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청년 작가 정현석과 30대 청년 사진가 달여리는 2016년 서울의 모든 무너지는 현장에 투신해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이 모든 곳에서 괴물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오늘도 현재진행형인 괴물의 시간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
상인과 손님으로 서로를 환대하던 공간이 욕심으로 무너져가는 도시, 서울의 오늘이다.
그날 나는 지하철 안에서 ‘아현포차’ 집행 소식을 접했다. 정부에서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강제종료일이라고 통보한 바로 다음날이라 아침부터 세월호 유가족이 특조위의 출근을 지켜본다고 했다. 7월1일 아침은 그 현장에 가던 참이었다. 나는 황급히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집행 현장에 가는 때만큼 긴장되는 시간도 드물다. 온갖 경우의 수를 상상한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구청 직원이 다녀간 뒤였다. 가게에서 쫓겨난 할머니 상인들이 도로 위에 나앉아 있었다. 열 곳 포장마차 입구를 모두 합판으로 막아놓았다.
“행정도 이런 식이면 폭력”아현포차,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 3번 출구 아래 오래된 포장마차 골목. 가게마다 이름이 있지만 이들을 통칭해 아현포차라고 부른다. 30~40년 전부터 아현시장 앞에서 자생한 포장마차 골목은 오랜 세월만큼 오간 사람도 많다. 여름밤이 깊어가는 계절이면 포장마차 앞 노점 위로 술잔이 기우는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 같지 않다. 아현포차는 철거 위기다. 마포구청의 협조문에 따라 7월1일 노점을 철수하고 나서부터다.
이곳 상인 대부분은 70대 넘는 할머니들이다. 여기가 아니라면 다시 장사하기 어렵다. 인근 월세방에 사는 할머니는 당장 장사를 못하면 월세를 낼 여력이 없다.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앉게 된 배경으로 2014년 준공된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이하 마래푸) 주민들의 민원이 있다. 마래푸 입주자대표회의는 올해 초 교통 불편과 미관상의 문제로 아현포차 철거를 요구했다. 그리고 마포구청은 기어코 행정대집행을 감행했다.
현장에 도착한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행정도 이런 식이면 폭력”이라며 합판을 떼어냈다. 구청 직원들은 합판을 떼어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공무집행방해와 재물손괴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도로점유에 관한 자진철거 계고장과 별개로 사유재산에 관한 법적인 절차를 일체 무시한 채 철거한 이유를 묻자 법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서울 홍익대 앞 ‘두리반’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의 정용택 감독이 구청 직원의 대응을 촬영한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했다. 이 영상이 돌자 마래푸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반박문을 게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현포차를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한 적이 없으며, 이전부터 상인의 생존권을 위해 지혜로운 해결을 요청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아현포차’를 터전으로 삶을 이어가는 이들.
이는 정확히 1월12일자로 게시된 입주자대표회장의 직인이 찍힌 게시문에 의해 반박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정동길과 아현포차 골목을 비교하며 아현포차 골목으로 남느냐, 쾌적한 걷고 싶은 길로 변모하느냐에 따라 마래푸의 가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며 입주자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존재하던 공동체까지 파괴하려 한다. 아현동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자보가 하루 만에 붙었다. “모두가 함께 사는 땅입니다.”
아현포차 철거 아우성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서울 강남의 어느 곱창집 앞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남의 가게를 지키겠다고 모여들었다.
신사동 ‘우장창창’. 7월7일 새벽, 우장창창의 건물주인 가수 리쌍이 고용한 용역 100여 명이 들이닥쳤다. 포클레인까지 동원됐다. 포차센터의 바닥을 파내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오갔다. 용역이 가게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다시 막아섰다. 집행관이 오기 전에는 집행을 시작할 수 없다.
집행관이 집행을 시작하는 순간 용역은 사람들을 잡아뜯는다. 뒷문으로, 지하로 진입하려던 용역이 사람들에게 소화기를 뿌려댔다. 누군가 제발 그만하라고 외쳤다. 소화기 분말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손님이 손 닦을 물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그새 주차장을 막고 있던 두 사람이 응급실로 이송됐단다. 용역들은 진입이 여의치 않자 몇몇 주차장 지붕 위로 올랐다. 지붕으로 삼은 천막을 칼로 찢고, 천막 아래 서 있는 사람에게 침을 뱉었다. 강제집행은,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비폭력은 기대나 바람 따위가 아니라 상식이다.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집행관이 집행 불능을 선언했다. 용역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집행 내내 기자회견은 계속됐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 몇몇은 용역이 오고 싶어서 왔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오고 싶어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다고 해서, 또는 상대적으로 어리다고 해서 그 정도 판단도 없이 용역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막았고, 저들은 일당을 벌었다.
