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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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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삶을 구원할 수 있나

동거와 연애 자체로 충만한 삶 사는 비혼주의자 ‘승은’…

가족의 관계성으로 내 삶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등록 2017-06-02 14:34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육 년 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였다. 장소는 미국 할리우드 거리에 자리잡은 퓨전 일식집이었다. 바가 있는 1층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한적한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늦은 밤, 어두운 구석 테이블에 숨어들듯 앉았다. 지금은 전남편이 된 L은 와인을 가져다주겠다며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였다.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일까 지레 초조해질 무렵 근처를 지나가던 G가 인사를 건넸다.

싱그럽고 찬란하고 눈부셨던

짙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미남인 그 역시 이곳 태생이 아니었다. 결혼과 함께 미국에 왔다가 이혼한 이탈리아계 영국 남자였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4년째 L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 어린 딸들은 그와 약혼녀 S를 아기 때부터 잘 따랐다. 나는 출산일이 다가온 S의 안부를 묻고 그는 내 아이들의 이름을 각각 호명했다. 새로 태어날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자 G가 답했다.

“20대를 넘기고 나니까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되더라고. 그냥 내 삶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졌어.”

아이의 존재를 통해 삶의 무의미를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좀더 친한 사이라면 되물었을 것이다. 그때 L이 돌아왔고 대화는 끝이 났다. 1년 뒤 G는 작가로서 살아가고 싶다며 엘에이(LA) 생활을 정리하고 남미의 작은 마을로 떠났다. 그는 작가가 되지 않았지만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남미 생활은 1년 만에 끝났고 그의 가족은 엘에이 근교에 다시 자리잡았다.

승은을 만난 건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두 번째 책이 나온 직후 그녀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하얀 모니터 위로 낯선 송신인 이름이 반짝거렸다. 승은이 속한, 청년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감성노리협동조합’에서 꾸리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인문학카페 36.5도’라는 카페를 강원도 춘천에 열어 지역 청년들의 문화예술 모임을 4년째 꾸려가고 있었다. 몇 차례 전자우편이 오갔고 7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춘천역에 내렸다.

맨 처음 만난 그녀는 초여름처럼 싱그러웠다. 당시 스물아홉이었을 그녀는, 스물아홉답게 찬란했고 스물아홉 이상으로 눈부셨다. 그녀와 함께 나온 사람은 공동체에서 ‘해달’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동거인이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협동조합 멤버들은 서로를 이름이 아닌 별칭으로 불렀다.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썼다. 글쓰기 모임을 꾸리고 그림을 배우고 노래를 만들고 독립출판물을 내기도 했다. 특공무술 사범을 하던 학교 밖 청소년이던 ‘검은 새’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책을 만드는 등 다방면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고 있었다. 가까이 살면서 사이좋게 카페를 꾸리고 지역사회 모임을 하고 삶을 공유하는 모습이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이듬해 겨울, 다시 승은을 만나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는 4년 차인 그들의 삶이 큰 갈등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비결을 묻자 대답했다.

비혼 선언, 다른 우리를 위한 상상

“공동체를 시도한 지 7~8년째예요. 학교생활에 회의를 품고 그만둔 뒤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도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방식을 찾아다녔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각종 아르바이트도 했고 관심 있는 강좌를 들으러 다니다가 학생운동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협동조합을 하게 된 계기는 원래 있던 운동 방식에 답답함을 느꼈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함께 새로운 대안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부터였어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과정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사례를 많이 겪었거든요. 지금 자체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보니 지금 함께하는 팀원들을 만났어요. 공동체라고 해서 모든 걸 함께하는 건 아니에요. 독립적 공간을 존중해줘야 해요.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받아들이면서 많은 고민을 설명할 언어를 발견했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정규교육과정을 밟고 뒤늦게야 가족과 사회의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던 나로선,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경험해가는 용기가 경이로웠다. 그녀의 설명은 단순명쾌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신 덕분이에요. 꽉 짜인 한국식 성장 과정에 벗어나 제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이혼으로 느슨해진 가족관계로부터 생겼어요.”

