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했다. 이제 속수무책으로 떨어져내릴 것이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의 에너지를 전부 걸고 기원한들, 구획되는 시간은 막아설 순 없다. 그래서일까, 그 짧음은 너무 찬란한 것이라고, 굳이 생채기 낼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추앙되며, 끊임없이 찬양돼왔다. 도대체 왜? 십센치(10cm)는 묻는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이 멍청이들아’.
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하며, 날씨가 언제 풀리는지 그딴 거 알면 당최 뭐할 거냐고 묻는 십센치의 도발에, 외로움을 역사로 치자면 장구한 인생 전체를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 누군가들이 격렬하게 ‘응답’했다. 는 봄마다 반복되는 의 차트 역주행에 제동을 걸며 ‘국내통합차트(iChart) PK(퍼펙트올킬)’를 달성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봄노래의 정권 교체를 단행한 십센치를 만났다.
“봄에 그분은 건드리면 안 된다” 반응이 대단하다. 대표도 모르게 만우절 장난으로 냈다고 하는데 그렇게 봄이 싫은가, 아니면 저격인가.권정열(이하 권) 기존 앨범과 음악에도 봄 이미지는 많았다. 달콤한 러브송도 많았고. 그런데 막상 봄에 노래를 발표한 적이 없었다. 아깝다 싶어 봄에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고 있었는데 회사 직원 중에 봄이라서 더 외로운 친구가 많은 거다. 그래서 이 노래가 튀어나왔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봄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봄에 더 약자가 되는 이들을 대놓고 위로하는 노래. 그런 노래가 좀 삐딱해 보이니까 만우절에 발표하면 재밌겠다 싶었다. 대표 몰래 발표한 건 직원들이 신나서 (그렇게) 했다. (웃음) 대표가 정말 왜 속았는지는 모르겠다. 솔로들을 위한 봄노래다보니 저격이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럼 안 된다. 봄에 그분은 건드리면 안 된다.
어쨌든 ‘벚꽃 연금’에 당첨되게 됐다.권 음원을 낼 때 항상 조심스럽지만, 이 노래는 더했다. 너무 삐딱한 시선은 아닐까, 너무 듣는 사람을 나누는 건 아닐까, 한쪽 편만 드는 게 대중적일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솔로분들이 좋아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전 차트를 쓸어버릴 줄은 몰랐다.
도 그렇지만, 십센치 노래는 전반적으로 가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커피가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십센치에게 ‘커피’란 뭔가.윤철종(이하 윤) 아니지 않나? 커피가 나오는 노래가 정도 아닌가.
권 커피? 그런가. (손가락으로 커피가 나온 노래를 세어본 뒤)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금 처음 알았다. 맞다. <talk> 에도 커피가 나온다.
십센치가 한국 사회 그 또래 남성들의 어떤 정서를 대변한다고 했을 때, 커피가 많이 나오는 건 뭔가 특징적일 수 있단 생각도 드는데. 세련됨을 표출하는 전략인가.
권 우리는 찌질함인데…. 음, 커피는… 음… 일상이다. 오늘도 4잔이나 마셨다. 홍대 앞에 와서 아메리카노 처음 마셔봤다. (웃음) 커피로 세련됨을 의도하는 건 아니다.
윤 찌질하더라도 최소한은 있어 보이고 싶어서 아닌가. (웃음) 그리고 커피는 역시 ‘맥심’이다. 나는 아메리카노 안 좋아한다. 우리는 찌질함이다.
“결혼해도, 정신만은 싱글이다”
찌질함을 대변한다고 했는데, 에 이르러 가사가 세졌다. 결혼하고 감성 체계가 달라졌나.
권 이번 노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감성이다. 그나마 많이 순화시켰다. 봄이 싫다는 굉장히 격렬한 솔로들의 토로를 듣고 썼다. 결혼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음악 할 때만큼은 정신적 싱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윤 결혼하고 아직 한 번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뭐 따로 사나 싶기도 하고. (웃음)
십센치 이전에도 ‘커피’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온 가수가 꽤 있었다. 하지만 십센치는 그 이미지 전략을 전복적으로 재전유한 팀이었다. 하지만 커피가 있던 곳에 늘 있어왔던 것 같은 십센치는 정작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아 보였다. 권정열과 윤철종은 오래 살아온 부부처럼 닮았으면서도 애써 서로에게서 비껴나려 했다.
십센치의 오늘까지를 더듬어보면, 역시 이 제일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에서 먼저 연락이 왔나.
권 2010년, 싱글 내고 ‘홍대 신’ 정도에서만 반향이 있고 종합 차트에는 순위가 없을 때 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을 너무 좋아해서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그땐 전혀 몰랐다. 당시에는 ‘무도가요제’가 지금처럼 파급력이 크지도 않았고. 다만 홍대 신에서만 활동하던 입장에서 앨범을 알릴 수 있겠단 설렘은 있었다. 원래 노래만 하는 것이었고, 3주 분량이었는데 6주 동안 방송되면서 가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다.
윤 에 나갈 때도 ‘음악 관련해서만 나간다’는 얘기를 했었다. 방송을 하더라도 가요제나 음악 방송만 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예능을 잘 못해서, 보는 분들한테 죄송한 마음까지 든다.
