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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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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넘겨씌운 죄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빼앗긴 숨>
등록 2016-09-23 11:03 수정 2020-05-02 19:28

청결은 어떤 의미에선 사랑이다. 청결이 나와 너를 깨끗이 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일 때 그렇다. 산모와 아이의 관계야말로 사랑으로서의 청결을 보여주는 본보기다. 깨끗한 아이를 보며 산모는 충만감을 느낀다.

가습기살균제 초기 피해자가 임신부, 산모,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그들이 단지 아이와 조금 더 깨끗하게 지내려 한 게 죄라면 죄였다. 어느 날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입원했지만 의사도 정부도 정확한 원인을 말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우연히 닥친 비극에 황망할 뿐이었다.

2011년 8월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자 피해자들은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들은 ‘내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떨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짓밟은 건 몸과 목숨만이 아니었다.

피해자의 죄책감은 5년째 방치됐다. 가해자는, 안전성 검증도 없이 실내에 농약 성분 독성물질을 뿌리는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번 기업과 그 기업을 용인한 정부였다. 질병관리본부 발표 뒤에도 정부와 검찰은 피해자 조사·구제, 가해자 수사를 미적댔다. 가해 기업은 사과와 배상 요구에 “무성의함과 파렴치함”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2차 가해자였다. 외려 피해자에게 죄와 고통을 넘겨씌웠다. 2016년 검찰 수사가 5년 만에 본격화했고, 환경부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이외 장기 질환 인정 범위 확대를 위한 연구·조사에 착수했다. 국회에선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열렸다.

지난 8월 말 청문회를 앞두고 (한울엠플러스 펴냄)이 출간됐다. 지은이는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 백서’(2014년 12월) 총괄 편집인이자 보건복지 전문기자 출신 안종주 박사다. 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전말을 다룬 책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 가해 기업과 정부 행태, 세계적 환경 재난들, 나노물질·스프레이 제품의 위해 가능성 등을 담았다. 간혹 어려운 화학 용어와 복잡하게 얽힌 사건 관계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하나하나 소개와 맥락을 빠뜨리지 않는다.

맥락을 이해하면 또다시 질문이 남는다. 이런 질문들조차 풀리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죄책감도 풀릴 도리가 없다.

‘1994년 유공주식회사가 출시한 국내 첫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연구개발팀(팀장 노승권)은 제품의 인체유해성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2006년부터 많은 어린이가 봄이 되면 가쁜 숨을 내쉬며 살려달라고 서울아산병원 등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왜 어느 소아과 의사도 5년간 방역 당국에 역학조사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자신들 선전대로 어린이에게 안전한 제품이었다면 옥시 영국 본사는 이 제품을 왜 영국에서는 팔지 않았나? 옥시 변호를 맡은 김앤장은 가해 은폐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1960년 입덧완화제 탈리도마이드의 안정성을 문제 삼아 1년 이상 불허한, 미 식품의약국(FDA) 심사관 켈시 같은 공무원·의사가 왜 한국엔 없는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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