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결정은 내려졌소, 로테, 나는 죽을 거요. 나는 이 편지를 낭만적 과장 없이 차분하게 쓰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다음날 아침에 말이오. 이 편지를 당신이 읽을 즈음이면 서늘한 무덤이 늘 고통에 시달리던 불행한 사내의 뻣뻣하게 남겨진 흔적들을 덮고 있을 거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쓰인 이 유서는 소설 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남긴 편지의 일부다. 약혼자가 있는 여성 로테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깊은 절망이 구구절절 배어 있다.
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문학적이지 않다. (서종한 지음, 학고재 펴냄)이 소개하는 유서는 소설과 현저히 다르다. 우선 자살자의 대다수가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 남긴다 하더라도 자살의 이유와 원인을 상세하게 쓰지 않는다. 추상적 관념어보다 열쇠나 청구서, 통장 비밀번호, 주소 같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단어를 열거하는 경우가 많다. 격식 있는 편지지나 아름답고 세련된 도구를 사용하기보다는 포스트잇, 찢어진 달력 조각, 벽지 같은 데 휘갈겨 쓴 경우도 많다. 왜일까.
자살이 충동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앞둔 사람들은 심리적 여유와 에너지를 모두 고갈한 상태여서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는 회로가 끊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피폐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선택하는 최악의 결정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인 최초로 심리부검 전문가 자격을 얻은 저자 서종한씨는 자살이 개인의 결단만으로 이뤄지는 죽음이 아니라고 한다. 질병과 교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듯 사회적 처방을 통해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동체의 연대와 책임 의식”이 그가 제시하는 처방전인데, 이를 위해 수행되는 작업이 ‘심리부검’이다. 심리부검이란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과학적 도구”다.
예컨대 이런 사례를 보자. 철로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늘자 미국 철로 회사들은 이런 플래카드를 역에 설치했다. “다시 생각하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하지만 자살자는 줄지 않았다. 이럴 경우 심리부검으로 모집한 데이터에서 생각지 못한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철도 자살자 혹은 시도자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자살자 유가족을 상대로 면담과 자료 조사를 실시한 결과, 철도를 이용한 자살자들은 자살 전에 휴대전화를 집이나 차에 놓고 온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자살률이 높은 지점에 도움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가 찍힌 긴급전화기를 설치했다. 자살률이 현격히 감소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 2015’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자살률(2013년 통계)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저자는 책에 소개된 여러 자살의 맥락을 통해 사람들이 “자살자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이해를 갖길 바란다”고 썼다.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독하고 절망적인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에 사회가 기민하게 반응할 때, 우리의 친구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극단을 선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자살은 속수무책의 죽음이 아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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