여전히 인디와 주류의 경계에 있단 생각도 들고, 가수이고 싶은데 연예인이 되어버렸단 속내도 보인다. 얼마 전 에 나온 장범준은 ‘방송을 안 해도 음원이 잘되는데, 왜 방송을 하느냐’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는데, 같은 마음인가.
권 방송을 하느냐 안 하느냐보다 음악을 잘 만드는 게 우선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범준만큼은 당연히 아니지만 요즘은 방송에 많이 나온다고 음원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음악은 음악대로 듣고, 예능은 예능대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원래 대구에서 활동했었다. 2004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선정 이후 2010년 1집 앨범을 내기까지, 나름 긴 시간이었는데 어떻게 버텼나.
권 대구에서 ‘해령’이란 팀을 하다가 군대 갔다 와서 무작정 올라왔다. 서울 가서 출세하자, 뭐 이런 마음보다는 그냥 다른 지역에 가서 공연도 해보자 이런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 무렵 홍대도 처음 가봤다.
“강산에 기타로 만들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선 어디서 노래를 했나.
윤 그걸 몰라서 길에서 헤맸다. 우선 공원을 가야겠다 싶어서 보라매공원에서 공연을 했다. 홍대 앞이나 대학로 길거리 공연은 훨씬 나중에 하게 됐다.
권 길에서 공연하다가 겨울이 되면서 추워지니까 이제 안에서 해야겠다 싶어서 클럽 오디션을 봤다. 당시에는 클럽에서 인지도가 쌓이면 앨범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10~20명 앞에서 공연을 하다가 우연찮게 ‘클럽 타’ 사장님이 당시로선 컸던 200명 정도 관객이 있는 빅스테이지에 순서를 넣어줘서 라는 곡을 불렀다. 뭐랄까, 빵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2009년이었다.
생활은 어떻게 했나. 당연히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힘듦을 버틴 동력은 있어야 했을 텐데.
윤 수입은 길거리 공연에서 버는 게 다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사람 모이는 시간에 공연을 할 수 없어서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물질적으론 많이 힘들었지만, 그렇게 미래를 막막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요새 뭐 다 포기하는 세대라고도 하지만, 그땐 다 포기하고 이렇게 라면만 먹더라도 행복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라면이 없다 생기면 더 감사하고. 그때 기타도 없어서 남의 것 빌려 노래 만들고 공연하고 했는데, 누가 빌려준다고 하면 그냥 감사하고 그랬다.
권 길거리 공연으로도 그냥저냥 먹고살았다. 돈 없으면 라면 사먹고. 음악이 간절하기보다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나가서 공연하고 그렇게 근근이 살았다.
그때 누가 기타를 빌려줬나.
윤 강산에 형님이 기타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걸 보시곤 기타를 그냥 줬다. 그 기타로 도 만들고 그랬다.
권 전업 뮤지션이 되겠다, 이런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가 더 재밌었단 생각도 한다. 이제는 계산하게 된다. 음원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담스러워졌다. 이것저것 반응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러다보니 조절하게 된다. 도 초기 버전으로 나왔으면 훨씬 더 솔(soul)이 있었을 텐데, ‘굳이 노래 가사로 누군가에게 상처 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수위를 낮췄다. 재미없어진 거다.
“트랜드에 더 밀리면 곤란하다”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됐지만, 권정열과 윤철종은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달려온 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래를 할 수만 있으면 됐고, 지금 좀더 수월하게 노래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수월함을 부르는 다른 이름인 ‘대중성’이 작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고민도 엿보였다.
‘19금 앨범’ ‘19금 공연’을 하고 싶고, 걸그룹 얘기를 할 땐 유난히 얼굴이 밝았던 십센치지만 대중이 그들에게서 원하는 노래는 ‘단것’이지 아직 ‘끈적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되는 대로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자존감도 높아 보이고.
권 되게 게으르고 설렁설렁 살고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아닌 경우랄까. 다른 뮤지션들에 비하면 꽤 열심히 사는 편인 것 같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면서 하는 편이다. 자존감은 둘 다 되게 높다. 그런데 그것도 막상 음악 작업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낮나 이런 생각도 든다. 찌질한 곡만 나오고 내 안에 불평과 불만이 있나 싶기도 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콘서트에도 참여했는데, 노래를 통한 사회적 발언도 가능하지 않을까.
권 여러 고민을 한다. 사회의식을 음악에 실을 수도 있고, 음악에 정치가 깃들면 훼손될 수도 있다. 사회의식이 담긴 노래는 조심스럽지만, 고민 중이긴 하다.
윤 요새 많이 얘기하는 것처럼 사회적 문제를 젊은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노래로 어떤 사회적 문제를 알려야 하나, 그런 노래를 해도 관심 있게 들어줄까 그런 생각은 한다.
본인들이 대중의 취향이나 트렌드를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대중이 원하는 취향 안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권 이끈다, 머문다, 그런 개념보다는 십센치라는 콘텐츠가 역사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가사의 정서 자체가 사적 취향을 잘 담아낸 면이 있고, 십센치가 하는 어쿠스틱 사운드도 지금이야 많이 생겼지만 (예전엔) 되게 유니크한 거였다. 십센치 노래를 듣도록 앞서가야겠다는 것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다. 트렌드는 이미 밀려 있어서 더 밀리면 곤란하다. (웃음) 그럼 대중의 사랑을 못 받는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정리 김혜인 교육연수생 h4543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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