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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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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

남편 외도를 안 뒤 격렬한 고통 겪었던 그녀…

진짜 나를 찾고 진정한 기쁨 깨닫는 ‘재탄생기’
등록 2017-08-02 04:11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친구의 남편이 외도를 했다. 한동안 떨어져 사는 사이, 그녀는 육아에 지치고 새로운 삶과 사회에 적응하느라 소진되고 또 소진돼가는 동안, 남편은 출장으로 두 나라를 오가는 틈을 타서 젊고 거침없는 여자와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이 밝혀진 뒤, 남편의 거듭된 사과에도 그녀는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맞닥뜨렸다.

“20층 넘는 호텔 방에서 창문을 열고 나갔는데 말이야. 그냥 나 하나 없어지면 모든 게 괜찮을 것 같은 거야. 그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이 치솟았어. 아이들의 존재조차 나를 방해하지 않는 거야. 끔찍한 공포였어.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는 건.”

처음 그녀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그녀의 고통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절하다는 사실 앞에선 무서웠고 아득했고 닿을 수 없었다.

새로운 지옥이 또 다른 고통으로

나는 이미 1년째 이혼소송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10년 넘은 결혼생활 중에 남편의 외도를 염려해본 적이 없기도 했다. 닥치게 된다면 나의 해답은 간단한 거였다. 받은 만큼 돌려주리라. 내 딴에는 가장 간단한 대응법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제도를 한국의 대통령제처럼 5년 단임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 사람에게만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제도 자체가 잔인하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물론 막상 내 경우로 겪었다면 상처받고 나만의 지옥을 겪었을 게다. 쿨한 척은 하고 살았지만, 제법 아니 매우 결혼제도에 충실한 아내로 살았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정도라고? 그녀처럼 매력적이고 똑똑한 여자가 도대체 왜 남편의 외도 정도로 극단의 생각에 이를까 공감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사고방식이 그녀의 고백을 늦추었을지도 몰랐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이었음에도 그녀는 몇 개월이 흐른 뒤에야 내게 사실을 고백했다. 이미 지옥이 한 차례 활활 타오르고 지나간 뒤였다. 물론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지옥이 또 다른 고통으로 자라나고 있었을 뿐.

외도 사실을 안 뒤 그녀는 남편에게 격렬히 고통을 표현하고 슬퍼했다. 남편은 처음엔 사실 부정으로 일관하다 결국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그녀의 자존심은 올라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몇 달에 걸쳐 그녀는 남편을 추궁하고 괴롭히고 날것의 진실을 모조리 파헤쳐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는 자기 고문의 과정에 더 가까웠는지 몰랐다. 그들에겐 13년간의 결혼생활이 있었고 세 아이가 있었다. 허니문 베이비로 얻은 아이부터 세 번째 아이까지 그녀의 임신 과정은 전투처럼 처절했다. 탈수 현상이 올 때까지 먹는 족족 토해내고 병원 처방약을 복용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는 상태로 임신 기간을 세 번에 걸쳐 견뎌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의 피임과 임신, 출산 과정은 나에겐 불가해한 일이었지만,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답답해하며 지켜봐야 했던 기간이었다.

이혼 열병을 앓았다

번듯한 직장까지 그만두고 변호사란 타이틀을 집어던진 채 육아에만 전념하는 친구의 기회비용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선택에 확신에 찬 듯 보였고 행복해했다. 내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녀와의 시간을 누구보다 즐겼고 우리는 가족까지 포함해 돈독한 우정을 쌓아갔다. 성공한 남편과 발랄한 전업주부, 그리고 태어남과 동시에 친구로 맺어진 아이들의 단란한 만남은 매년 이어지는 명절과 여름·겨울 휴가 계획을 함께 보내는 걸로 수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부러워하는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미국 중산층의 두 가족이었다. 그리고 결혼생활이 13년째를 넘어가면서 한 가정은 이혼소송으로, 또 한 가정은 남편의 외도와 그 이후를 겪는 중이었다.

그 무렵 자주 어울리던 주변의 다른 미국 중산층 가정들도 상당수가 이혼 열병을 앓고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가 끼어들 경우, 이혼 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가정 내 경제적 약자의 권익이 어느 정도 보장받는 상황에서 관계가 유효하지 않다고 깨달은 커플의 이혼 선택은 한국과 비교해 당연하고 수월해 보였다. 물론 겉보기에만 그럴 뿐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상처는 만만찮지만, 적어도 선택지를 결정할 때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이혼에 대한 편견이 적고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이 비교적 편안하게 뒤섞인 환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양육비와 부양비 지급이 당연하고 경제적 약자가 이혼 뒤 갖는 권익이 보호받는 환경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게 아니라 가정 내의 재산과 당사자들의 정기적 수익을 분배하는 방식이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말이다.

