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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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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혼자’들의 삶을 위해

2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 완간한 김정연 작가 인터뷰
등록 2018-06-19 17:18 수정 2020-05-03 04:28

서울에서 혼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삶을 그린 만화 (창비 펴냄, 이하 이 완간됐다. 은 2015년 12월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화제의 웹툰 을 묶은 단행본이다. 8평 남짓한 월세방에 살며,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고단한 청춘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동시대 또래 여성들의 목소리를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만화평론가들에게 “한국 청년-여성의 서사를 증명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도 받았다.

데뷔작 을 끝마친 김정연(29·사진) 작가를 6월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만났다. 청파동은 김 작가가 지난주까지 3년여 동안 머물며 을 집필한 곳이다.

“서울에선 무리해야 겨우 보통이 되는 거야”

데뷔작 을 끝마친 느낌은 어떤가.

완성된 단행본 표지에 있는 ‘이시다’를 봤다. 그제야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재하는 동안 ‘시다의 언어로 일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이제 그걸 안 하니 시원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 시다는 매일 야근에 “중장비보다 오래 일하”지만 코딱지만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산다. 그의 “서울에선 무리해야 겨우 보통이 되는 거야”라는 말에는 자조적인 씁쓸함이 배어 있다. ‘삼포 세대’인 청년들의 정서가 깔린 듯하다.

시다는 항상 밤을 새우며 열심히 일하고, 일에 치여 산다. 그렇게 일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얼마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작품에는 여성으로 사는 삶, 여성으로서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서도 그렸다. 예를 들어 시다의 학교 언니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딸이어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적 이목 때문에 출근할 때마다 화장이라는 꾸밈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요구되는 기준에 대해 예전에는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다 페미니즘 이슈를 보고 또 친구들과 공유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보편이라 하는 것들에 의심을 품게 됐다. 불편하고 부당한 일에 조금씩 화낼 줄도 알게 됐고, 불만족에 대해 이야기도 하게 됐다. 그렇게 더는 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딸의 온도’ 편에서는 늦은 시각 골목에서 추행을 당하는 시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저는 그 골목에서 뭔가를 단단히 배운 느낌이었지만, 그 새끼들은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겠죠. 그렇게 자정을 넘긴 딸들만이 서울을 알아갑니다”라는 시다의 독백을 들려준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실제 겪은 것이다. 혼자 밤길을 걸었던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이시다의 동생 ‘이시리’라는 여성을 통해서는 매일 폭언과 성희롱을 당하는 콜센터 상담원의 힘겨운 일상을 보여준다.

이시리는 아이폰의 시리를 모티브로 만든 가상 인물이다. 시리의 대사도 아이폰 시리에 내장된 답변을 참고했다. 전화상담원인 시리를 통해 그 직업의 여성들이 겪는 성적인 언어폭력과 스트레스를 보여주려 했다. 실제 여성의 음성으로 나오는 시리도 남성 사용자들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리 개발자들이 성희롱에 대비한 답변을 만든다고 들었다.

또 다른 ‘이시다’들에게 건네는 말‘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을 들으며 늘 과로하던 시다는 어느 날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휴직한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시다는 회사에 다시 출근한다.

시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다시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집에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을 초대하는 꿈을 꾼다.

웹툰을 연재하는 동안 팬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자우편을 보낸 분이 많았다. ‘나의 서울살이’를 쓴 글이나 자신의 직장생활, 공황장애를 겪은 일 등을 적어 보낸 이들도 있었다.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연재를 끌고 가는 동력이 됐다. 나 스스로 20대 여성의 서사에 무책임해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더욱 내 주변 또래 여성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려고 노력했다.

에서 서울은 소외와 단절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작가님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

불만족이다. 일단 적은 보증금으로 안전하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 어렵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방을 구할 때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리고 서울은 여자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곳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방범창, 방범키, 비상벨 등 안전장치가 잘 설치된 집인지 보게 된다.

지금 여기의 또 다른 ‘이시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시다가 비좁은 고시원에서 “내가 뭘 갖고 싶은지 절대 까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말처럼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나에게 가장 중요했으면 좋겠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나를 잘 대접했으면 한다. 이건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독일로 ‘워홀’ 떠나요”

의 마침표를 찍은 김정연 작가는 “다음주 월요일에 독일로 ‘워홀’(워킹 홀리데이)”을 떠난다. “예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다른 환경에서 지내보고 싶었거든요. 긴 여행을 가는 느낌이에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가는 건 아니에요. 그곳에서 지낼 집도 가서 구해야 해요.”

김 작가는 월드컵 개최 주기인 4년마다 자신의 일상을 점검하고 바꾼다. 2014년 월드컵 때에는 출판 디자인 쪽 일을 하다 퇴사했고, 이번에는 ‘워홀’을 가기로 결심했다. “‘4년에 한 번씩 달라지자’라는 생각을 품고 일상에 변화를 줘요. 4년이라는 주기를 잊지 않으려고 월드컵을 기준으로 삼았죠.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여러 매체에서 알람처럼 알려주니까요.”

다시 찾아온 월드컵에 맞춰 김 작가는 낯선 독일에서 혼자의 삶을 이어갈 계획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잊지 않고 ‘인생의 타임라인’을 한 줄씩 채우기 위해서.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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