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따가웠다. 한반도를 치는 이 폭염처럼. 일본 오키나와의 조막만 한 섬. 에메랄드 물빛이 너무 고와 용궁섬·산호섬으로 불리는 아카지마(아카섬). 지난해 초여름 사흘 동안 나는 거기에 있었다.
세 번째 방문길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 섬인가. 이 섬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 군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조선인 여성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추모시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주민 300여 명이 사는 아카섬엔 을 부르는 두 일본 할머니가 산다. 신조 요시코(85)와 가네시마 기쿠에(92) 할머니. 고령의 할머니들은 조선인 위안부가 이 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증언하는 유일한 생존자다.
조선 언니들에게 배운 아리랑당시 초등학교 4학년, 십 대 소녀 신조의 집은 조선 여인들의 위안소인 빨간 지붕 ‘남풍장’과 가까웠다.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자꾸 그 집에 갔어요. 그 언니들에게서 노래를 배웠어요. 을 부르면 잘한다 잘한다 했어요. 어른들은 ‘조센삐, 조센삐’ 그렇게 불렀어요. 같은 여자로서 너무 슬픈 일이지요. 그건 정말 야만적인 일이지요.”
가네시마 할머니, 당시 스무 살. 그녀들에게 밥도 해줬다는 그녀. “제일 큰 언니가 스물여덟 살, 제일 작은 이가 일본말도 모르는 18살이었지요. 아이를 고향에 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기억했다. 마치코, 아케미…, 나물 섞은 기름된장으로 볶음밥을 해먹던,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 생각에 술 마시며 통곡하던, 돈 벌기 위해 일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위안소로 끌려왔다던 여인들을.
오키나와전의 시작점 아카섬. 1944년 11월, 조선인 소녀와 여성 등 7명이 아카섬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다. 그리고 1945년 3월26일 오전 8시4분, 이 섬에 미군이 상륙하면서 철의 폭풍 오키나와전이 시작됐다. 이 전쟁 통에 7명 가운데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카섬에 사는 두 일본 할머니들의 증언을 세상에 알린 이는 일본의 평화운동가 나가타 이사무다. 8년 전부터 현장을 조사해온 그는 사명처럼 서러운 조선의 넋들을 위한 위령제와 아리랑 음악제를 연다. 일본 시민단체 ‘혼백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6월에도 열었다. 그는 배봉기 할머니가 “보상이 아니라 진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사과 아닌가. 왜 일본 정부가 진실을 알려 하지 않고, 알리려고도 하지 않느냐”고 하던 말씀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배상과 위령의 문제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1991년 한국에서 고 김학순(1924~97) 할머니가 처음 공개 증언을 했고, 그보다 16년 전 오키나와에서 방황하며 쓸쓸하게 살다간 고 배봉기(1914~91) 할머니가 일본에서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2015년 8월8일치). 이 역사적인 용기는 이젠 역사가 됐다.
섬의 까마귀가 절규하듯 하늘과 바다를 베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간 일행이 불볕 속에 하얀 집으로 바뀐 ‘남풍장’을 지나 ‘아리랑 고개’로 향했다. 조선의 여인들이 김매며 을 불렀다던 그 슬픈 언덕. 나지막한 목소리로 을 부르던 신조 요시코 할머니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제주에서 간 안복자 명창의 처연한 을 함께 따라 부를 때였다.
단 하나, 사죄를 원한다돌아오는 길, 이 일본 할머니는 그 여인들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채를 내려놓는 기분이라고 했다. 8월14일은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세계 위안부의 날’이다. 아카섬 아리랑 고개에도, 그리고 다른 곳에도 그 역사를 기리는 비 하나 우리 손으로 세울 수 없을까. 일본의 사죄는 왜 이리 어려운가.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모두 37명. 평균 91살. 유언처럼 그들은 단 하나, 사죄를 원한다. 유한한 삶, 왜 모를까. 결국 사죄하지 못한 책임은 후대까지 갈 것임을, 백 년이 되어도 계속 그 책임을 물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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