내 친구 부부는 헤어지지 않았다. 기적과도 같은 치유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감히, 사랑이 갱신되고 재탄생되는 과정을 목격했다는 감격마저 느꼈다. 치유의 시간은 길었다. 과정 또한 격렬했다. 남편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이혼을 요구했다. 친정으로 돌아간 그녀를 찾아간 남편에게 그녀의 부모도 이혼을 요구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절실히 바라는 그에게 그녀는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회복 과정을 함께할 것, 그 과정에서 그녀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따를 것. 그녀는 남편과 함께 커플 상담은 물론 개인 상담까지 모조리 시도했다. 그들은 마치, 바닥까지 탐사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상담받고 서로에게 글을 썼다. 또 자신에게 글을 썼다. 스스로의 성장 과정부터 다시 맞닿아 쓰고, 정리하고, 그것을 서로에게 내보이는 과정이었다.

폭력에 겹겹이 노출된 여자들

1년 넘는 과정을 보낸 뒤 내게 건넨 그녀의 고백은 처음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문제를 대면하고 끝까지 내려가 살피고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이전의 자신보다 더 깊고 넓어졌노라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과거의 자신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을 경험했음을 수줍게 선언했다. 그들 부부는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애써 덮어둔 문제를 전면에 끌어내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아팠지만, 아픔을 통해 그들은 서로 이해하는 새 걸음을 내디뎠다. 자기 성찰 따위 떠올리지 않고 일과 성취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던 남편은 비로소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이 자기 서사를 쓰는 과정에 돌입했고 그것을 아내와 나누었다. 자신의 감정과 고민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고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은 듯 살아왔던 한 남자가 여린 속살을 드러내며 성숙한 관계란 의지해도 괜찮은 것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견 모든 것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겐 아직, 각자의 내면 회복이란 과제가 있다. 친구의 경우, 여전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듯 보인다. 이미 복잡하게 얽혀버린 가족의 틀에서 예전과 비슷한 삶을 영위해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이끄는 동력이던 신뢰가 무너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이를 기다릴 믿음이 있느냐는 거야말로, 진짜 신뢰의 유무를 시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봄 그들은 이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관계의 갱신을 선포하는 방식이었다. 가까운 지인 앞에서 하는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둘만의 여행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홍콩에서 보낸 어느 밤에 대해 그녀가 말했다.

“1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나는 남편을 즐겁게 하고 그의 마음에 드는 섹스를 하려고 애썼더라고. 그런데 그 모든 게 허무해졌어. 그를 먼저 즐겁게 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하니까 입이 열리더라. 느끼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어. 눈치 보고 무작정 배려하는 일도 그만두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의 모습으로 남아 있으려 노력하지도 않고. 나를 더 이상, 다른 침대 속에 있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들과 비교하는 것도 그만두고. 무조건 뱉어냈어. 아니, 난 네가 그렇게 하는 거 안 좋아해. 이렇게 움직여봐. 여기를 핥아. 저기를 만져. 각도를 바꿔봐. 이제 그만 다른 체위를 시도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그와의 잠자리가 좋았어.”

그녀가 요새 몰입하는 삶은 가정을 지키고 남편의 즐거움을 살피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즐거움을 재점검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삶에서 그녀가 즐거움이라고 불렀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재정립하는 중이다. 그녀가 깨달은 것은, 과거의 즐거움은 언제나 자신을 지우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안정을 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기쁨을 주는 여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그녀는 이제 세상의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어쩌면 비교조차 불가능한, 신랄한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폭력에 겹겹이 노출된 여자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일을 통해 그녀는 되살아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위기에서 자신이 맞닥뜨렸던 결혼의 위기와 연결 지점을 본다. 자신의 즐거움은 삭제된 채 저들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되는 걸 당연히 여겼던 삶 말이다.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메시지

지금 그녀는, 직장 내 성폭행 피해자가 되어 고된 시기를 보낸 친구의 곁을 지키는 중이다. 거리감을 유지할 수 없어, 그녀의 고통을 그대로 껴안듯 함께 겪는 그녀는 어젯밤 내게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온몸과 마음에 비수가 꽂힌 듯이 아파. 어쩌면 좋을까. 세상은 왜 이토록 많은 아픔을 뱉어내야 할까. 난 말이야, 더 이상 인과를 믿지 않아.”

당장 그녀 곁으로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선한 의지를 믿고 인과와 응분의 대가와 책임과 결과의 유기적 관계를 부르짖던 그녀에게서 듣는 또 다른 고백이었다. 새벽에 눈떠서 내내 집안을 서성이고 말았지만 마음만은 그녀 곁을 맴돌았다. 모든 게 너무 멀고 아득한데, 아픔만큼은 생생했다. 나는 몇 달 전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한다. 그녀가 그 말을 지표처럼 보고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모든 것은 어떤 이유를 두고 벌어진다는 믿음, 당분간은 갖고 가기로 했어. 대신 과거를 해석해서 의미를 뒤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부터 의미를 만들어가려고 해.”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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