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좋은 엄마, 이제 그만 할래

벗어나려 애써도 여전히 나를 옥죄는

성역할과 모성 신화에서 자유로워지기
등록 2017-11-03 04:14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부당한 일과 처우에 저항하라. 아이를 키우면서 내내 했던 말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 나는 이들의 삶에서 가장 자주 맞서 싸우는 부당함의 상징이 되었음을 실감 중이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라도 너희들을 부당하게 처우하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 필요하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상대가 누구든지 말이야. 엄마한테라도 마찬가지야”라고 말할 때의 나는 자신만만했다.

아이들이 나의 부당함에 분노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아이패드와 놀지 못하게 할 때, 늦게 자고 싶은데 억지로 자라고 말할 때, 바쁜 아침 등교 시간 느릿느릿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를 때. 정확히 말하면, “소리 지를 때”에 강점을 두어야 한다. 늦게 자고 싶은데 억지로 자라고 소리 지르고, 아이패드 그만하라고 소리 지를 때 아이들은 짜증내고 이를 두고 거듭 높아지는 내 언성에 분노한다.

아이가 흡수한 자질은 저항과 비판 정신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로서의 나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일상과 일정이 있다. 그것을 아이들의 것과 조화시키려면 대체로 시간이 모자라다. 아이 둘을 준비시켜 각각 다른 학교에 운전해서 데려다 주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고, 먹기 싫다는 아침을 먹여서 보내는 일이란 느긋한 모닝커피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 일상(누가 과연 그런 삶을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만)과는 전혀 다르다. 부엌은 초토화되고 나는 세수는커녕 옷에 붙은 밥풀도 떼지 못하고 집을 나서기 일쑤다. 늦게 자는 어린이는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는 진리를 날마다 체험하면서도, 잠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잘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어릴 적에야 품에 안고 침대에 들어가서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게 통했지만, 지금은 서로가 불편하다. 어쩌다 한번씩은 좋지만 날마다는 서로에게 못할 짓이다.

우리의 삶은 이제 각자의 리듬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향한 의무와 책임감에 허덕인다. 서로 다른 리듬의 개체들이 서로의 삶에 난입해 무언가 해내려고 하니 부딪침이 생긴다. 규칙을 만들고 의기투합도 해보고 며칠 잘 지내는가 싶어도 어느새 도로아미타불이다. 때로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더 이상 품 안의 아이도 아닌 애물단지들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건 비단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기회는 번번이 있다. 한창 사춘기에 들어서는 만 열두 살 둘째딸은 확실히 그래 보인다. 그는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논쟁가 타입의 인간이다. 논리를 사랑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지적하고 싶어 하고, 부당한 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덕분에 억울한 사정에 있는 친구들을 나서서 돕기도 하고 학교 대표로 지역 신문에 글을 쓰기도 할 만큼 자기주장도 강하다. 또 그걸 잘 풀어서 표현하는 훈련이 일찍이 되어 있다. 다만 그와 긴 시간을 보내는 건 피곤하다. 그의 지적질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침투하고 나는 그가 원하는 만큼 옳음과 정당함을 실천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나는 분명 관용과 혜량의 미덕도 가르친 것 같은데, 아이가 더 깊게 흡수한 자질은 저항과 비판 정신인 것 같아, 요새 내 속은 몹시 쓰리다.

나는 좀 다른 엄마인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내 약점마저 잘 알고 있다. 누가 아이가 착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럽다고 했던가. 아이는 누구보다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아는 존재다. 약하기에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협박하고 채근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법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능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달한다. 우리 가족과 같이 부모가 이혼하여 공동 양육을 나눠서 실천하는 경우, 둘째는 가장 긴박한 순간 내 마음을 어떻게 찢어놓을지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얼마 전 크게 말싸움을 벌이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정말 끔찍한 엄마야. 엄마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야. 난 엄마랑 살고 싶지 않아. 아빠한테 보내줘.”