가족의 관계성으로 내 삶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 가족의 연대가 불행과 폭력의 연대가 될 수 있다는 이른 발견이 승은에게 좀더 일찍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몇 차례의 연애와 동거를 통해 더욱 강화된 인식은 주어진 가족제도를 통해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다가온 비혼주의 선언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과잉 가족공동체 문화에 대한 반기

“당시 남자친구는 제 비혼 선언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지만, 저는 제 존재를 걸고 고민 중이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어요. 연애에서조차 드리워진 가부장성을 온몸으로 느꼈거든요. 동거 자체로 충만한 삶이 되는데, 왜 우리는 결혼을 통해 기존 가족제도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할까. 결혼을 통해 영원한 사랑, 확실한 관계를 보장받고자 하는데, 관계란 확실하게 하려면 할수록 그 안에서 지쳐버린다는 걸 느꼈거든요.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에게도 말해요.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지만, 함께 있는 동안은 불확실하더라도 계속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제게는 공동체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이런 문제의식을 좀더 진척시키고 행동에 옮길 수 있었어요. 누군가는 결혼을 통해 노후의 불안이라든가 외로움을 해결하려 하는데, 저는 공동체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혈연적으로 얽혀 있지 않음에도 가족보다 훨씬 서로 존중하고 이대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얻고 있거든요. 노후 불안은 가족이 아닌 사회보장제도와 공동체적 삶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로움이라면 인간은 애초에 외로운 존재예요. 가족을 통해 그 외로움을 보상받으려 하면 오히려 적절한 거리감을 파괴하고 관계 및 자아의 성장을 게으르게 해요. 비혼주의는 한국의 과잉 가족공동체 문화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거든요. 대안을 말하지 않아도 정상이라 주어진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닌 대로 살아도 좋다는 걸 선언하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사회적 서약을 하는 것이 상징적 의미가 되고 간절한 이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동성애 커플 경우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결혼제도에 들어가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삶의 당연함을 되묻고 그렇지 않은 삶을 미완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서 비혼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거고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부드럽지만 명료하게 말할 줄 알았다. 삶의 스승은 나이와 상관없이 경험의 너비와 성찰의 깊이, 삶의 자세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을 나는 그녀에게서 배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 또한 인정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당연한 건 아니거든요. 다르게 질문하고 살아가는 삶 또한 존중받았으면 좋겠어요. 지구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저는 인간의 위기이지 지구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인간이 사라져줘야 지구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저는 2세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아이를 낳는 것이 마치 여성의 임무인 양 이야기되는 것도 불편해요. 키우고 사랑하는 걸 좋아하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도 제겐 충분하거든요.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무의미 자체를 받아들이는 걸 계속 연습해나가고 싶어요. 한순간도 뽕에 취하지 않고 살기는 힘들지만, 그 뽕에 취해서 나와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좋아요. 무의미함 자체를 우울하더라도 받아들이고 가려 해요. 또 고마운 건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한국 가족주의의 폐단인 나이주의도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제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은, 저보다 아홉 살 어린 학교 밖 청소년이던 검은 새였거든요. 그녀는 항상 불안하기 때문에 지금 불안하지 않다는 말을 제게 해줬어요. 적절한 거리감은 상대는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도요. 살면서 관계를 많이 맺는다고 생각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관계를 맺는 경험은 너무 적어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그 말 자체도 정규교육의 길을 전제로 한 말이거든요. 관계에 대한 상상력은 내 경험치로 넓어져요. 짐작만 하지 말고 찾아가보고 다른 관계를 경험해보면 삶과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과 감수성이 생겨요.”

함께 커야 사랑이다

다양한 공동체를 통한 관계 연습은 사랑에도 힘을 발휘한다. 연애도 가족도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거리를 조절하고 함께 사는 법을 새롭게 배우고 실습할 수 있다. 결혼과 가족의 틀이 아니라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 관계 속 자존감이 높아진다. 사랑은 미성숙한 나를 무작정 받아주고 있는 그대로 머무르게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함께 자라지 않으면 사랑은 사랑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집착은 게으름에서 나오곤 한다. 당신이 좀더 쉽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랄 때 그렇지 않은 당신의 나머지는 모조리 분노와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란 틀로 너무 쉽게 사랑을 짓고 안주하려 한다. 성찰과 성장이 없는 자리에서는 믿었던 위안보다 고통이 더 클 때도 많다.

공동체 내 그녀의 별칭은 ‘새벽’이다. 늦은 밤 맨 처음 받았던 그녀의 부름은 어쩌면 새벽이 오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외로움은 기본값이고 외로움은 존재의 무의미에서 나온다. 어쩌면 행위만이 남는다. 그리고 행위는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남긴다. 포기가 아니라 의지를, 의지와 함께 오는 자유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새벽이 내게 준 속삭임이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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