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14일 청계산에서 만난 산딸나무. 김선수
산행의 여러 묘미 중 하나는 수많은 나무를 만난다는 것이다. 산에 나무가 없다면? 아니 지구에 나무가 없다면? 생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무는 지구와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한다.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그 자리에서 사시사철 순환의 변화를 통해 생명을 연주한다.
나무도 친해지려면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무는 잎, 꽃, 열매, 수피, 수형, 겨울눈 등으로 구분한다.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면 1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참나무 6형제(상수리, 신갈, 떡갈, 갈참, 굴참, 졸참나무)와 소나무 3형제(소나무=이엽송, 리기다소나무=삼엽송, 잣나무=오엽송)를 구별하는 일이다.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도 구별해야 하고, 쪽동백나무와 때죽나무, 산딸나무와 층층나무, 청미래덩굴과 청가시덩굴도 구별해야 한다. 겨울에는 수피만 보고 산벚나무, 물푸레나무, 물박달나무, 은사시나무 등도 구별한다.
식물도감을 가지고 다녀보지만 독학에는 한계가 있다. 우종영 선생은 두 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등산로의 나무지도를 만들었다. 고규홍 선생은 전국 각지의 마을을 지키는 거목을 다룬 책을 냈고, 박상진 선생은 고궁의 나무들을 설명한 책을 냈다.
내가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산딸나무와의 만남이다. 2007년 6월30일, 청계산 이수봉 아래 통신탑 주위에서 층층이 새하얀 양산을 쓴 나무를 만났다. 나를 산행과 나무의 세계로 이끈 선배가 산딸나무라고 알려줬다. 하얀 꽃잎 4개(십자가 형태)의 꽃들이 하늘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하얀 잎 4장은 잎이 변한 포이고, 꽃은 가운데 아주 조그맣게 모여 피었다. 꽃이 너무 작아 벌과 나비가 찾기 쉽도록 잎이 변한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게 된다.
내가 속한 산행 모임의 이름이 ‘서어’ 산우회다. 회원들이 서어나무를 좋아해 남한산성 벌봉 아래 서어나무 군락에서 창립모임을 가졌다. 인간의 관점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아 산속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라고 해서, 또는 서쪽에서 와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원산지가 우리나라이고 극상림(極上林)이다. 나무줄기는 회색에 검은 얼룩이 지고 보디빌더의 팔뚝 근육처럼 울퉁불퉁 힘이 넘친다. 근육나무라고 하며, 한자로는 견풍건(見風乾)이라고 한다. 모범생처럼 반듯하게 자란 것이 하나도 없이 자유자재로 힘차게 비틀었다.
겨울 눈보라를 맞고 강풍에 한 쪽으로 쏠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태백산 주목과 1m 이상 쌓인 한라산 눈 속의 구상나무를 만나면 세상사 사소한 일에 고민하는 내가 왜소해진다. 해발 1400m 이상 지역에 있는 순백 수피의 사스레나무와 그보다 낮은 지역에 있는 붉으스레한 수피의 거제수나무는 그 껍질에 연인에게 편지를 쓰면 맺어진다고 하며, 눈 속에 숲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에서는 혁명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11월 설악산 주능선을 빨간 열매로 불태우는 마가목은 삭막한 초겨울 풍경을 훈훈하게 만든다. 마니산 정상의 신령수 소사나무는 강렬한 정기를 내뿜는다. 지리산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껍질이 푹신한 황벽나무를 만나면 반드시 안아보아야 한다. 잎 아래 땅을 향하여 순백의 꽃을 여는 함박꽃나무(산목련)는 청초함 그 자체다. 아찔한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쭉쭉 뻗은 금강송과 열악한 환경일수록 더욱 기세등등한 노간주나무는 옷깃을 스미고 우러러보게 한다.
나무의 삶은 인생살이의 귀감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나무 한 그루 만난다면, 그것만으로 산행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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