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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전략, 사실관계와 논리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말하기>
등록 2016-08-31 20:55 수정 2020-05-03 04:28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대통령이었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후보 시절) 노 후보 캠프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노 후보는 글에 대한 안목과 인식이 깊은데다 어느 경우에도 똑같은 문장의 반복이나 수사적 표현을 거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나남 펴냄, 2009)라고 되돌아봤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8년간 대통령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한 강원국도 “노 대통령은 실제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4)고 술회한다. 강원국은 노 전 대통령의 글쓰기는 잔재주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노 대통령은 머릿속에 연설문 전체를 그린 듯이 입력시켜놓고 자유자재로 재배치한다. 심지어 표현이나 문구 하나까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얘기한다”고도 적었다. 글쓰기에 뚜렷한 비법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강원국에게 음식을 빗대 말한 글쓰기 비법 몇 가지는 이렇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을 채우지 않도록 (글에서)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더불어 그는 말 잘하는 대통령이었다.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은 최근 낸 책 (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말에 ‘지도자의 철학’을 담기 위해 애썼다고 평가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재주는 다른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말재주 수준이 아니고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가치와 전략, 철학이 담길 말을 쓸 줄 알아야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

대통령 시절 논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탓에 끊임없는 ‘설화’에도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말을 더 했다. 말이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연설기획비서관 등에 “민주주의의 핵심은 설득의 정치이다. 그래서 ‘말’은 민주정치에서 필수적이다.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말에서 논리와 사실관계는 필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2006년 노 전 대통령의 ‘독도 연설’이 그렇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윤태영 전 대변인이 업무노트 100여 권, 포켓수첩 500여 권과 1400여 개에 이르는 한글파일로 기록한 ‘노무현의 말’ 가운데 울림을 주는 것들이 책에 기록됐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거나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같은 것들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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