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유행어 가운데 ‘이심전심’이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순자 마음이 전두환 마음이란 뜻”이라고 깔깔거렸다. 속사정도 모르면서, 또 다른 유행어 ‘대머리 전두환’ ‘전봇대 전두환’과 어울려 괜히 웃겼던 것 같다.
1989년 12월17일치 를 보면 “‘연희궁’에서 ‘원로회의’를 운영하며 노후를 보내려 했던 전씨 내외는 그러나 ‘전-이 부부 체포결사대’의 공격 등을 받아 결국 재산을 자진 헌납한 채 백담사로 고행길을 떠났다. (…) 이 무렵 전씨 부부의 참담한 심정을 상징하는 말로 ‘이심전심’이 원용됐다”고 풀이했다.
이순자씨가 3월24일 자서전 에서 자기 부부를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썼다. 열흘 뒤, 남편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광주 사태로 직간접적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또 상처와 분노가 남아 있는 한,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없을 수 없다. (…) 나를 비난하고 모욕 주고 저주함으로써 상처와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나로서도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순자 마음이 딱 전두환 마음이다.
대학 시절, 어쭙잖게 쇠(꽹과리)·장구를 잡아본 처지라 씻김굿에 대해 할 말이 조금 있다. 한이 많은 어떤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며 인간에 해를 끼치는 잡귀가 된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씻김굿(또는 씨끔굿)을 통해 한을 풀면 원혼은 저승에서 신격인 ‘조상’이 되어 가족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전씨가 어느 대필 작가의 힘을 빌렸는지 모르지만, 그가 자처한 ‘씻김굿의 제물’은 더러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 함부로 입에 올릴 게 아니다. 씻김굿은 최상의 정갈한 절차와 티끌만큼의 부정도 타지 않은 제물만 허락한다. 물도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당샘’ ‘당우물’ 것만 쓴다. 음식을 다루는 ‘화주’들은 입에 백지를 물거나 칼질하다 손을 살짝 베어도 부정할까 싶어 교체된다.
전씨가 ‘제물’ 운운할 자격도 안 된다. 조선시대 각 고장의 생활상을 정리한 를 보면, 시조 이성계는 고려 재상 정몽주를 살해 교사했지만 그의 절개를 아껴 돌비석을 세웠다. 며칠 뒤 번갯불이 번뜩이고 우레가 요란하더니 비석이 산산조각 났다. 예로부터 귀신은 자격 없는 자가 제사를 지내는 ‘비례’(非禮)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당시 학살 진압 책임자인 전씨가 ‘제물’로 나서겠다고 한데서야.
전씨가 어찌어찌 이 과정을 넘긴다 해도 ‘씻김굿의 제물’이 되려면 상당한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비유에 불과하더라도 그 과정이 대단히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씻김굿에서 희생되는 소를 ‘지태’라 높여 부른다.
지태의 앞뒤 다리를 밧줄로 묶고 도끼로 이마 한가운데를 내리친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지태의 턱 아래쪽에 식칼을 넣어 숨을 끊고 떡메로 엉덩이 부분을 몇 차례 가격하면 완전히 숨을 거둔다.
굿에서 쓰는 말투를 빌리면, 전씨는 지금도 압제자에 의해 숨지고 상한 민중을 ‘곧은 목지’로 보는 것 같다. 곧은 목지는 “너무나 당한 나머지 목이 부러져 붙어버린 병신, 그래서 앞만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병신”으로 풀이된다. 백기완에 따르면, 그러나 우리는 ‘쇠뿔이’다.
“병신은 원래 가장 극악한 탄압·착취에 의해 생긴 사회적 결과이므로, 그것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나섰을 때 곧은 목지는 비로소 자기를 찾는 것이며 자기를 망친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모든 사람들, 참으로 억울하게 당하다가 마침내 병신이 된 사람과 그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그 원통함을 해결하고자 나서는 병신, 거기서 한 시대의 암울을 한꺼번에 질러버리는 사람을 일러 병신이라 하지 않고 ‘쇠뿔이’라고 한다.”
(황루시, 문음사, 1988)
(무라야마 지쥰, 동문선, 1990)
(이필영, 웅진, 1994)
(민족굿회, 학민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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