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리케이션(앱)을 하나 깔았다가 며칠 만에 지웠다. ‘에스크에프엠’(askfm)이라는 앱이었다. 이름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질문을 주고받는 Q&A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흥미로운 건 질문자가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된다는 점이었다. 누가 내게 물어봤는지 확신할 수 없는 질문에 답변을 달면 나의 팔로어들은 그 문답을 구경할 수 있다. 에스크에프엠을 내게 알려준 건 나의 남동생이다. 2년 전 이 앱을 설치한 그에겐 팔로어가 꽤 많았다. 인디 신에서 로큰롤 밴드로 한창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동생의 계정에 들어가 몇 개의 문답을 구경했다.
Q: 싱글이세요?
A: 아뇨, 벙글인데.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관심 있는 누군가의 ‘대답 센스’를 확인하기 좋은 SNS였다. 나는 에스크에프엠을 기획하고 개발한 사람들이 어쩐지 좀 얄미워졌다. 그들이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0년부터인데 이미 충분히 종류가 늘어난 SNS 시장에서도 에스크에프엠이 묻히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을 것이다. 질문받고 싶은 마음과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자신이 쓴, 웃기거나 훌륭한 대답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 또한 말이다. 동생은 이 앱을 설치한 이상, 질문받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보다 에스크에프엠은 훨씬 더 타인의 관심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SNS였다. 아무도 내게 질문하지 않으면 나도 대답할 기회가 없으니까.
남동생은 운전을 잘한다. 그는 스물네 살이며 본업은 뮤지션이지만 대다수의 뮤지션이 그렇듯 생계를 위한 노동을 따로 해왔다. 요즘 그가 하는 노동은 트럭 운전과 각종 막일인데 능숙하게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긴 시간 동안 그런 걸 생각한댔다. 훗날 자기가 유명해져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대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그의 아이폰 메모장에는 새로 쓴 가사들과 함께 몇 개의 대답이 저장되어 있다.
한때 흔한 말이었던 ‘안궁안물’(안 궁금한데? 안 물어봤는데?)은 시큰둥함의 극치다. 나는 사랑이 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졌을 때 연애가 끝났다.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입을 다물 때까지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다면 이미 그 연애는 시들시들해진 것이었다. 좋아한다는 건 네가 궁금하다는 말과 비슷하고 좋아해달라는 말은 나를 궁금해해달라는 말과 비슷하다. 질문이 고마운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너는 어떤 사람이야?’ ‘뭐 좋아해?’ ‘어떤 삶을 살고 있어?’ ‘사랑이 뭐야?’와 같이 게으른 질문이 세상에는 더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 에서는 혼자 사는 여자들이 수박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사람 만나면 어디서부터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아요?”
“맞아요. 태어난 것부터 읊어줘야 되나 싶기도 하고.”
“어제 있었던 일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되나 싶기도 하고.”
“A4용지에 정리해놓고 그냥 보라고 하고 싶어요.”
“좋네요. 힘들게 완독한 관계가 끝나버리면 너무 허무하니까, 그냥 서로 그거 보고 갈지 말지 정하고 싶어요.”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더욱더 잘 묻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별로인 문답에 시큰둥해진 사람들도 대답하고 싶어지도록. 혹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놓은 남동생의 대답이 영영 묻히지 않도록.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무슨 말을 시작할지 궁금해하는 사람으로 오래 남고 싶어졌다. 그리고 에스크에프엠을 지웠다. 내가 질문을 주고받고 싶은 장소는 아무래도 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이슬아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레진코믹스 만화 ‘숏컷’ 연재※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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