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5일 첫 방송을 한 tvN 드라마 에는 ‘혼술’을 즐기는 이들이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인 진정석은 자신이 혼술, 즉 혼자 먹는 술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혼술은 다른 사람과의 페이스를 맞추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짓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주인공은 대신 호젓하게 술상 앞에 앉아 천천히 음미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는 누구의 방해도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철저히 혼자가 된다.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font size="4"><font color="#008ABD">무리생활의 흔적, 함께 먹기 </font></font>혼술 또는 혼밥. 최근 들어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밥을 먹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들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표현이 생겨나고 여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동안 밥을 혼자 먹지 않았나? 혹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것인가? 아니면 혼밥이 오늘날 어떤 사회적 기제와 관련을 맺고 있어서일까?
앞서 언급한 에 나오는 장면에 기대어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혼술 또는 혼밥이 타인과의 관계에 매몰된 자신을 되찾으려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과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밥 먹을 때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먹는 행위는 수면과 같이 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자신의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누군가 대신 먹어줄 수 없는 것처럼 ‘먹기’라는 행위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것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 개인적 행위를 더 이상 개인적 영역 안에서만 하지 않게 되었다. 먹는다는 행위 앞에 ‘함께’라는 수식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추측건대, 먹기라는 개인적 행위를 다른 개인들과 함께하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는 무리생활의 관습이 한몫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의 위협을 피하려고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이 익숙해졌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무리 안에서 수렵과 채집을 담당하는 이들과 요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나뉘면서 ‘함께 먹는다’는 의례는 그 의미가 강해졌을 가능성이 많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례가 곧 각자 맡은 일을 잘 수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는 인류의 전통은 가족 형태를 중시하는 가족(중심)주의가 등장한 이후 한층 공고해졌다. 여전히 밥은 남이 아닌 내 입안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밥을 먹는 공간엔 항상 다른 누군가가 존재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과도한 연결의 시대 </font></font>1990년대를 풍미했던 한 그룹의 노래는 밥상의 추억을 불러들인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요”
가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밥상은 여러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다보니 밥상에선 많은 일이 일어났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관용어가 존재할 정도로 밥상의 어느 모서리에선 훈계의 꽃이 피어났다. 훈계 내용은 대체로 나이가 적은 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한 것이었다. 밥상머리 교육은 때때로 훈계가 아닌 인생에 대한 계도로 이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함께 밥상에 모여 밥을 먹는 관습은 관계에 대한 정의로도 발전했다. 식구(食口). 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밥을 매일 같이 먹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 즉 가족에 대한 정의도 밥상에서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밥상이 가지는 의미도, 식구가 표상했던 관계성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앞의 노래가 밥상에 함께 앉아 있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관습은 음식을 나눔으로써 상대와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장 친밀한 표현이기도 하다. 타인이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는 한 함께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다른 사람과 함께 밥 먹는 관습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하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사뭇 다른 의미의 결을 만들어낸다. 특히 요즘같이 이름을 아는 타인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타인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됐음을 느끼는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초연결성’(Hyperconnectivity), 즉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기계, 나아가 기계와 기계까지도 긴밀하게 관계하는 것이 현실화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거의 방식은 오늘날의 방식과 사뭇 다르다.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직접 대면하거나 편지나 전화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한 것이었으나, 오늘날의 우리는 전자우편, 영상통화, 인스턴트 메시지, 실시간 채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수많은 방식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다.
초연결성의 접두어 ‘hyper’가 지칭하듯,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연결 욕구를 넘어서는 ‘과(도)함’의 특성을 지닌다. 다른 식으로 보자면 내가 타인과 연결되려는 욕구가 생겨나기도 전에 나와 타인을 연결한 ‘선(先) 연결’ 상태가 고착되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관계의 휴면, ‘나’와 밥 먹기 </font></font>이와 같은 관계맺기 방식의 변화는 밥을 먹는 관습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 간에 연결될 기회도 가능성도 없던 과거에 ‘함께’ 밥을 먹는 관습은 생존을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일이었다. 함께 밥을 먹음으로써 서로의 안녕을 파악하고,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굳이 함께 밥을 먹지 않더라도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 맺고 있다. 소통의 질과 관계성에 대한 만족도에는 개별적 차이가 있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충분히(어쩌면 과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주인공)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의 오프닝에는 이런 내용이 항상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이 드라마에는 제목 그대로 혼자 음식을 즐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이 내레이션이야말로 오늘날 혼자 먹는 밥의 의미에 대해 적확하게 묘사하는 설명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 고로는 직업의 특성상 매일 고객을 만난다. 고객들 중에는 그에게 무리한 걸 요구하는 이도 있고, 무례하게 구는 이도 있다. 하루 종일 고객을 방문하고 여러 업무에 시달리다 그는 순간 ‘배가 고프다’고 느낀다. 그리고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혼밥의 시간을 가진다. 고객이라는 타인을 위해 하루를 살았던 그지만,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함께’ 먹는 밥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된 이상, 우리는 더 이상 밥을 먹기 위해 함께할 누군가를 반드시 찾지 않아도 된다.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관습적 명제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면대면의 관계맺음이 유일무이한 선택지였던 역사적 기간이 지나감에 따라 식사의 의미에서 친교와 소통이라는 가치가 이전보다 퇴색한 면도 있다.
대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른 가치들이 밥을 먹는 행위에 덧붙여진다. 예컨대 나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고독과 나다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혼밥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찾는 대신 ‘먹다’는 본능의 선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감각을 일깨운다. 말하자면 혼밥에서 타인과의 관계성은 일시적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더 살아나는 셈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인분 이하는 없다는 세상의 폭정 아래 </font></font>그래, 이제부터는 혼자 즐기는 거야.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보는 눈이 신경 쓰일 때가 있다. 왜, 밥 같이 먹을 사람도 없어? 혹시 사람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 거 아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질문의 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해보자. 그 산은 무신경의 땅 위에 비겁함의 자양분을 먹고 서 있는 경우가 많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과거와 달리 무리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다. 따돌림을 받거나 사회생활의 실패로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혼자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여전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2인분 이하의 존재는 마치 없다는 듯이 구는 세상의 폭정 아래 혼자이기를 고집하는 당신과 나의 오늘이 녹록지 않을 거란 얘기다. 그래도 고집을 피울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잠시 함께이지 않아도 괜찮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므로 다시 되묻는다. 자리 있나요? 혼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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