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기원전 5500년쯤 중국에서 태어났다. 가늘고 매끈하다. 짝으로 다녀야만 효용성이 있다. 마른 몸매에 내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마지막 힌트. 나는 음식을 나른다. 빙고, 젓가락.
하루에 한두 번은 마주하면서도 막대기 두 개의 존재감을 느끼며 밥 먹는 사람은 없다.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에드워드 왕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잊고 사는 젓가락의 통사를 용케도 흘림 없이 집어올렸다.
(따비 펴냄)은 영어로 쓴 최초의 젓가락 역사서다. 책은 젓가락질이 아동의 뇌 발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등 요새 유행할 법한 뻔한 논의로 흐르지 않는다. ‘종방향’으로는 젓가락을 둘러싼 역사, ‘횡방향’으론 젓가락 문화를 촘촘히 교직해낸다. 포크와 나이프처럼 폭력적으로 “베거나 찌르거나 난도질하거나 잘라내”며 해체하기보다 젓가락으로 휘휘 젓듯 동아시아 5천 년의 음식문화를 조리했다. 물론 주요리는 중국이고, 반찬은 ‘젓가락 문화권’인 일본·베트남·한국이다. 젓가락의 기원과 변천, 젓가락 문화권, 젓가락의 예절과 상징, 일회용 젓가락의 환경문제까지 벽화뿐 아니라 옛 문헌과 현대 논문을 참고해 다뤘다.
젓가락은 처음엔 식사 도구가 아니라 조리 도구였을 것이다.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살던 북중국 사람들은 삶거나 끓인 뜨거운 국물 음식을 좋아했다. 이들에게 젓가락은 식재료를 뒤섞고 휘젓는 데 매우 유용했다. 식사 도구가 된 뒤 국에 있는 채소를 건져 먹는 보조에 지나지 않았다. 젓가락이 숟가락과 경합해 우위를 차지한 건 주식이 (낟알이 작은 기장에서 점착성이 있는) 쌀이 됐을 때, 완전한 승리를 차지한 건 기원전 1세기 밀가루가 확산되면서부터다. 중국에서 국수와 만두가 유행하면서 젓가락이 최적의 식사 도구가 된 것이다.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이어진 젓가락의 위상은 한반도와 일본, 동남아시아 북부를 사로잡았다. 14세기엔 이 드넓은 지역에 젓가락 문화권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세계는 손,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 세 문화권으로 나뉘게 됐다.
‘젓가락 문화권’ 가운데 한국은 유일하게 숟가락이 주된 식사 도구다. 한국인은 유독 금속 수저를 선호한다. 금·철·구리 등 풍부한 매장량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중국은 한 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공동 식사 방식이 널리 퍼지면서 젓가락 길이가 25㎝ 정도로 길어졌다. 젓가락이 놓인 방향도 상 가운데 음식을 향해 세로로 바뀌었다. 반면 일본은 개별 식사 방식을 유지한 탓에 젓가락 길이도 짧고 가로로 놓인다. 일본은 일회용 젓가락을 처음 사용한 나라다. 사람이 한 번 사용한 젓가락에는 그의 영혼이 깃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젓가락 문화권의 각기 다른 사정을 다룬 5장과 더불어 젓가락의 고유 특성을 은유한 6장 ‘떨어질 수 없는 한 쌍’도 흥미롭다. 젓가락의 불가분성 때문에 주로 결혼·부부·연인을 상징하지만 종종 삶 전체로 환유돼 부러진 젓가락은 일본에서 불시의 죽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손을 씻지 않고도 깔끔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어쩌면 ‘긴 손가락’. 프랑스 평론가 롤랑바르트는 이렇게 예찬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품격 있는 식사 도구. ”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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