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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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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검은 비닐봉지 사양합니다!

‘비닐봉지 사용 줄이기’ 전통시장에서 장바구니 들고 장보기…

‘쓰레기 제로’ 도전기 2탄
등록 2018-10-20 08:18 수정 2020-05-02 19:29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지난 4월 ‘쓰레기 대란’ 이후 쓰레기 문제에 눈뜬 기자가 6일 동안 ‘쓰레기 없이 살기’에 도전했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포장 문화와 더불어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 습관을 되돌아봤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무심코 또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를 쓴다. 부끄럽게도 그때처럼 ‘쓰레기 유발자’로 산다. 쓰레기를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쓰레기 줄이기에 나선 이들을 찾아나섰다. 정부의 비닐봉지 사용 규제 범위에 들지 않지만 비닐봉지를 덜 쓰려고 노력하는 전통시장에 가봤다. ‘쓰레기 제로’ 도전기 2탄이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빌려드립니다(보증금 500원)’ 10월17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망원시장. 이곳에서는 지난 9월부터 ‘비닐봉지 없는 시장’을 만들려고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빌려주고 있다. 장바구니 대여 프로젝트는 서울시 리빙랩 지원 사업으로 망원동 주민들이 만든 ‘알맹@망원시장’(이하 알맹)과 망원시장 상인회와 함께 시작한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게는 전체 80곳 중 16곳이다. 참여 가게 수는 적지만 업종은 곡물가게, 채소가게, 과일가게, 정육점 등 다양하다.

알맹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도 만들었다. 장바구니를 반납한 이들에게는 보증금 500원을 돌려주고 지역화폐 ‘모아’(200원)를 준다. 장바구니를 안 빌리더라도 개인 용기나 장바구니를 가져온 이들에게 지역화폐 모아(100원)를 준다. 지역화폐 모아는 음료수병 등 플라스틱 뚜껑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망원시장과 마포공동체가게 40여 곳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장바구니 대여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게에서 보증금 500원을 내고 장바구니를 빌렸다.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하는 알맹 매니저 고금숙(41)씨도 함께 장을 봤다. 귤을 사려고 과일가게에 갔다. 안타깝게도 귤이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었다. “사장님, 플라스틱 빼고 귤만 사갈 수 있나요? 귤은 장바구니에 담을게요.” 굳이 필요하지 않는 플라스틱 포장용기나 비닐봉지를 받지 않을 권리도 소비자에게 있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플라스틱 용기에서 뺀 귤을 장바구니에 담아줬다. 평소 같으면 플라스틱 용기에 든 귤을 비닐봉지에 담아줘도 그대로 받았을 것이다. 장바구니가 있어 플라스틱 포장용기와 비닐봉지 한 장을 아낄 수 있었다.

한 장의 비닐봉지와 175만 개 미세플라스틱

옆에 있던 고 매니저가 가게 위 알맹에서 제작한 알림판의 문구를 가리켰다. “한 장의 비닐봉지, 175만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됩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름 5㎜ 이하의 플라스틱 입자를 뜻한다. 처음부터 미세플라스틱으로 제조되거나 페트병·비닐봉지 등이 시간이 지나며 작게 부서져 만들어지기도 한다.

다음 장보기 장소는 반찬가게다. 알맹 프로젝트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게다. 이 가게 한쪽에는 거북이 배 안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반찬가게의 이복수(69) 사장은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 사진을 보고 쓰레기 문제에 관심 갖게 됐다. 손님이 오면 반찬을 담아주며 이 거북이 그림 이야기를 한다.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바다거북의 사체, 비닐봉지에 온몸이 갇혀버린 황새 등 우리가 무심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얼마나 자연과 생명체를 위협하고 있는지 말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손님에게는 아이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지 물어본다. 우리가 자꾸 일회용품을 많이 쓰면 아이들이 그걸 다 떠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시장에 장보러 온 사람들 손에는 장바구니보다 비닐봉지가 많다. 올해 10월부터 대형마트, 면적이 165㎡(50평) 이상인 슈퍼마켓 등 유통업계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대부분 점포 면적이 작아 비닐봉지 규제 대상이 아니다. 비닐봉지를 제한 없이 공짜로 줄 수 있다. 비닐봉지 인심이 후하다.

이번에는 장바구니 대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견과류 가게에 갔다. 이곳에서 땅콩을 샀다. 가게 사장님은 땅콩 1되(1.4㎏)를 흰색 비닐에 담고 그걸 다시 검은 비닐에 넣었다. 사장님은 비닐에 싼 걸 또 싸주는 게 익숙한 모양이다. “장바구니 있는데요. 비닐봉지 안 주셔도 돼요.”

집에 모셔둔 장바구니와 텀블러
‘알맹@망원시장’ 매니저 고금숙씨는 개인 용기를 가져와 반찬을 산다.

‘알맹@망원시장’ 매니저 고금숙씨는 개인 용기를 가져와 반찬을 산다.

