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미국 뉴욕은 전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도시였다. 1847년 감자 대기근 뒤 아일랜드에서 20만여 명이 뉴욕으로 이주한 데 이어 이탈리아인, 독일인, 체코인, 러시아·폴란드 등에 살던 유대인, 중국인 등이 몰아닥쳤다. 2.6km²당 29만 명이 거주하는 전례 없는 일(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최고 과밀은 2.6km²당 17만여 명이었다)이 벌어졌다. 집주인들은 채소를 기르던 뒤뜰 텃밭에 뒤채를 짓고 거기에 2층, 3층 겹겹이 쌓아올려 물리적으로 가능한 만큼 칸을 나눴다. 이전에 2가구가 살던 집은 10가구가 사는 곳으로 변신했다. 환기되지 않고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먹방에서 어린아이들은 “숨이 막혀” 죽기도 했다. 이런 공동주택에 뉴욕 인구 4분의 3이 살았다. 세입자는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도 평균 성인 남성 한 명이 일주일 동안 버는 돈을 집세로 냈다. 반면 집주인은 25~40%의 높은 임대수익을 올렸다. 이처럼 빈민을 쥐어짜는 공동주택 소유주는 정치인 등 ‘번듯한 사람’이기 일쑤였다.
를 쓴 제이컵 A. 리스(1849~1914)는 ‘폭로 저널리즘’이라는 새 장르를 일군 언론인이다. 카메라를 든 사회부 기자였던 리스에게 뉴욕의 미로 같은 골목길은 취재거리로 넘쳐나는 현장이었다. 그는 막 도입된 카메라 플래시를 이용해 그전엔 렌즈에 담아낼 수 없었던 풍경을 포착했다. “빛이 어둠을 몰아냈다”는 말 그대로 그는 “플래시로 어둠의 세계를 빛의 세계로 이끌어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방문하면서 나름의 독특한 일상을 설명한다. ‘타고난 브로커’인 이탈리아인들은 동포에게 일자리를 중개하고, 과일가게·구두닦이 업계를 독점했다. 흑인들은 백인 하층민보다 훨씬 청결하고 예의 바른 세입자였지만 오로지 ‘니그로’라는 이유로 훨씬 높은 월세를 냈다. 영어에 서툴렀던 체코인들은 주로 담배 제조업에 종사했는데 이는 집주인들이 월세를 높게 책정하면서 담배 만드는 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리스의 지인은 “뉴욕이야말로 ‘저가 의류’의 메카”라고 자랑했다. 이는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들이 반바지 12벌당 고작 45센트를 받는 저임금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동주택보다 훨씬 더 비참한 곳도 많았다. 하룻밤 15센트짜리 숙박업소는 칸막이 없이 침상만 가득했고, 10센트짜리 잠자리엔 매트리스만 있었다. 7센트짜리는 대들보 사이에 담요를 매달고 숙박객을 맞았다. 바닥에 누울 수 있는 곳은 5센트,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복도는 3센트, 방을 가로질러 빨랫줄을 묶어놓은 곳은 1센트. 1센트짜리 숙박객들은 빨랫줄에 겨드랑이를 걸고 몸을 지탱하며 잤는데, 아침이 되면 방 주인은 줄을 풀어 사람들을 밑으로 떨어뜨려 깨웠다.
리스는 “노동자들은 괜찮은 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다. “집은 노동자를 위해, 그들의 노동을 부리는 고용주들에 의해 지어져야 한다. 그리고 공동주택을 ‘좋은 재산’으로 여기는 낡고 냉혹한 개념부터 버려야 한다.” 그가 해답으로 내놓은 것은 21세기 한국에도 적용되는 관점이다. “공동주택을 ‘좋은 재산’으로 여기는 낡고 냉혹한 개념부터 버려야 한다. ‘박애와 5%의 임대수익’은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속죄의 내용이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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