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장식이다. 없으면 그 자리가 휑하니까 있는 거 같다. 오랫동안 내가 이성적 인간이라는 황당한 착각을 하고 살았다. 감정 앞에서 이성은 한탄강 물살에 떠내려가는 ‘쓰레빠’ 한 짝 같은 것이었다. 문제는 내 감정의 정체를 나도 모를 때가 많다는 점이고, 그 감정이 내 의지를 배신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내 감정을 배신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도 모르는데 남의 감정을 배려했을 턱이 없다.
“내가 저 먼지나 티끌 같은 존재구나 싶어지면서 어느 순간 신 앞에 납작 엎드리는 맘이 되더라.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김형경은 책 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나르시시즘의 극복과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다. 세상은커녕, 다른 사람은커녕, 내 똥 누는 일도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즈음에 마흔이 됐다. 자기를 놔서 자기를 껴안고, 자기를 버려 자기의 주인이 되고, 현재를 살기에 영원과 맞닿는 경지가 대체 뭔지는 궁금해봤자 내가 깨달을 턱이 없고, 다만 이제라도 나랑 그만 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 상처 주고 싶었다. ‘종교 쇼핑’이 시작된 까닭이다.
다리 꼬고 앉아 치른 ‘제55차 세계대전’차라리 졸음이 왔으면 좋겠다. 잡생각도 동났는데 명상의 끝을 알리는 종은 울릴 기미가 안 보인다. 코에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데만 집중하라는데 그것만 빼고 다 하는 것 같다. 처음엔 오만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이 ‘아무거나’ 마감 같은 것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왔으니 집에 돌아가면 악취가 진동하겠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걱정거리도 동나면 과거에 ‘그럴걸’이 올라온다. 그때 그렇게 말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줄걸, ‘제가 나한테 함부로 해’ 따위의 분노가 솟구쳐올랐다. 당장 고속버스표 끊고 올라가 그놈에게 삿대질을 해대고 싶다. 마음의 평화를 찾자고 왔는데, 다리 꼬고 앉아 ‘제55차’ 세계대전을 치른다.
가부좌 튼 지 30분쯤 지나면 이제 통증이 생각을 잡아먹는다. 척추뼈 하나하나가 “그만해, 당장, 당장 누워”를 외치며 꼬챙이를 내장 쪽으로 찔러댄다. 엉치뼈부터 발끝까지 피가 안 돌다보니 내 다리가 유럽처럼 멀게 느껴진다. 대체 돈 내고 이게 뭐하는 건지 싶은데 4박5일 중 첫 40분을 마쳤을 뿐이다. 시계고 휴대전화고 다 뺏겨서 도망도 못 간다. 묵언수행이라 다른 수행자들과 뒷담화도 못 깐다. 마크 엡스타인은 에서 명상 중에 어른이 된 자신이 부모가 돼 자기 안에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런 상태로 내 안에 우는 아이를 만나면 패대기칠 것 같았다.
40분 명상, 10분 걷기로 온종일이 간다. 보리밥 두 숟가락 정도에 강된장만 먹었다. 움직이지 않으니 배도 안 고팠다. 다만 이튿날부터는 온통 먹을 거 생각뿐이다. 내가 진짜 사랑한 것은, 냉면뿐이었나보다. 가부좌를 틀고 30분이 지나자 어깨와 엉덩이가 또 협공을 한다. 스님도 싫다. 절도 싫다. 몸의 고통이 왔다가 지나가고, 잡념이 왔다가 지나가고, 출렁이는 표면이 잔잔해지면 그 안에 사물이 또렷이 보인다는데, 왜 나한테는 안 보이는 걸까? 이렇게 하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건가? 나를 뭐하려고 이렇게까지 만나야 하나? 가부좌를 튼 나는 격랑에 출렁이다 뱃멀미가 날 직전이었다.
두려워 공격하고 두려워 매달린다4박5일이 끝날 때까지 몸의 고통에서도 놓여나지 못했다. 가부좌는 인체 구조에 맞지 않는 자세라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 법문에서 스님이 집착에서 놓여나는 법 등을 설법했는데 기억나는 말은 명상수련이 끝나자마자 짜장면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짜장면에 꽂혔다. 같이 수행하던 사람들 몇 명과 눈빛을 나눴다. 꽁지머리를 한 중년 남자는 4박5일 동안 척추가 녹아나는 고통을 겪다보니 감정에 따라 호흡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20대 여자는 마음이 고요해져 명상수행을 매년 한다고 했다. 50대 여자는 버르장머리 없는 회사 직원한테 따끔한 말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데 4박5일도 모자랐다고 했다. 수련이 파하자마자 넷이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 중에 짜장, 초월적 짜장, 나를 잊게 만드는 짜장이었다. 짜장은 얼마나 위대한 음식인가, 우리는 동지애를 느꼈다.
다음 차례는 성당이었다. 예비 신자로 교리를 매주 들었다. 나는 자세부터 삐딱했다. 당최 이해가 안 됐지만, 수녀님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요? 뭘까요?” 수녀님은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예비 신자 열댓 명 가운데 반은 눈뜬 채 조는 거 같았다. 70대 할머니만 예외였다. 다만 답이 질문과 상관없는 내용이고 또 길었다. “나는 수녀가 돼야 했는데, 부모님이 억지로 시집보내서, 영감을 만나 평생 이 고생을 해가지고.” 그래도 수녀님이 외롭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주 멍하게 있다보면 어떤 말은 마음에 남기도 했다. “성령을 배반한다는 의미는 뭘까? ‘저 사람이 싫다’라는 내 생각 때문에 그 사람 마음에 있는 성령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갖고 싶은 까닭은 두렵지 않고 싶어서였다. 공포는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어떤 악은 과도한 자기방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두려워 공격하고 두려워 매달린다. 너새니얼 브랜든은 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포에서 탈출하는 것이 기본 목표”라고 썼다. 어떤 ‘거대한 정신’에 연결된 느낌이라면, 내 안에서 또 타인 안에서, 자연의 모든 것에서 그 정신을 느낄 수 있다면 더는 방어하느라 나를 가둘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바로 여기, 쓰레기통과 고지서이제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가는 일만 남은 걸까? 가부좌를 틀다 다리가 괄호 모양()이 돼야 느낄 수 있을까? ‘살아 있음’의 경이를 말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말했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조지프 캠벨의 선집 을 낸 제자 다이앤 K. 오스본은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라고 무려 세 번이나 서문에 썼다. 바로 여기를 보니, 음식물이 퇴비가 돼가는 쓰레기통과 고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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