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년 촛불혁명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헌법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킨 ‘명예혁명’이었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불평등·차별 해소 같은 사회개혁 의제를 이루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 도약을 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시민정치의 효능을 경험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크로스 펴냄)는 너무나 비관적인 동기에서 출발해 너무나 모범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정권을 연구했던 두 학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때문이다. ‘민주주의 수호자’와는 태양과 토성만큼 거리가 먼 트럼프가 어떻게 권력을 쥔 것인지, 그가 미국 민주주의에 끼칠 해악은 어느 정도인지, 과연 ‘트럼프 이후’에 붕괴된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는 이들의 태도는 절박해 보인다.
이들은 최근의 민주주의 붕괴 사례는 대부분 투표장에서, 또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통해 합법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것이 더 위험한 이유는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혹은 헌정 질서의 중단처럼 독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이 없어 사회의 비상벨이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어떤 유형의 인물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를 판단하는 네 기준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규범 거부, 경쟁자의 존재 부인, 폭력의 조장·묵인, 언론 자유 등 기본권 억압. 물론 트럼프는 네 기준에서 모두 양성반응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법부를 공격하고, 비판적 언론을 공공연히 모욕하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해 무슬림(외국인)이라고 주장한다.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을 보거든 때려주세요. 소송비용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처럼 폭력을 선동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전에도 미국 정치사엔 헨리 포드, 휴이 롱, 조지프 매카시, 조지 월러스처럼 트럼프 못지않은 ‘극단주의적 아웃사이더’가 나왔지만 정당의 문지기 기능, 정치인들의 결단에 힘입어 이들이 권력을 잡는 것은 용인되지 않았다. 지은이들은 2016년 트럼프 당선 때는 이런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작용하지 않았을뿐더러, 더욱이 이는 급작스레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공화당은 이전부터 오바마 전 대통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고 사생결단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은이들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헌법·법률 같은 시스템 외에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 즉 상호 관용과 자제의 미덕이 절실하다고 짚는다. 민주주의가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치인들은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책 말미에 이르면,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눈부신 도약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트럼프도 고개를 돌릴 막말을 서슴지 않는 포퓰리스트가 보수정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2위를 차지했던 지난 대선에서 보듯, 정치적 양극화는 여전히 한국 정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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