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아직 이불 속에 있다. 잠이 너무 달아서 일어나기 싫은 거다. 이불을 벗어나면 춥겠지. 서둘러 씻고 옷 입고 부지런히 일하러 가야겠지. 너무 바빠서 어쩌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거야. 어제만큼 고되겠지.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가 꺼진다. 다음 알람은 5분 뒤에 울릴 거다. 부부는 그동안 필사적으로 잠에 숨으려 눈을 붙인다. 그런데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순식간에 다음 알람이 울린다. 시간이란 건 그 모양이다. 힘들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세워 알람을 끈 건 여자다. 옆엔 그녀의 남편이 찡그린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그는 언제나 인상을 잔뜩 쓰고 잔다. 그 얼굴이 너무 못생겨 보여서 여자는 웃음이 난다.
언젠가 그의 잠든 모습을 본 딸이 범죄자 같은 얼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상수배지 가운데 붙어 있는 얼굴 같다는 딸의 말을 듣고 여자는 덧니를 드러내며 깔깔대었다. 그녀는 작은 손을 남자의 이마에 가져다 대고 살살 문지르기 시작한다. 그럼 남자의 얼굴 근육이 이완되며 이마 주름이 펴진다. 그녀는 여느 아침처럼 남자의 몸을 이곳저곳 주무르기 시작한다. 여자의 손은 언제나 뜨겁다. 뜨거운 손길이 남자의 뭉친 근육을 시원하게 푼다. 남자는 잠 속에 머문 채로 음, 음, 하고 신음 소리를 낸다. 두 사람은 알몸인 채로 잠들었다가 알몸으로 일어난다. 안마하는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여자의 커다란 가슴이 흔들린다. 남자는 시간을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때 여자가 중얼거린다.
“자기야, 나는 자기가 철학적인 줄 알고 결혼했거든?”
어깨를 안마하던 손은 이제 팔뚝으로 내려가고 있다. 남자는 잠을 깨려 노력한다. 그는 달걀 껍질 같은 꿈의 껍데기를 톡톡 두드려 밖으로 나온 뒤 몽롱하게 묻는다.
“철학적인 게 뭔데….”
여자가 팔을 주무르며 대답한다.
“철학적인 건 그런 거잖아. 살면서 뭐가 정말 중요한 건지 자꾸 궁금해하는 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잊지 않는 거. 그래야 사는 맛이 있는 거잖아.”
남자는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이 여자가 아침부터 왜 이러지 싶어서 다시 잠을 향해 달려간다. 여자는 손을 옮겨 그의 허벅지를 강하게 주무른다. 그 손길 때문에 남자는 꿈나라로 가지 못하고 현실에 붙잡힌다.
“그런데 자기는 생각보다 질문이 없는 사람이더라. 무던하고 미지근해. 맨날 죽어라고 일만 하면서 돌아다니고. 집에 와선 티브이 보면서 맥주 한 캔이랑 포도 몇 알 먹고서는 바로 자잖아. 자기는 그 정도로 삶이 충분한가봐.”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중얼거린다.
“그거면 됐지 뭐….”
남자의 피부는 물질이며 노가다를 너무 많이 해서 건조하다. 여자의 손은 막일을 하느라 일찍 늙었다. 그녀가 남편의 손을 주무르며 묻는다.
“이젠 나한테 멋진 말도 안 하고. 낭만은 다 어디 갔어, 자기야?”
남자는 안마가 너무 시원해서 다시 음, 음, 하고 신음 소리를 낸다. 이제 곧 세 번째 알람이 울릴 것이다. 부부는 아직 이불 속에 있다.
그들이 세 번째 알람을 끄고 눈을 뜨는 동안, 허리를 일으켜서 이불 밖을 벗어나는 동안, 옷을 빠르게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어 추운 바깥세상으로 출근하는 동안, 그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는 어린 소년과 소녀가 아침잠을 누렸다. 소년·소녀의 방으로 여자가 남자를 ‘자기야’ 하고 부르는 음성과 남자가 ‘음…’ 하며 뒤척이는 소리가 조금 새어 들어갔지만 잠을 깨울 만큼의 음량은 아니었다. 소년·소녀는 부모가 같이 잠들었다가 같이 일어나는 모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소년·소녀가 가장 많이 본 남녀였다. 남녀가 벌어온 돈으로 먹고 자고 놀며 무럭무럭 자란 소년·소녀는 훗날 연애인이 되는데….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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