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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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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끝내면 ‘혼술’ 세게 마신다”

<한겨레21> 음식 칼럼 ‘오늘 뭐 먹지?’ 연재 마친 권여선 작가…

잠시 주정뱅이들에게 안녕 고함
등록 2017-12-05 16:50 수정 2020-05-03 04:28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권여선 작가(사진)는 지난 5월부터 에 음식(실은 안주) 칼럼 <font color="#C21A1A">‘오늘 뭐 먹지?’</font>를 연재해왔다. 권 작가는 1996년 장편소설 로 등단한 뒤 등을 펴낸 대표적인 중견 소설가다. 지난해에는 “주류(酒類)문학의 위엄”이라는 평가를 받은 단편집 를 통해 애주가로 ‘커밍아웃’했다. 그런 그가 “술은 계속 마시지만 이제 술 이야기는 끝내려 한다”며 ‘연재 중단’ 의사를 밝혀왔다. 그 배경이 궁금해진 은 권 작가를 11월27일 서울 중구 광화문의 한 음식점으로 불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가움과 아쉬움을 안주 삼아 낮술을 마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술꾼은 (술꾼을) 알아본다니까” </font></font>‘오늘 뭐 먹지?’ 연재를 이번호<font color="#C21A1A">(제1190호)</font>로 중단한다. ‘아쉽다’는 독자들의 한숨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해 를 쓰고 너무 술 이야기만 쓴다는 얘기가 있어 ‘대오각성’했다. 그때 소설에선 이제 술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쓴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주로 밥집에 가고, 술집에 가기도 하는데 술은 안 마신다. 소설에서 (술에 대해) 못 쓰니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음식 에세이 청탁이 들어와 ‘여기에 한을 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재를 끝내기로 했으니 술 이야기와 작별하는 느낌이다.

술꾼들이 아쉬워할 것 같다.

이제 나도 독자를 다변화해야 하니까. (웃음) 너무 술꾼들만 좋아하는 걸 쓰면 (내용이) 한정되는 것 같다.

‘오늘 뭐 먹지?’에 처음 등장한 음식은 마른오징어튀김이었다

어릴 때 별식이다. 그 맛에 중독돼 말린 게 아닌 생물 오징어를 튀기는 건 안 먹는다. 음식 이야기는 캐릭터 이야기다. 내 소설에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먹는 이야기도 많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느냐는 그 캐릭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식사 메뉴나 음식점을 고를 때 아무 곳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고르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성의해 보인다.

연재를 읽다보면, 1970년대 초반 부산의 정취가 느껴진다.

어릴 때 산복도로가 있는 산동네,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살았다. 변두리 느낌이 나는 곳이다. 장편 배경으로도 나온다.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이 생각난다는 독자가 많다.

양식, 일식도 없고 집에서 해먹는 서민 음식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다.

‘냄비국수’ 편에선 막내의 설움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막내인 나는 음식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배당받을 때도 불리했다. (어려서) 빨리 씹지 못하니 많이 먹지 못했다. (막내의) 억울함이 골수에 뱄다. (그래서 권 작가는 한 사람 앞에 하나의 온전한 냄비가 주어지는 냄비국수를 처음 먹을 때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나만의 국수를 오로지 내가 원하는 순서와 방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데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고 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퐁당퐁당 못하고 퐁퐁퐁 </font></font>종교에 심취해 채식주의자가 된 어머니의 집밥 이야기도 있다.

자취하는 남자애들이 ‘집밥’이라는 말만 나오면 눈빛이 그윽해진다. 엄마 손맛 분식집에 가고. 모두가 그런 집밥의 환상이 있는 건 아니다. 원고 매수가 적어 내가 들은 집밥 에피소드를 많이 줄였다. 그중 이런 게 있다. 손맛이 없는 어머니에게 되도록 손맛이 안 들어가는 재료법을 권하는 얘기가 있다. 자식들이 엄마에게 닭이나 돼지고기는 무조건 삶으라 하고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가 뭘 만들려고 하면 ‘노노노’ 한다.

“나의 모국어는 술국어”라고 고백했다.

술도 좋아하고 안주도 좋아한다. 평소에는 까칠한데 술 한잔하면 너그러워진다. 호프집에 나오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술과 함께 먹으면 다 좋다.

주량은?

많이 못 마신다. 소주 두 병이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다. (웃음) 다음날 임종 상태가 안 되려면 두 병 정도만 마셔야 한다. 그래야 다음날 오후 늦게쯤 몸이 괜찮아진다. 딱 좋은 건 소주 한 병 반이다.

좋아하는 안주는?

안주를 안 가리는 편이다. 양념이 강한 것은 싫어하지만 맛있게 매운 거 좋아한다. 어릴 때 세상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매운 걸 먹으면 정신이 ‘핑’ 했다.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학교 때부터 매운 냉면을 먹으러 다니고 고등학교 때는 매운 떡볶이집을 찾아다녔다.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나.

연말이라 송년회도 있고 행사가 많다. 퐁당퐁당해야 하는데 퐁퐁퐁한다. (권 작가는 술 마시는 날을 ‘퐁’, 술 안 마시는 날을 ‘당’이라 표현한다.) 달력에 술 마신 날에 소주병을 그리는데 요즘 보면 (소주병이) 줄줄 있다. 남들은 나보고 적당히 마시면 되지 않나 그러는데 술꾼이 그게 되나.

