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다.
지갑에 5만원짜리 들고 다닌 건 임오군란 때 일이다. 1만원짜리가 있던 것도 갑오경장 때다. 신용카드 한 장밖에 없다. 전화카드 한 장도 아니고. 지갑이 주인과 다르게 아주 슬림하다. 혹시 이 지갑을 누가 거리에서 줍는다면 주운 사람에게 죄짓는 것 같다.
난 왜 돈이 없을까? 동명의 책도 있던데 그 책을 읽으면 돈이 생길까? 책값만 나가겠지? 오늘 당장 돈이 없는 이유는 어젯밤 기어코 날 수제맥줏집으로 이끈 대학동기놈 때문이다. 짠돌이로 유명한 ‘근마’가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인 1차를 계산할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근마는 단골 에일맥줏집이 있다며 때 밀듯 내 등을 떠밀었다. 살살해라. 진짜 때 나올라. IPA(인디언페일에일)는 달콤쌉싸름했고 호가든은 여전했다. 근마는 소주 마시듯 에일을 들이부었다. 쩝쩝거리며 안주도 폭풍 흡입했다. 푸드파이터니? 술값이 9만원 넘게 나왔다. 매콤씁쓸했다. 근마는 악마였다. 우리 와잎(아내)한텐 “니가 샀다”고 했다. 먹고 떨어져라.
<font size="4"><font color="#C21A1A"> 키친랩, 매장 화덕서 수제피자 구워 </font></font>주야장천 돈을 버는데 매달 마이너스다. 이상한 건 강의나 외부 원고 등으로 부업도 하는데 노상 똑같다.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거실로 눈길을 돌렸다. 새로 나온 캔맥주를 한 짝 들여놓은 채 빨대 꽂아 드시는 와잎님이 소파에 ‘풀밭 위의 식사’처럼 누워 계셨다. 옆에는 배달겨레답게 주문한 치킨이 굴러다녔다. 치킨은 살이 안 찐다. 살은 니가 찐다. 아들 녀석의 축구화가 5켤레, 골키퍼 장갑 4개, 옷장에는 옷이 그득, 레고 장난감이 장식장 두 개를 가득 채웠다. 버는 족족 줄줄 새는 구멍이 거기 있었다. 적폐는 파악됐지만 청산은 불가해 보였다. 결국 내 탓이오. 나라도 줄여야 한다. 마통(마이너스통장)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돈 아낀다고 궁상떨 것 없다. 시작은 우아하게 가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시작해 지점을 늘려가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키친랩’이 첫 번째 주인공. 키친랩은 매장 내 화덕에서 직접 수제피자를 구워 내놓는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마크하다 초기 탈모까지 겪은 정치부 이아무개 기자와 맛있는 음식이라면 환장하는 10년차 직장인 유아무개씨와 6월19일 저녁, 키친랩 서울 홍대점을 찾았다. 매장엔 젊은 연인들로 북적였다. 젊음과 연애 가운데 뭐가 부러운지 헷갈렸다.
앤티크하면서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오픈 주방 한쪽에 화덕이 있었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연구소’라는 이름답게 메뉴판이 실험리스트를 닮았다. 대표 메뉴인 감베리화덕파스타(1만4900원), 리코타피자샐러드(1만6900원), 라이스팬스테이크(9900원)를 추천받아 주문했다. 호기롭게 호가든(7천원)도 주문했다. 각자 연애 중인 둘에게 가격이 적당한지 물었다. 평소 드나들던 이탈리아 레스토랑 가격에 비해 20~30% 저렴한 것 같다고 했다.
먼저 스테이크가 나왔다. 달군 프라이팬 위에서 소고기가 춤을 췄다. 맛본 유 직딩이 “맛있다”를 연발했다. 뭐는 안 맛있겠니?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을 태세로구나~. 질세라 나도 한입 베어 물었다. 음~ 육즙과 익힘이 적당했다. 호가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캬~ 시나브로 고기가 사라졌다.