2년 전 첫째의 초등학교 졸업 파티에서였다. 졸업하는 열세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와서 엄마, 아빠, 조부모, 형제 그 외의 특별한 친구나 가족 혹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두 아이가 다녔고 또 지금 다니는 학교는 LA 지역에서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곳으로 손꼽히는 학교다. 동성애 커플이나 싱글 맘, 싱글 파더, 이혼 부부, 재혼 부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읽는 편지 속에 묘사된 엄마와 아빠의 전형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일상을 담당하고 아이들의 삶을 세세히 챙겨주지만, 잔소리 많고 걱정 많고 때로는 귀찮은 존재, 하지만 누구보다도 필요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아빠는 재밌고 종종 어리석지만 문제가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로서 형상화됐다. 나는 당시 자랑스러웠다. 적어도 딸이 묘사한 나는 조금 달랐다. 아이는 말했다.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독립적이고 지적이고 현명한 나의 롤모델이에요. 웃기고 재밌고 엉뚱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추락의 힘으로 일어나서 나아갈 수 있는 엄마를 나는 존경하고 있어요.”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좀 다른 엄마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상은 2년 만에 둘째딸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했다. 2년 전의 우리는 이혼 과정을 함께 건너는 중이었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고 누구보다도 서로를 보살피는 데 전력을 다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사소한 불편이나 문제는 적당히 넘어가기 쉽다. 더 위급한 상황 앞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똘똘 뭉쳐서 지난 3년을 보냈다. 첫째는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줬고 둘째는 나를 정서적으로 잘 보듬어줬다. 날마다 사랑한다는 말이 우리 사이를 떠돌았다. 나는 엄마·아빠의 이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데 노력했다. 우리는 단연코, 훌륭한 사고 전담팀이었다.

“난 좋은 아빠 할래”

하지만 긴급 상황이 정리된 후, 평범한 일상의 평온이 찾아오자 그동안 빗장을 걸어두었던, 사소했기에 밀어두었던 문제들이 터진 봉지 속 쌀알처럼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둘째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두고 엄마의 자격 같은 걸 논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다른 엄마랑 달라서 좋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를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나를 나쁜 엄마의 지옥으로 단숨에 밀어넣었다.

나는 비틀비틀 고꾸라지며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든 기분이었다. 무얼 하든 죄책감이 따라오는 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문제였다. 나는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을 책임질 자격이 있을까.

세상에는 숱한 예시와 기준이 떠돌았다. 좋은 엄마의 모델은 넘쳐났다. 나쁜 엄마의 예시 또한 악몽처럼 그 밑바닥을 흘렀다. 천국과 지옥처럼 두 모델 사이를 떠돌면서 나는 언제나 주눅 들었다. 좋은 엄마의 천국에 머무는 기간은 깡충 뛰어오른 허공만큼이나 허무하게 짧았다. 나는 대체로, 발밑에 놓인 나쁜 엄마의 지옥 언저리를 맴돌며 저기만큼은 떨어지지 말아야지 몸서리치며 지내곤 했다. 육아 기간은 행복한 만큼이나 강박적이었다.

나쁜 엄마라는 말은 잘 마른 건초에 떨어진 불씨와도 같았다. 화르륵 타오르듯 분노에 휩쓸린 나는 평소보다 더 쉽게 인내심을 잃었다. 아이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서로 갖자고 말한 뒤 방 안에 들어왔다. 찬찬히 더듬어봤다. 나는 왜 이토록 나쁜 엄마란 말에 민감할까. 엄마로서의 역할 규정에 대한 부담과 패배감은 왜 이리 나를 압도할까. 엄마라는 거대한 천국은 어쩌면 대부분의 엄마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환상은 아닐까.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잠시 후 아이들을 불러놓고 선언했다.

“난 좋은 엄마 안 해.”

“그럼 뭘 할 건데?”

“난 좋은 아빠 할래.”

아이들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여전히 나를 옥죄는 성역할과 모성 신화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무엇보다도 나와 너희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방법으로 당분간 나는 좋은 아빠인 양 살기로 했어.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엄마라서 당연히 너희에게 잘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아빠에게 갖는 기대치 정도만큼 나를 바라봐주면 좋겠어.”

가벼운 저항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깔끔하게 답한 둘째는 거듭되는 내 논리에 한마디 남겼다.

“음, 이해는 하겠는데, 너무 그렇게 의식적인 운동가처럼 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여성’이라는 틀이 너무 버겁다면

아이의 비아냥거림에도 나는 내 시도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좋은 아빠’처럼 산다고 마음먹으니 조금씩 다 쉬워졌다. 아이들 매 끼니를 챙기는 것도, 운전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는 것도, 의무로서 당연히 하는 게 아니라, 엄마라서 보살필 줄 아는 게 아니라, 내가 ‘좋은 아빠’니까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나아가서, 나를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생각의 전환으로 일상에서 실천하기로 했다. 바로 실천하기 힘들다면, 그냥 역할마다 내게 다른 규정을 내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아빠, 애인에게는 다정한 애인이면 된다. 남자로서나 여자로서 당연한 것들에 압사되지 않는다면, 그건 나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가 될 것이다. ‘여성’이라는 틀이 너무 버겁다면 난 그걸 내가 아끼는 관계 속에서 헐겁게 만들면 된다. 또 그러한 사람들과 행복하고 다정한 관계를 만들어가면 된다. 어렵다면 노력하고 설득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리라. 무산되어도 노력의 과정은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 속에서 내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더 행복하고 주변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서희 작가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