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제로’ (제로 웨이스트).
쓰레기 줄이기에 나섰다. 4월 초 재활용업체들이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하면서 시작된 ‘쓰레기 대란’을 겪은 뒤 쓰레기 문제에 관심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지나친 포장 문화,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 습관을 되돌아봤다. 예전에는 쓰레기를 버리면 그만이니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다. 먼저 4인 가구인 우리 집 쓰레기통을 살펴봤다. 일주일에 생활쓰레기 60ℓ, 플라스틱·비닐·스티로폼·캔 등 재활용 쓰레기 50ℓ, 음식물 쓰레기 10ℓ 정도가 나왔다. 예상보다 많은 양이었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을까. 6일 동안 ‘쓰레기 없이 살기’에 도전했다.
첫쨋날 4월21일
장을 보러 ‘없는 게 없는’ 대형마트에 갔다. 포장되지 않은 상품을 찾을 수 없다. 비닐포장 안에 뽁뽁이(비닐에어캡) 포장이 돼 있거나 이중 포장이 대부분이다. 특히 ‘1+1’ 상품이나 기획상품이 문제다. 두 제품을 하나로 묶느라 겹겹이 포장한다. 플라스틱 안에 비닐 포장된 기획상품 치즈를 집었다가 내려놨다. 싸지만 과대 포장이 돼 있어서다. 포장 안 된 과일이나 채소가 있지만, 이를 사려면 원하는 만큼 비닐봉지에 담아야 한다.
이날 고등어, 바나나, 오리고기, 와인, 수저와 젓가락 세트, 멜론, 소고기를 샀다. 모두 포장된 제품이다. 장보기 목록을 적어 갔더니 그나마 소비를 줄였다. 예전에는 ‘1+1’ 유혹에 못 이겨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곤 했다. 어쨌든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하고 돈을 쓰게 만드는 마트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 장을 다 보고 나가니 포장대 휴지통에 포장 쓰레기가 가득했다. 물건을 사자마자 버려지는 포장지들. 결국 우리는 물건을 사면서 쓰레기도 산 거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마트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쓰레기- 기저귀 5개, 비닐봉지 5장, 플라스틱 5개, 랩 30cm, 요구르트병 3개, 우유갑 250mℓ 1개둘쨋날 4월22일
아이 키우는 집에서 주로 나오는 쓰레기는 기저귀와 물휴지다. 그중 일회용 기저귀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매번 빨아야 하는 천기저귀를 쓰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하루에 일회용 기저귀 5∼6개를 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물휴지 안 쓰기다. 그동안 일주일에 100장짜리 물휴지 한 통씩 썼다. 이제부터는 손수건이나 걸레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편하게 뽑아 쓰는 물휴지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쓰레기- 기저귀 6개, 과자봉지 2장, 맥주캔 2개, 물휴지 5장, 우유갑 1ℓ 1개, 비닐장갑 2장셋쨋날 4월23일‘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들었다. 11살 쌍둥이 자매를 둔 홍주야씨는 1년 전부터 쓰레기 줄이기 실천기를 블로그에 올린다. 홍씨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갖고 필요 없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가 내 눈앞에서는 사라지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처리될까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쓰레기에 관심 갖게 된 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홍씨는 외출할 때 불필요한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손수건, 수저, 텀블러나 물병을 가지고 나간다. 장보러 갈 때는 시장바구니와 함께 면주머니, 스테인리스통을 가져간다. 집에서는 플라스틱 용기 대신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된 그릇을 쓰고 일회용 주방용품(랩, 비닐백, 종이타월, 비닐장갑 등)은 쓰지 않는다. 또 일회용 생리대 대신 생리컵과 면생리대를 쓴다. 머리 감을 때는 비누 하나만 쓴다. 빨래할 때는 화학세제를 가끔 쓰지만 친환경 세제인 과탄산소다를 주로 이용한다. 홍씨는 일회용품 안 쓰기부터 화학용품 안 쓰기까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생활 습관 모두를 바꾸었다.
쓰레기- 기저귀 6개, 과자봉지 2장, 비닐봉지 3장, 물휴지 3장, 식용유병 1개, 맥주병 1개넷쨋날 4월24일
화요일에는 출판면에 들어갈 책을 고른다. 이번주에는 새 책 80여 권이 왔다. 책은 종이나 비닐에 포장돼 있다. 간혹 뽁뽁이 포장까지 된 책도 있다. 이 포장지 역시 쓰레기가 된다. 종이 대신 비닐로 포장하는 이유는 어떤 책인지 바로 보이기 위해서다. 그럴 거면 차라리 포장하지 않고 보내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보내는 처지에선 언론사에 보낼 책이니 예의를 차린다는 의미로 포장하게 된다. 최소한 비닐 포장은 줄이고 싶었다. 책 배송업체 쪽에 말했다. “에 보내는 책 비닐 포장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책만 주세요.”
