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雜誌)의 잡(雜)자를 좋아해요. 그 잡스러움을.”
정여울(41) 작가가 올해 새로운 실험을 한다. 자기 이름을 달고 잡지처럼 매달 한 권씩 (천년의상상 펴냄)을 펴낸다. 이런 실험에 나선 이유는 뭘까. “항상 단정하고 정리된 편집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단행본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좀더 자유로운 나, 천방지축인 나를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듯 들려주는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독자에게 건네는 손짓 ‘똑똑’</font></font>그래서 의 테마는 ‘잡스러움’과 ‘통일성 없음’이다. 처음 선보인 1월호의 이야기는 ‘똑똑: 수줍은 마음이 당신의 삶에 노크하는 소리’에 대한 것이다. ‘똑똑’은 작가가 독자에게 다가설 때마다 느끼는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나타낸 표현이다. 자기 검열 때문에 “내 유일한 무기인 글쓰기에서조차 용감하지 못했다”는 고백, 네 살배기 조카와 대화에서 얻은 삶의 깨달음,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과의 소통, 영화와 시에서 얻은 사랑에 대한 감동 등 정 작가를 둘러싼 일상에서 길어올린 여러 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1월호 ‘똑똑’으로 독자에게 첫 인사를 건넨 정 작가는 2월호 ‘콜록콜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 1월26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있는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정 작가는 이 작업으로 “내 안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분한 말투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정 작가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을 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단행본을 만들다보면 주제에 맞는 내용만 넣는다. 분량이 넘치거나 튀는 내용은 뺀다. 그게 아쉬웠다. 난 통일성 없이, 잡스럽고 삐져나오는 여집합 같은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나를 표현하기에는 단행본이라는 분야가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 시절에는 정치적 검열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썼다는 이유만으로 잘리기도 했다. 나 자신의 검열도 있었다. 20대엔 내 상처를 표현하는 글을 제대로 못 썼다. 그런 글을 쓰는 게 부끄럽고 ‘혹시 이런 거 쓰면 차별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땐 두려움이 많았다. 40대 들어선 뒤에는 ‘겁을 내면 나만 손해 보는구나. 좀더 용기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면의 검열을 깨뜨리는 게 외부 검열을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결국 내면의 검열에서 해방돼야만 글쓰기의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서는 문체나 내용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쓸 계획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타인의 삶에 안테나를 </font></font>‘월간’이라는 기간으로 책을 낸다는 점이 특이하다.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그 정도로 잡지를 좋아한다. 문학 자체가 잡스러운 것인데 문학을 뛰어넘는 비문학적인 잡스러움을 예전 잡지에서 많이 얻었다. 난 등 종이 잡지를 즐겨 읽은 세대다. 돌이켜보니 종이 잡지를 열심히 읽은 그 무렵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많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타인에 대한 관음적 호기심이 아니라 타인에게 진정한 공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살다보면 내 일인분의 삶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걸 벗어나,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삶에 안테나를 열어두는 잡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종이 잡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실현하고 싶었다.
들어가는 말에 “지극히 예스러운 잡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아날로그적 소통을 꿈꾼다”고 적었다.난 트위터도 없고 페이스북도 폐쇄했다. SNS를 안 한다.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한데 그것까지 하면 정신없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따뜻하게 아날로그적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이다. 책 뒤에 독자의 의견을 받을 수 있는 엽서를 넣었다. 2월호부터는 별책 부록 형태의 사진엽서를 넣을 예정이다. 쿠바, 아르헨티나 등 내가 여행한 곳의 사진과 여행에 대한 단상을 쓴 엽서다. 독자가 그 엽서를 보고 다른 사람의 앨범을 보는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 그걸 보고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수다 떨어도 좋겠다. 그런 아날로그적 소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월호의 제목은 ‘똑똑’이다. 2월호는 ‘콜록콜록’, 3월호는 ‘까르륵까르륵’ 등 의성어와 의태어로 제목을 달았다.내 글에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다. 난 의성어가 들어간 글은 음악 같아서 좋고, 의태어가 있는 글은 그림처럼 느껴져 좋다. 내 글에 들어간 의성어와 의태어를 살려 의 부제를 그렇게 지었다. ‘심리치유 에세이’라고 이를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똑똑, 콜록콜록 등 그 단어의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글이라면 다 넣을 수 있다. 그러니 좀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고 나의 잡스러움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다.
단행본 작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1월호 때 PDF(전자문서 파일)까지 만들었다가 80% 이상 새로 작업했다. 기존에 썼던 원고를 많이 빼고 최근에 쓴 원고를 넣었다. 단행본 작업에선 2∼3년 전에 썼던 글이 들어간다. 글 모이는 시간, 편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러다보면 2∼3년 뒤에 책이 나온다. 월간으로 작업하면 내가 며칠 전에 쓴 글을 넣을 수 있다. 지금 하는 고민을 블로그나 SNS가 아니라 종이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에는 최대한 가장 싱그러운 글을 많이 넣고 싶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나’를 써야 생기는 교감</font></font>지난해 5월부터 에 ‘마흔에 관하여’를 연재하고 있다. 그 연재에 마흔을 사는 이들이 공감하는 글이 많다.다른 사람들이 나랑 비슷하다고 할 때 신기하다.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느낌이 들었던 책이 2013년에 펴낸 에세이 이다. 나를 평론가에서 작가로 만든 책이다. 그때에는 그 책을 안 쓰려고 도망다녔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힘들어서였다. 그걸 하고 나니 문턱을 넘는 기분이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재미있는 일임을 느꼈다. 나에 대해 써야 독자가 진정으로 교감해준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동안 등 감성적이고 따뜻한 에세이를 써왔다. 앞으로 어떤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어’라는 글이 많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나와 교감할 수 있는 글은 찾긴 힘들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교집합을 발견하고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그러려면 계속 내 마음의 안테나와 주파수를 더 멀리, 더 넓게 펼쳐야 한다. 내가 더 커지고 깊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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