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칼질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솔솔 풍긴다. 1월4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 있는 도시락 배달 가게 ‘소풍가는 고양이’. 이곳 대표 박진숙(49)씨는 “오늘 주문 들어온 도시락 21인분을 만들고 내일 배달할 도시락 재료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1월은 비수기로 주문량이 적은 편”이라 “(여유가 생겨) 인터뷰도 할 수 있다”며 박씨는 웃었다.
가게와 사람의 성장통을 담다박씨는 지난해 12월 말 사회적기업 ‘소풍가는 고양이’를 이끌며 겪은 일상을 그린 에세이 (사계절 펴냄)를 펴냈다. 는 박씨가 이곳에서 대학에 가지 않은 비대졸 청(소)년들과 성장통 같은 몸부림을 같이 겪으며 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2011년 5월 문을 연 ‘소풍가는 고양이’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대학에 가지 않은 청(소)년의 사회적 자립을 돕는 진로교육 프로그램 ‘연금술사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들이 창업한 가게다. ‘연금술사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박씨도 하자센터를 그만두고 이들과 함께했다. 이후 9개월 만인 2012년 2월 ‘연금술사’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공정하게 돈 버는 회사인 동시에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이며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주인이 되기로 결정한 ‘소풍가는 고양이’의 구성원들은 각자 120만원을 회사에 투자한 뒤 그 값만큼 주식을 받았다. 회사를 함께 소유하고 책임지며 이익을 나누는 ‘청(소)년 주식 소유제’를 실시했다. 청(소)년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고 자립의 밑거름을 마련해주려는 박씨의 철학 때문이었다.
현재 ‘소풍가는 고양이’에선 어른 5명, 비대졸 청(소)년 4명이 일한다. 이들의 나이 차이는 20살 넘게 나지만, 위계질서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모두 별명을 부르고, 밥을 지어 함께 먹는다. 가족이 밥상에 모여 이야기하듯 밥을 먹으며 소통한다. 밥상 차리는 법과 밥 먹는 행위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운다. 또, 그날 만든 음식에 대한 의견 주고받기를 날마다 반복한다. 각자 하루 시간표를 짜며 자신의 업무 시간을 기획하고 서로의 일과도 공유한다.
노동은 배움과 성장의 시간박씨는 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이곳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느꼈다. 이들의 성장 속도는 가게가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속도와 같았다. “2011년에서 2014년까지는 손가락을 빨고 지낼 정도로 어려웠어요. (웃음) 그때에는 한 달 매출이 1천만원이 안 됐어요. 이제는 월매출이 3천만∼4천만원 정도 돼요. 그렇게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청소년들도 철들고 어른스러워졌어요. 초창기부터 일하는 홍아는 처음엔 일하다 갑자기 싸우고 나가서 제가 찾으러 다녔거든요. 이제는 주방일을 믿고 맡기는 정도예요. 예전엔 10인분 주문에도 쩔쩔맸다면 이젠 100인분도 거뜬히 해내요. 다들 서로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해결할 줄도 알고요. 이 가게에서 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달라지는 모습이 보여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이곳의 노동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박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일반 회사에 다녔던 10∼20년차 경력자예요. 이분들은 줄곧 옆 사람을 보지 않고 혼자 앞으로 나가는 경쟁 구조 속에서 일하다 왔어요. 그러니 이곳에 적응하는 것을 꽤 힘들어해요. (비대졸 청소년들과 일하며) 누가 뒤처지는지 보고 그 친구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같이 애써야 하잖아요. 그런 노력을 여기에서 처음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에게도 소통과 협력은 어려운 과제였던 것이다.
박씨는 그동안 가게를 이끌며 날마다 다양한 사건·사고를 겪었다. 수저를 안 보내 다시 배달을 가고 주문지를 잘못 적어 엉뚱한 곳에 도시락을 보내기도 했다. 그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이 가게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727 주먹밥 사태’다. 2011년 7월27일 서울 지역의 집중호우로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나고 교통이 마비됐다. 그날 행사장에서 주문받은 주먹밥 600개를 늦게 배달했다. 행사가 끝났다. 먹을 수 없는 주먹밥을 모두 버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날 주문한 손님이 1년 뒤 다시 주문을 했다. 손님은 ‘소풍가는 고양이’가 1년 동안 얼마나 좋아졌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이곳을 응원하고 꾸준히 찾는 단골이 됐다.
학벌·학력 중심 사회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되는 비대졸 청(소)년들. ‘소풍가는 고양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안적 노동과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현장이다. “우리는 ‘비진학 청소년들이 사회로 어떻게 진출하는가’라는 관념적이고 큰 질문을 건네요. 그렇지만 현실에선 작은 질문부터 시작해야 해요. ‘손님에게 정당하게 돈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정한 노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죠. 그들이 취업하고 창업하는 것에서 고민이 끝나면 안 돼요. 불공평한 구조를 바꾸고 그 속에서 삶을 일구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걸 사회가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일하는 이들이 함께 애쓰며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교육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에요.”
성미산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란다‘소풍가는 고양이’의 바람은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하고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윤, 모두에게 적절한 보수, 적절한 노동량, 적절한 노동시간, 적절한 성장을 찾는” 것이다. 이는 노동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배워가기 위한 노력이다. 올해는 근무시간 단축을 목표로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할 계획이고, 이웃인 성미산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방법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소풍가는 고양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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