4년 전 망원동으로 이사 온 뒤 일주일에 서너 번 시장에서 장을 보는 이윤형(36)씨는 알맹 프로젝트를 돕는 ‘알짜’의 멤버다. 올해 초 쓰레기 대란을 겪은 뒤 쓰레기 줄이기에 관심 갖게 됐다. 장을 볼 때 장바구니와 반찬용기를 항상 갖고 다닌다. “장볼 때 생선이나 두부 등을 가져간 용기에 담아달라고 하면 가게 사장님들이 처음에는 당황해하거나 꺼리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용기에 물건을 담아준다.” 물건 담은 용기를 씻어야 하지만 이씨에게는 기분 좋은 불편함이다. “용기나 텀블러 등을 가지고 다니니 집에 오면 그걸 씻느라 바쁘다. 그럴 때 오히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생동감이 도는 것 같다.”

이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집에 고이 모셔둔 장바구니와 텀블러가 대여섯 개씩 있다는 게 생각났다. 그것을 갖고 다니면 비닐봉지나 일회용 컵 등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쉽게 일회용품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사니 이걸 챙기는 게 불편한 일처럼 느껴졌다.

약간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고 매니저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가방 무게가 내 어깨를 파고든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다들 큰 가방에 텀블러, 빨대, 수저, 용기 등을 갖고 다닌다. “가방이 무겁다는 물리적 무게뿐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에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사회에서 혼자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일이 힘듦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나눠준 장바구니 든 손님 보면 뿌듯”
폐펼침막을 재활용해 만든 장바구니를 공짜로 나눠주는 남문시장.

폐펼침막을 재활용해 만든 장바구니를 공짜로 나눠주는 남문시장.

비닐봉지를 덜 쓰기 위해 노력하는 전통시장이 또 있다. “1회용 비닐봉투를 안 쓰시는 모든 고객을 칭찬합니다” “사장님 비닐봉투는 안 주셔도 됩니다”라는 알림판이 내걸린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남문시장에서는 지난 7월부터 폐펼침막을 재활용해 만든 장바구니 보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곳은 환경부, 시민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와 함께하고 있다. 이곳 시장에서 사과를 샀더니 비닐봉지를 주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아줬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가 공짜다.

남문시장에서 40년 동안 옷가게를 운영한 여성상인회 윤석남(66) 회장은 “되도록 비닐봉지를 쓰지 않고 장바구니를 권유하고 정 안 되면 종이가방에 담아준다”고 했다. “우리가 나눠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뿌듯”하단다. 하지만 장바구니를 줘도 비닐봉지를 원하는 손님들도 있다. 그런 손님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단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선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남문시장 등 서울 전통시장 4곳에 있는 상인 400명과 금천구 시민 851명에게 비닐봉지 사용실태 조사를 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박다효 연구원은 “한 가게에서 한 달 평균 비밀봉지 1천여 장을 썼다. 정육점, 슈퍼마켓, 두부가게 순으로 비닐봉지를 많이 썼다”고 했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검은 비닐봉지의 천국’ 전통시장에서 비닐봉지 없는 장보기가 가능했다. 장바구니 덕분이다. 두세 군데에서 장을 보면 비닐봉지가 5개 이상 됐던 예전과는 달랐다. 내가 사려던 물건만 담긴 장바구니를 보니, 대형마트에서 묶음 포장과 이중 포장된 물건을 샀을 때 쓰레기까지 산 찜찜한 느낌이 아니었다. 알맹이만 사는 알찬 경험이었다. 이제 내 일상에 필요 없는 껍데기(비닐봉지)는 가라.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비닐봉지 없는 시장’ 만들기 나선 ‘제로마켓’ 배민지 대표 인터뷰


당신의 쓰레기가 말하는 것


배민지 제공

배민지 제공

소셜벤처 ‘제로마켓’ 배민지(사진) 대표는 ‘알맹@망원시장’ 구성원이다. 망원동 주민인 배 대표는 장바구니를 빌려주며 ‘비닐봉지 없는’ 망원시장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쓰레기 줄이기가 주제인 잡지 (SSSSL)도 창간했다. 쓸은 ‘소비를 줄인(small) 느리며(slow)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생활(social life)’이라는 뜻이다.
쓰레기 줄이기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예전에 배달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했다. 그때 비닐과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걸 봤다. 그때부터 쓰레기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비닐봉지 없는 망원시장을 만들기 위해 나선 이유는 뭔가.
망원시장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시장이다. 매스컴에 많이 나와 찾는 이가 많다. 장바구니 대여 프로젝트를 하면 다른 곳에도 많이 알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쓰레기 줄이기’라는 주제의 잡지 도 만들고 있다.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후원받아 만든다. 11월에 세 번째 호가 나온다. 그 작업 때문에 바쁘다. 주제는 ‘일회용 컵 없는 생활’이다. 쓰레기 줄이기에 참여하는 카페를 소개한다. 작은 가게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지만 스스로 쓰레기를 줄이는 곳이 많다.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하며 일상이 바뀌었나.
일단 집이 깨끗해졌다. (웃음)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쓸데없는 소비를 줄였다. 환경을 생각하고 화학물질이 안 들어간 가루치약도 내 손으로 만들었다. 재미있는 변화다.
쓰레기 줄이기에 나선 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나.
제일 먼저 내가 어떤 쓰레기를 만드는지 살펴봤으면 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그날 생긴 쓰레기를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릴 수도 있다. 어떤 쓰레기가 많고 적은지, 무엇을 줄여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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