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추락할 때,/ 한없이 내려만 가고 있을 때,// 나를 다시 잡아 올려줄 단단하고 뭉툭한 손을 가진 사람.”( ‘엄마’편 중에서)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또 가장 많이 상처를 준다. 애틋함, 원망,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하고 미묘한 애증의 관계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33) 작가가 자신과 엄마의 일상을 그림에세이 (한겨레출판 펴냄)에 담았다. 는 ‘엄마와 딸’로 묶인 여성의 이야기로, 모녀가 웃고 울고 그리워했던 소소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여준다. 엄마를 향한 딸의 따뜻한 시선이 밴 글과 통통 튀는 일러스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가는 그동안 그림책 를 펴냈고, 공지영 작가의 와 성석제 작가의 등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이민혜 작가를 8월1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엄마의 고마움을 자꾸 잊고 산다”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첫 그림에세이를 펴냈다.나와 엄마의 자잘한 일상을 통해 다른 엄마와 딸들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싶었다.
책 제목 ‘엄마라서’의 의미는.‘엄마라서 고마워’를 줄인 말이다. 내가 잘나가고 신날 때는 엄마를 찾지 않다가 힘들고 지칠 때 엄마를 찾는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잘해드려야지’라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엄마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니까 그 고마움을 자꾸 잊고 산다.
이야기가 1부 ‘엄마의 청춘은 밤으로 바뀌었다’와 2부 ‘끝과 시작’으로 나뉜다.나의 결혼 전과 후로 나눈 거다. 결혼을 계기로 엄마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무릎을 구부리고 힘들게 청소하는 엄마를 보면 ‘청소기 밀대가 있는데 왜 저렇게 청소하지’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 뒤 엄마의 그런 사소한 습관을 나도 따라하고 있었다. ‘엄마가 가족을 위해 깨끗하게 청소하려고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빠에게 잔소리하던 엄마처럼 나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웃음) 여자의 삶은 세대가 바뀌어도 어느 정도 닮는 것 같다.
책이 나온 뒤 엄마의 반응은.엄마 친구들이 내 책을 본 얘기를 전했다. “뭉클했다” “딸이 아니면 어떻게 엄마의 그런 세세한 감정을 알아줄까”라는 말을 들었단다. 실은 ‘사랑도 고통도’편에서 엄마도 딸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며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다. 그것에 대해 얘기는 안 하셨다.
그림책 속 상상의 친구 책 표지의 자석 그림은 무엇을 형상화했나.엄마와 나를 그린 자석 표지 그림이 나와 엄마를 잘 나타낸 이미지다. 서로 다르지만 아끼고 챙기고, 그러나 가까이 있으면 부딪친다. (웃음)
‘엄마’(40쪽)에서 엄마와 딸의 곡예 그림, ‘테트리스’(60쪽)에서 테트리스 그림 등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러스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작품에 유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글이 무겁고 진지한 내용이라도 웃음이 날 수 있게 그린다.
엄마와의 이야기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예전에 공지영 선생님의 책 를 읽으며 나와 엄마의 관계에서 느끼는 비슷한 감정을 발견했다. 다른 관계에서 느낄 수 없는 끈끈함과 애틋함이다. 그것을 보고 나의 엄마를 떠올리고 딸로서의 나를 생각했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돌아보게 된다.
작가 소개 글에 보면 “유쾌한 그림을 주로 그리고 가끔 야릇한 그림”도 그린다고 했다.그동안 등 그림책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했다. 매우 익숙하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나는 그림책 주인공 뒤에 강아지나 인형, 기린 등 애착인형 같은 가상의 친구를 그린다. 내가 만든 상상의 요소를 그리는 맛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틀 없이 자유롭게 성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실제 연애를 하면서 나의 경험과 감정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나의 이야기지만 ‘누구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있는 사랑을 특별하게 표현하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그것이 야릇한 그림이다.
지난 5월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그린 ‘부끄부끄한 순간의 그림들’이라는 전시회를 했다.‘19금’ 콘텐츠로 주목받긴 했지만, (웃음) 이 그림은 프랭크와 미미라는 연인을 주인공으로 사랑의 순간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주인공 상상하며 스케치할 때 즐겁다”작품을 보면 풍만한 양감을 강조하는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스타일과 닮았다.
보테로의 독특한 그림과 화려한 색감을 좋아한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동화를 그리는 영국 초현실주의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도 좋아한다. 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일러스트 작업의 매력은.어떤 원고를 받아도 나만의 색깔로 그릴 수 있어 좋다. 채색할 때보다 스케치할 때 즐겁다. 작업 원고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표정을 지으며 작품에 몰입한다. 채색 작업을 할 때부터 일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나도 이제 엄마가 된다. 아이 낳은 뒤에는 육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려볼까 생각 중이다.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6·25 참전 ‘김일성 명의 메달’ 받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해야 하나?
윤 대통령 지지율 다시 10%대로…직무수행 긍정평가 19%
“화내서 미안” 명태균에 1시간 사과 ‘윤석열 음성’…검찰이 찾을까 [The 5]
조정훈 “한동훈, ‘김건희 특검법’ 중대 결심한다면 그건 야당 대표”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이재명 ‘위증교사 무죄’…“잘된 판결” 41% “잘못된 판결” 39%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봉은사 ‘한숨’…“박정희 정권 강요로 판 땅” 반환소송 최종 패소
명태균 처남의 이상한 취업…경상남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
11m 추락 막으려 맨손으로 45분 꽉 붙든 구급대원…“살릴 생각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