술 묘사를 맛깔나게 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술은 취재가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30년 넘게 전공했는데 잘 쓰지 못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난 술을 모르는 사람의 심리를 쓰기가 힘들다.

내 인생에 술이 없었다면.

수첩 두 권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일상을 기록하는 용도고, 또 하나는 가계부다. 가계부를 쓸 때 날짜별로 줄을 긋고, 큰 지출에는 빨간 펜으로 칠하고, 별표도 만들고 굉장히 철두철미하게 한다. 가계부에서 (수입과 지출이) 10원이라도 안 맞으면 못 견딘다. 헐렁한 걸 참지 못한다. 만약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남에게도 그렇게 완벽해지길 요구하며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글을 쓰면서 내가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한심한 에고(자아)도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봄밤’ 쓰면서 처음 눈물 흘려</font></font>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술과 안주 이야기에 취한 듯, 권여선 작가는 “오랜만에 술 이야기를 하니 추억이 돋는다”며 술잔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픈 술꾼들의 삶을 그린 를 출간한 2016년은 술의 해였단다. “지난해 내내 술 이야기를 했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주정당 창단 선포식’까지 했다. (웃음)” 이때 함께 온 길윤형 편집장이 권 작가의 잔에 첨잔을 했다. 권 작가가 한 모금 마시더니 “원래 같은 주종이면 첨잔하는 걸 좋아하는데, 맛이 확실히 다른 술인데 섞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크게 아쉬워했다. 길 편집장은 자신의 주도(酒道)면밀하지 못함에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한바탕 웃고 다시 잔을 부딪쳤다. 다시 이어진 이야기는 그의 문학 속으로 흘렀다.

집필은 어디서 하나.

동네 카페나 도서관에서 소설을 쓴다. 뭉텅이로 쓸 때는 레지던스나 토지문학관, 21세기문학관에서 한다. 토지문학관에서는 한번에 3개월 정도 있을 수 있는데 기간을 나눠 두 달, 한 달 있다 온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는가.

안 써지는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 시험공부 하듯 하루하루 쌓아가야 하니 그냥 앉아라도 있어야 한다. 거지같이 쓴 걸 고치는 일이 왜 거지 같은지 생각하고 그 세계로 들어가 앉아 있어야 한다. 매일 그 전에 쓰던 걸 고치며 자기를 단련한다. 그러다보면 시시포스의 반복이 아니고 변주가 된다. 글이 미세하지만 달라진다. 결국 그걸 많이 하는 작가가 이기는 작가가 된다. 처음에 작았던 원이 점점 커지듯, 하나의 관절이 자라듯 그렇게 자기 세계가 점점 생겨난다.

작품을 끝낸 뒤엔 뭘 하나.

소설을 송고하고 나면 기필코 술을 세게 마신다. 그땐 ‘혼술’한다. ‘(작품을) 마쳤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이젠 그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한 소설이 끝날 때마다) 커튼을 쳐줘야 한다. 다른 작가들도 퇴고 의식이 있는 것 같다.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유독 떠나보내기 어려웠던 작품은?

의 ‘봄밤’(중증 알코올중독자인 ‘영경’과 가망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수환’의 사랑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면서 운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을 쓰면서 울었다. 인물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끝내고도 술을 많이 마셨다. 힘들었다. 신파적인 작품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걸 쓰며 그것을 깨는 낯선 경험을 했다. 이 작품이 라는 계간지에 실렸다. 독자들이 잘 읽었다고 엽서를 많이 보내줬다. 그걸 받고 ‘이 정도까지는 써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독자의 정서를 움직이는 게 나쁜 게 아니다’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글을 쓰는 데도 변화가 있나.

나이 때문인지, 내가 널널해져서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글을 쓸 때 이제는 인물을 고문하지 않는다. 방목한다. 예전에는 쥐어짜서 토해내게 했다면 이제는 힘들지만 ‘한번 가봐’ 이렇게 한다. 달라진 것 같다.

새로 쓴 작품은?

태어나 처음 맺는 관계인 가족에 대한 것이다. 부녀 관계와 모자 관계에 대한 단편을 썼다. 그리고 속편 같은 단편도 썼다. 이번엔 남녀 주인공이 술을 안 마신다. (웃음) 어떤 남녀가 만나 생선구이를 먹는 걸 쓰고 싶어 이 작품을 시작했다. 작품 속 남자는 성대낭종 수술을 받고 한동안 말을 못하게 됐다. 잘나가던 시기에 닥친 시련이 이 남자를 어떻게 바꾸었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은 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굿바이, 주정뱅이! </font></font>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중에서)

알코올 도수 6도의 막걸리는 그날의 도수를 높여줬다. 3시간 동안 인터뷰가 이어졌다. “인터뷰 뒤 저녁 약속이 있다”는 권 작가는 총총총 떠났다. 이제 그는 다른 글 속에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봄밤’) 라고 말하며 고통을 견뎌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서늘한 진실을 담아내리라. 이제 잠시,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굿바이, 주정뱅이!

<font color="#008ABD">글</font>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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