유지 보존 관리 차원에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처벌 위주의 행정보다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공공재(Public Goods)로서 토지 활용을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공동 텃밭이나 화단을 가꾸고 싶은 주민에게 동네 빈터는 노동, 여가, 관계가 싹트는 복리 공간일 수 있다.

땅을 보면 일구고픈 경작 본능이 몸에 남아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내가 본 노인들은 새벽잠은 없고 경작 본능은 있다. 그들을 모조리 상추 뜯어 쌈 싸 먹으려는 욕심 많고 분별 없는 노인네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아침마다 작물이 얼마나 더 자랐을지 궁금해하며 집을 나섰을 그들의 설렘까지는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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