화덕파스타와 피자샐러드가 동시에 나왔다. 직원이 직접 구운 빵을 갈라주니 그 속에 파스타가 숨어 있다. 빵을 찢어 그 위에 파스타를 얹어 먹었다. 바삭한 빵의 식감과 파스타의 고소함이 혓바닥을 어루만졌다. 이 기자는 피자샐러드가 맛있다고 어서 먹어보라고 난리다. 역시 먹깨비라 빠르구나~. 피자 위에 샐러드와 리코타 치즈를 올려 한입에 앙. 시럽을 뿌려 달달한 치즈와 피자의 담백함 사이로 샐러드의 상큼함이 치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유 직딩이 아까와 똑같이 말했다. “마싣다, 마싣다.” 니도 먹방을 많이 보신 모양이구나~. 세 음식 모두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은 편이었다. 키친랩은 에버랜드에 납품되는 삼성 웰스토리에서 식자재를 공급받는다고 한다. 저렴한 식자재로 단가를 맞추기보다 제대로 된 음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동경야시장, 간단히 2차 걸치기 좋아 </font></font>1차를 무겁게 먹은 술꾼들은 항상 가벼운 2차를 선호한다.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동경야시장’은 여기에 맞춤한 프랜차이즈다. 6월21일 저녁, 취재원 3명과 동경야시장 서울 연남동점을 찾았다. 듣던 대로 모든 안주 가격이 7천~9천원이다. 모듬사시미 3종(9천원), 명란마요해물야키소바(7천원), 마늘칠리새우(7천원)를 주문했다. 안주가 싸면 술값이 비싸기 마련. 크림생맥주(3천원)는 착했지만 탄산 맛이 좀 약했다. 사시미(생선회)도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광어, 참치, 연어가 3~4점씩 나왔다. 참치에 생와사비를 얹어 한 점 떴다. 가격 대비 식감은 괜찮았다. 같이 간 취재원은 칠리새우가 맛있다고 했다. 가격 대비 양도 푸짐했고 중새우의 육질이 탱탱했다. 크림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해물야키소바를 먹었다. 양은 적당한데 면의 탄성이 떨어져서 뚝뚝 끊겼다. 간단하게 2차를 걸치기 딱 좋은 술집이었다.
누가 뭐래도 외식 하면 삼겹살이다. 앞의 두 곳이 연인이나 친구와 가기 좋은 집이라면 ‘엉터리생고기’는 가족과 갈 만한 곳이다. 1인당 1만1천원에 삼겹살 무한리필. 고기에 환장한 식솔을 거느린 가장에겐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지점별로 무한리필이 안 되는 곳이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엉터리생고기, 1만1천원 생삼겹 리필 </font></font>6월20일 저녁, 가족과 엉터리생고기 서울 이수점을 갔다. 반찬은 셀프. 삼겹살과 목살, 우삼겹이 2시간 리필된다. 와잎은 “간만에 목에 기름칠 좀 하겠구만~”이라며 소주를 주문했다. 오늘 아침에 먹은 건 인공고기니? 기름칠만 하지 소독까지 하려고 하니? 우삼겹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은 굽는 족족 집어먹었다. 처묵처묵하는 처자식을 보니 보기만 해도 배가 고팠다. 먹으려고 보면 고기가 없었다. 가 유행이라더니 환장고기가 따로 없구나. 40여 분 지나자 처자식은 배가 부르다며 구워놓은 고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니들이 배가 부르구나~. 그제야 소주 한잔 걸치며 고기 맛을 봤다. 생고기 삼겹살은 두툼하니 맛이 괜찮았다. 우겹살도 나쁘지 않았다. 두 개나 먹었을까? 아들 녀석이 말했다. “엄마~ 집에 언제 가?” 와잎이 답했다. “아빠 다 드셨으니 이제 가야지~.” 아놔~. 난 절규했다. 가성비고 나발이고 제일 좋은 건 회사에서 먹는 밥이야~.
X기자 xreporter21@gmail.com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골프’ 두고 “박세리도 국민에 큰 힘 됐다” 점입가경
우크라, 러에 에이태큼스 발사…푸틴, 핵 문턱 낮춰
이재명 지시·묵인 증거없이…‘관용차 혐의 추가’ 법카 유용 기소
‘세계 1% 과학자’ 4년째 재판에 묶어둔 ‘검찰 정권’
현대차 울산공장 연구원 3명 사망…차량 테스트 중 질식
생후 18개월 아기 가슴에 박힌 총알…두개골 떨어지기도
검찰을 그려봤더니 [한겨레 그림판]
“김건희, 무당에 성경 읽어주는 여자” “여의도엔 이미 소문 파다” [공덕포차 2호점]
내가 쓰는 폼클렌저, 선크림 잘 닦일까?…‘세정력 1위’ 제품은
‘이재명 법카 혐의’ 기소에…“무혐의 처분인데 검찰 ‘마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