오후에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 식료품점에 갔다. 이곳에서는 서리태, 병아리콩, 현미, 토마토, 사과 등을 팔았다. 손님들은 물건을 담아갈 천주머니나 용기를 가져온다. 나는 병아리콩을 사서 가져간 용기에 담았다. 저울에 콩을 달아 표시된 가격을 휴대전화로 찍는다. 이렇게 하면 영수증이 생기지 않는다. 물건을 샀는데 어떤 포장지도 비닐봉지도 남기지 않는 경험이 새로웠다. 이곳 송수니 매니저는 “4월 쓰레기 대란 이후 손님이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며 “환경과 쓰레기 줄이기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쓰레기- 기저귀 5개, 맥주캔 2개, 비닐봉지 3장, 주방세제병 1개 다섯쨋날 4월25일서점에서 책을 샀다. 내가 살 책의 재고가 한 권뿐인데 하필 그게 비닐에 싸여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샀다. 책을 산 다음 커피숍에 갔다. 텀블러를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플라스틱컵과 빨대, 책 비닐포장지 쓰레기가 생겼다. 퇴근 뒤, 집 근처 시장에서 생선을 샀다. 생선가게 주인은 토막 낸 생선을 하얀 비닐봉지에 담고 다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아차 싶었다. 담을 통을 가져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비닐을 썼다. 마트처럼 생선이 포장돼 있지 않지만 그걸 사갈 때는 어김없이 비닐봉지에 담는다.
쓰레기- 기저귀 6개, 플라스틱컵 1개, 빨대 1개, 비닐봉지 3장여섯쨋날 4월26일
이제 밖에 나갈 때 텀블러를 챙긴다. 에코백, 손수건도 외출 필수품. 출근할 때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텀블러에 담았다. 점심 먹고 간 커피숍에서도 텀블러를 썼다. 플라스틱컵 2개를 아낀 셈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텀블러를 닦아야 하는 일은 그리 귀찮지 않다. 사무실에서 생기는 쓰레기는 또 있었다. 기사나 보도자료 등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출력하지 않았다. 출력할 때는 이면지를 쓴다. 이날 내가 줄인 쓰레기를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자료 종이와 컵이 쌓여 있었을 텐데. 쓰레기를 줄임으로써 얻는 행복을 알게 됐다.
쓰레기- 기저귀 5개, 휴지 8장, 물휴지 5장, 젤리 봉지 2장나는 그동안 쓰레기 유발자였다. 줄일 수 있는 쓰레기를 줄이지 못했다. 편하게 뽑아 쓸 수 있는 물휴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쓰고, 쓰지도 않을 공짜 샘플 화장품을 받고, 과대 포장된 물건을 샀다. 소비로 행복을 얻는 것도 문제였다. 갖고 싶은 것은 끝이 없고, 가치를 잃은 것은 쓰임을 다 하기도 전에 버렸다. 지갑을 열라고 권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며 존재했다. 이런 나에게 의 지은이 비 존슨은 가정 내 쓰레기를 줄이는 다섯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절하기, 필요하며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줄이기, 소비하면서 거절하거나 줄일 수 없는 것은 재사용하기, 거절하거나 재사용할 수 없는 것은 재활용하기. 그리고 나머지는 썩히기.”
이제는 ‘쓰레기를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내가 버린 일회용품이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유갑 5년, 종이컵 20년, 플라스틱 제품 50~80년, 일회용 기저귀와 비닐봉지는 100년, 스티로폼은 500년 이상이라고 한다. 쓰레기는 환경을 파괴하고 결국 우리 건강을 해친다. 이런 쓰레기의 악순환에 맞서 ‘쓰레기 제로’ 실천가 비 존슨은 “쓰레기 제로의 미래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지 계획하고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아이들에게 상속재산을 남길지,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지식과 기술을 남길지 선택하자”고 말한다.
계속 쌓이는 쓰레기 앞에서 결심한다. ‘오늘의 쓰레기를 생각하며 내일의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야지.’ 성공 확률이 영(0)에 가까운 ‘쓰레기 제로’ 도전기의 결론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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