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인생의 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지금은 더 이상 아니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절실하던 때가 있었다. 올여름 한국에서 81살의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이 연출하고 다이앤 레인이 주연으로 나온 을 봤다. 프랑스 칸에서 파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맛난 음식 등 유쾌한 탐닉거리로 넘쳐나는 영화를 수없이 눈물을 훔치며 봤다.
뜻밖에 받은 초콜릿 같을까마지막 장면, 장미 모양 초콜릿을 짓궂은 표정으로 입에 넣는, 일탈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내의 얼굴을 보며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인생의 휴가란 뜻밖에 선물받은 장미 모양 초콜릿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아름답고 재치 있고 지적이며 극중 다이앤 레인처럼 망가진 자동차 하나쯤은 거뜬히 고칠 만한 능력자인 그들. 현명한 아내이자 사랑에 넘치는 엄마. 성공한 남편의 번듯해 보이는 보살핌의 언저리에 머무는 여자. 언젠가 세 아이의 엄마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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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남편이 아닌 멋진 남자가 내 인생에 나타나면 좋겠어.” “그래서? 그다음엔?”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사랑하는데?”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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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설픈 고백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 서글프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럼에도 그 안에서 자그마한 일탈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일탈이라고 해봐야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우리 집 소파에 앉아 테킬라 샷을 털어넣고 손등에 뿌린 소금과 라임즙을 핥아먹는 정도였지만.
남자의 성공 곁에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 속 카메라맨의 사진에서처럼, 아내의 얼굴은 쉽게 지워지고 남편 얼굴만 남는다. 누구도 다이앤 레인이 연기하는 성공한 영화제작자의 아내 앤이 찍는 사진과 앤의 시선에 포착된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는다. 모험은 사라지고, 추억하고 지키고 보살피는 일상만 남은 그녀들에게, 삶의 의미란 자신이 아닌 그 밖의 것들로 채워진다. 더디게 흘러가는 듯한 세월도 어느덧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면 복잡다단한 삶의 조각은 썰물처럼 빠진 뒤이다. 폐허를 채울 만한 자신은 남아 있지 않다.
나의 그녀들에게도, 그녀들을 기다리는 파리가 있을까. 인생의 휴가란 앤이 찾아가는 파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 짜인 삶에서 어긋난 사건 속에 있었다. 흐트러진 여정에 당황하고 그럼에도 모험을 걸어보는 일. 그러나 인생의 휴가를 맞게 되면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 이미 인생도, 당신도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삶은 거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되돌아가더라도 달라진 자신을 선언해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 한 친구의 휴가와 완전히 바뀌어버린 삶에 대해 조금만 풀어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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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를 만난 것은 연말 회식 자리에서였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소셜미디어 공간을 통해 일상을 가볍게 엿보는 정도로 시작했다. 친구는 10년차 가정주부였고 그 역시 가정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을 살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림은 한 겹 허상처럼 떨어졌다. 별거와 다름없는 부부 사이, 육아와 가사, 혹은 직장에 대부분을 쏟아넣는 외로운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친구가 열심히 올리는 포스팅을 지켜보던 남자가 몇 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일상의 안부를 묻는 수준이었다. 따로 만날 약속은 잡지 않았다. 약간의 설렘은 더딘 일상을 지내는 작은 활력이 되었지만 큰 의미는 아니었다.
어느 날 밤, 남편과의 다툼 끝에 친구는 무작정 집을 나와 친한 언니를 찾았다. 비 오는 밤이었고 그간 쌓아두었던 설움과 분노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나왔다. 완벽한 겉모습의 결혼생활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실성한 듯 울었다. 탈수 증상을 보인 친구는 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고 진정제를 처방받고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친구는 자신의 머리맡을 낯선 얼굴이 지키고 있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 전까지 소소한 일상을 메시지로만 나누던 온라인상의 남자가 실체가 되어 곁에 앉아 있었다. 당황은 화가 되어 쏟아졌다. 흐트러진 몰골을 방어하기 위해 친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자는 무례했음을 사과하고 자리를 떴다. 친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남편은 이미 떠난 뒤였다. 몇 달 뒤 친구는, 남편이 일을 핑계로 일 년에 반 이상을 비운 그 집을 아이와 함께 나왔다. 이혼을 요구했다.
사실을 고백하면 이혼 과정에 그 남자가 있었다. 친구는 집을 나온 뒤 몇 주 만에 그를 찾아갔다. 병원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그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눈빛을 마주하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첫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처럼 차마 내뱉지 못하는 감정을 안으로 키워가며,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었고 차를 마셨고 가끔은 한적한 오후의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게 다였다. 그럴 리 없다며, 결혼 10여 년차의 남녀가 만나 그토록 오랜 탐색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내 지적에 친구가 대답했다.