한 번 강제집행을 막아낸다고 집행 위기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건물주와 합의하기 전까지는 매일 밤낮으로 가게를 지켜야 한다.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은 집행을 막은 직후 장사를 준비했다. 결국은 장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쫓기는 사람의 요구사항은 매번 너무 소박하기만 해서 억울하다. 그마저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믿는 건 서윤수 사장과 내몰릴 위기의 상인이 모여 만든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두 번이나 바꿔냈기 때문이다. 우장창창을 포함해 여러 가게가 어떻게든 임대차 분쟁을 공론화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신사동 ‘우장창창’ 철거에 저항한 날.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건물주 삼청새마을금고와 투쟁을 선포한 공예품 가게 ‘씨앗’과 ‘장남주우리옷’도 다르지 않다. 두 가게의 사장님을 우장창창 강제집행 현장에서 만났다. 내몰릴 위기의 가게가 당장 내몰리는 가게를 돕겠다고 왔다.
두 사람은 우장창창 집행을 막아내고서도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을 걱정하며 울었다. 참담해서다. 이들 가게는 장사 4년째 건물주가 네 번 바뀌는 동안 임대료가 두 배나 올랐다. 건물 매매를 중개하는 부동산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고 하면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나니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세 번째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도 모자라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들이겠다며 가게를 비울 것을 명령했다.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권리금 현 시세도 아닌 처음 입주할 당시의 권리금 7천만원을 각각 지급할 것을 퇴거 조건으로 내걸었다.
네 번째 건물주인 삼청새마을금고는 전 건물주와의 명도소송 중 급매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건물을 얻었다. 지난 2월, 소송을 그대로 승계한 삼청새마을금고가 승소했다. 판사는 한 달 차이로 세입자가 개정된 상가법을 적용받지 못했을뿐더러 처지가 곤궁하니 권리금을 지급하고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삼청새마을금고는 이를 거절했다.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삼청새마을금고로부터 강제집행 계고장을 받았다. 6월9일까지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바로 다음날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삼청새마을금고 가회지점 앞에서 투쟁을 선포했다.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이자, 약속이다.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매주 금요일 삼청새마을금고 가회지점 앞에서 상생을 호소한다.
간판 아래 “가회 새마을금고 회관 매입 기념 보험 행사”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두 가게가 1인시위를 하던 자리에는 행사 기간이라며 팝콘 기계도 가져다놓았다. 천상욱 삼청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여느 건물주처럼 좀처럼 세입자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계급을 목격하곤 한다. 건물주는 언제나 대리인을 내세운다. 우장창창도, 씨앗과 장남주우리옷도 건물주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
서울 가회동 ‘장남주우리옷’이 있는 건물은 4년 만에 4번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하자 가게는 투쟁을 선포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스무 건 넘는 소송에 시달렸던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정작 법적 대리인을 배제하자, 대화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건물주와 합의를 이뤘다. 이쯤 되면 괴물을 만드는 건 ‘외면’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나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이 현장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택했다. 지금 소설은 집이나 도서관이 아닌 철거가 예고된 현장에서 쓰인다. 공간의 기억을 기록하는 동시에 내몰리는 현장을 대변하고자 함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로 자가발전하며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미술관이지만, 건물주인 가수 싸이와의 분쟁 이후 ‘싸이 한남동 건물 세입자’ 등으로 불렸다. 각종 매체는 세입자를 호명하며 철저히 을의 위치를 각인시켰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분쟁 중 건물주 싸이로부터 네 번의 강제집행을 경험한 뒤 재난을 선언했다. 재난이라 명명되는 순간 사건은 공공의 것이다. 개인이 넘을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끝내 다섯 번째 집행 위기에서 철기둥을 박았다. 손님이 문을 열 때면 문이 반도 열리기 전에 기둥과 부딪혀 쇳소리를 냈다. 기둥과 문틈으로 몸을 밀어넣고서야 가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환대의 공간이고 싶었다. 철기둥은 환대를 방해하는 세력을 상징했다.
현장에는 일주일 내내 지킴이조가 편성됐다.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용역이 모이는지 파악해야 했다.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가끔은 새벽 순찰도 돌았다. 불안과 염려로 한 계절을 보내고 난 다음인 지난 4월, 13개월간의 분쟁은 싸이의 사과를 시작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 뒤 여론이 싸이를 압박한 덕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합의 뒤 재난을 경험한 당사자와 연대자의 인터뷰를 수집하고 있다. 재난을 유산 삼아 널리 전하려고 한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철거를 막기 위해 철기둥을 설치한 모습.
내몰림은 대물림된다. 한때 재개발 사업으로 주거지에서 내몰리던 사람은 이제 생계의 터전인 상가에서 내몰린다. 더는 재난으로 명명되는 사건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산을 수집한다. 현장을 방문하며 얻은 유산 중 인상적인 건 건물의 가치는 벽돌이나 콘크리트 따위가 아니라 세입자와 이용자가 만든다는 것이다. 투쟁을 알리는 현수막과 피켓을 내걸어도 문을 여는 손님이 여전히 있어서 가게를 지키려는 눈길과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욕심으로 대변되는 이기주의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공동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지 않을까.
글 정현석 작가사진 달여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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