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의 잘못 쓴 맞춤법에 나는 종종 감동을 받곤 한다. 그들의 잦은 실수 중 하나는 ‘우리 엄마·아빤 연예를 8년 하고 결혼했다’라고 쓰는 것이다. 연애와 연예를 헷갈려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공책에 파란색 색연필로 바른 맞춤법을 적어준다. 그러나 ‘나는 커서 연애인이 되고 싶다’는 문장을 보았을 땐 차마 색연필을 가져다댈 수 없었다. ‘연애인’이라니. 그것은 정확히 내 신분을 설명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시급 4천원짜리 카페 알바를 할 때에도 사실 내 본업은 연애인이었고 잡지사에서 일할 때에도 누드모델로 일할 때에도 글쓰기 교사로 일할 때에도 그리고 웹툰 연재를 시작하는 지금도 내 본업은 언제나 연애인이었다. 커서 연애인이 되고 싶다고 썼던 초등학생에게 나는 당부했다. “명심해. 연애인이 되려면 체력이 좋아야 돼.” 내가 연애에 쓰는 시간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독서와 공부를 하는 데 썼으면 진작 훌륭해졌을 거라고 스승은 자주 말했지만, 나는 태어나서 해본 일 중 연애가 제일 재미있어서 그걸 가장 열심히 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이슬아
내 현재 연인은 지금까지 만나본 모든 사람을 통틀어 노래방을 가장 심하게 좋아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날 노래방에 갔는데 그때 걔가 노래하는 걸 듣고 사랑꾼으로서의 싹수를 나는 조금 알아챘다. 알고 보니 그 애의 장래희망은 록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미래의 록스타와 사귀게 된 나는 온갖 노래들을 듣고 부르며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냈다. 노래는 그야말로 연애의 엑기스였다.
집이 생기자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술을 내온 다음 우리가 했던 건 노래를 시키는 일이었다. 손님이 한 명이건 다섯 명이건 간에, 그리고 부끄럼이 많건 적건 간에 무조건 노래를 시켰다. 별 생각 없이 우리 집에서 편히 먹고 마시던 손님들은 갑자기 가시방석에 앉은 표정을 짓고 손사래를 치며 내뺐다. 그러나 결국엔 늘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야 말았다. 미래의 록스타는 아무리 완고하게 거절하는 사람도 꼭 노랠 부르도록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 옛날 호빗들은 다른 고장에서 넘어온 사람을 만나면 거두절미하고 “노래를 해보시오, 노래를!” 하고 간절히 청했다고 한다. 호빗들은 노래를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들이 살던 세계에는 녹음기도 없고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기계도 없었다.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다른 고장 사람을 만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호빗의 마음으로 노래를 시킨 뒤 엄청나게 집중하며 듣고는 박수를 짝짝짝 치며 감탄했다.
손님들이 떠난 뒤 설거지를 하며 내가 중얼거렸다. 우리 친구들은 어쩜 하나같이 노래를 다 잘할까. 식탁을 닦던 미래의 록스타가 대답했다. 우리만 듣기 아까우니까 친구들을 모두 모아놓고 노래를 시키자. 결국 우리는 며칠 뒤 지하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친구들을 부르자 20~30명 정도가 왔다. 그 파티의 이름은 ‘가요잔치’였고 그날도 역시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시켰다. 친구들은 우리의 흥이 피곤하다고 투덜대면서도 무대에 올라와 기깔나게 한 곡씩을 뽑았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 한 명이 말했다. “너희의 연애는 금방 소진되고 말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 흥이 남아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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