“탐색이 아니었으니까요. 언제든 올 시간이란 걸 알았으니까, 아끼듯 감사하듯 조심조심 함께 시간을 보낸 거였어요. 교회에 나가는 성실함과 경건함처럼 말이에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불륜 커플이라는 정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남들은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그건 그들이, 그들의 관계를 지켜나가는 방식이었으리라. 통속의 잣대에서 인정받는 길은 관계를 견고하고도 평범하게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비난과 맞닥뜨릴 시간이 오리란 걸 알아서였을 수도 있다. 항복하듯 고난을 미리 받아내되 순응하듯 그들의 사랑에 순종했다.
이들은 각자의 가정을 벗어나 가정을 다시 꾸렸다. 주위의 비난은 크고 거셌다. 별거에 가까운 삶을 이어왔던 커플이라도 사람들은 가정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나는 의아했다. 껍질뿐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 삶에서 더 큰 고통이 아닐까. 각자가 감당할 고통과 행복은 그들만의 선택이 아닐까. 부부간의 계약을 어겼다면 그 대가는 각자의 배우자에게 지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들은 존재만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첫사랑 시작하는 연인처럼숱한 격랑을 지나 그들은 어느새 10년째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1년 전, 제주 여행에서 두 사람은 길고 격렬히 다퉜다. 밤을 새워 이어진 대화는 눈물과 흥분을 지나 차분한 설득과 대안 제시로 이어졌다. 친구는 남자를 설득했다. 사랑에는 꾸준한 확인과 증거가 필요하다고. 표현이 쉽지 않던 남자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들고나왔다. 그는 친구에게 약속했다. 매일 오후 5시마다 그가 사랑하는 그녀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맨 처음 그들이 시작했던 관계도 메시지를 통해서였으니, 그들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날 이후 날마다 오후 5시, 친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메시지를 받는다. 웃을 때면 둥글게 휘어지는 당신의 눈썹을 사랑해. 저녁마다 거르지 않고 나누는 대화 시간이 좋아. 반짝반짝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좋아. 머리칼을 쓸어올릴 때 부드럽게 갈라지는 손가락, 내 얼굴을 꽉 담아내는 눈동자,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 타인의 존재를 소외시키지 않고 배려하는 태도, 주변 인물들을 넓게 포용하고 끌어안는 마음, 이면을 볼 줄 아는 눈, 말할 때면 드러나는 자그마한 덧니, 밤마다 잊지 않고 나를 더듬어 찾아내는 발가락을 사랑해. 열거를 잠시 멈추고 친구가 덧붙였다.
“예전에는 둘이 꼭 끌어안고 잤어요. 숨 막힐 만큼 꼭 안고 자야 마음이 놓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이제는 그렇게는 못 자요. 답답하거든요, 사실. 잠은 편하게 자야죠. 그래도 신체의 어느 일부라도 그에게 닿고 싶어 발가락으로 그의 몸 어딘가를 훑어내리곤 해요. 발가락 끝을 그의 몸 어디라도 대고 자요. 그렇게라도 맞닿아 있으면 안심이 되거든요.”
일상의 교집합 만들기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마침 오후 5시에 이르렀다. 알람처럼 도착하는 문자 수신 소리에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가 내게서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그의 말로 듣게 되니 그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기분이에요. 그에게 내가, 어떻게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감을 잡기 쉽고요. 나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것도 같아요. 우리는 누군가 사랑한다고 해도 각자의 관점에 매몰되기 쉽잖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게 사랑이 일상에서 더 넓은 교집합을 만들어가요.”
‘상호 순종’의 관계나는 친구에게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에 관해 들려줬다. 어머니의 사랑이 구체화된 편지가 어떻게 아들을 2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장 속에서 살아남게 했는지 말이다. 어머니는 죽어서도 아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게 했고, 미리 써놓은 편지를 보내게 했다. 꾸준히 이어졌던 사랑과 격려의 메시지는 아들에게 생존을 일깨우는 알람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은 뒤로, 사랑은 표현되어야 함을, 그 표현은 구체적이고 꾸준하고 정기적이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친구 커플은 그런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듯 보였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서는 길, 언젠가 나를 순종적 사람이라고 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그는 순종적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신은 뛰어나면서 헌신적인 사람을 만나면 헌신적이 되는 사람이에요. 사랑은 자기를 전부 다 내어주는 거잖아요.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당연히 상호 순종적이 되는 면이 있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그 순종을 봐요.”
다시 이 말에 머물며 저문 겨울 거리를 걸었다. 주체적인 사랑이란, 전부를 내주어야 하는 순간 차라리 분열 없이 전부를 내줄 수 있는 것일까. 실제 우리가 ‘헌신’이라고 이르는 것의 대부분은 의존일 경우가 많다. 헌신이라는 명목 아래 자신을 상대에게 종속시키고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바라는 행위일 때가 많다. 그와 달리 주체적 헌신이란 자신에 대한 순종이 상대에 대한 순종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형태가 아닐까. 상호 보완이라는 말을 넘어서는 ‘상호 순종’은 그렇게 이를 수 있는 건 아닐까. 상념을 뚫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내게도 그런 상태가 찾아올까, 더듬듯 꿈꾸듯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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