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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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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후의 인간’을 결정하는 정치

알파고 시대, 사람의 존재 방법 묻는 <사이보그 시티즌>
등록 2016-03-26 23:14 수정 2020-05-03 04:28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사람들은 극단의 정서를 오갔다. 인공지능에 역전된 인간지능의 한계에 절망했고,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성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인간과 기계를 대결 구도로 파악하는 누군가는 미래를 공포스러워했고, 인간과 기계의 대결 구도를 경계하는 누군가는 ‘인간만의 영역’에서 희망을 구했다.
‘인간과 기계 중 누가 뛰어난가’의 너머에 좀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세돌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1960년 9월 ‘사이보그들과 우주’란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미국 컴퓨터 전문가 맨프레드 클라인스와 정신과 의사 네이선 클라인이 썼다. 그들은 ‘자연적인 요소와 인공적인 요소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 결합시킨 자기조절 유기체’로 사이보그를 정의했다. 심장박동 조절장치 체내이식부터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백신 주입까지, 누군가의 신체에 인공적 개입 혹은 개조가 있었다면 모두 사이보그라고 봤다. 이세돌이 치아나 신체를 교정하는 보철을 하고 있다면,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면, 이세돌은 사이보그다. 생쥐나 바퀴벌레, 박테리아도 사이보그가 될 수 있다.

(크리스 그레이 지음, 김영사 펴냄)은 ‘사이보그 시대에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클라인스·클라인의 정의를 따르면 ‘사이보그 아닌 인간’이 희귀해진 세상이다. 사이보그를 정의하는 일은 인간을 재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이보그 시대에 재정의된 인간은 ‘유일 시민권자’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고전적 인간에겐 재앙이지만 재정의된 인간에겐 종의 확장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알파고보다 인간계의 삶에 훨씬 현실적으로 침투한 구글의 인공지능은 자율주행차다. 한국에서도 시범운행에 들어간 자율주행차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의외로 정치다. 완벽한 통제를 전제로 하는 무사고 자율주행 시스템은 ‘인간주행 제로’일 때 가능하다. 인간주행을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몰아낼 것인가는 자본의 이해와 노동의 미래가 걸려 있는 고도의 정치 행위다.

‘인간’은 본래부터 고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인간의 정체를 묻는 역사는 인간이 존재해온 역사와도 같다. 남자와 여자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이며, 부부란 무엇인가, 인류에게 허락된 성은 두 개뿐인가….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부수거나 세웠고, 자신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 불굴로 투쟁해왔다.

책의 원서 부제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정치학’이다. 다수의 이론가·활동가·예술가들은 차별을 극복하는 정치·사회적 상징으로 사이보그를 활용했다. 지은이도 ‘사이보그 권리선언 십계명’을 제안한다. “자신이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끝낼 수 있는 권리(제6계명)”와 “자신의 성욕 및 젠더 지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제9계명)를 주창했다. 책이 강조하는 ‘사이보그 시대의 시민론’은 참여정치다. 최근 김무성(새누리당)·박영선(더불어민주당)이 한자리에서 맹세한 ‘차별금지법 반대’는 선거 시기 인간의 정체를 표와 거래하는 고루한 정치 전략이다. “진정한 쟁점은 우리 사회가 어떤 도구, 어떤 기계, 어떤 사이보그를 보유해야 하며, 어떤 것을 축출하고, 만드는 것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냐에 따라 ‘인간 이후의 인간 세계’도 결정될 것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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