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한 회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들이 희생자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사진에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왔다’는 글을 합성했다. 올해 초 세월호 희생자를 빗댄 ‘어묵 사건’은 입에 담기조차 힘겹다. 일베의 악행은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한 적이 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이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적 인격장애 탓이 아니라, 사회체제가 만든 ‘프레임’에 순응해 자신들의 행동을 보편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변호사 강용석(46)이 세월호유가족협의회를 상대로 피해 보상 대리소송에 나선 것은 이렇다 할 비난조차 받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차려졌던 유원지 상인들의 피해를 외면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악’은 평범한 일이 돼가는 것일까?
독일 역사학자 죙케 나이첼과 하랄트 벨처 플렌스부르크대학 교수(사회심리학)가 쓴 을 보면서 한국의 사례를 떠올렸다. 상상을 넘는 개인의 ‘악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은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프레임’ 때문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책의 부제는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이다.
2001년 죙케 나이첼은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대화를 도청해 기록한 문서를 발견한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자료 10만여 쪽이 발견됐다. 독일군의 일상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승용차에 그 여자들을 무조건 끌고 들어와서 그냥 (강간)해버리고 다시 길바닥으로 던져버렸죠. 걔들이 어찌나 욕지거리를 퍼붓던지.”
살인이나 죽음이 열정이나 이상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두 러시아 소년병을 잡은 뒤) 남은 아이를 사살하기 전에, (그 아이에게) 먼저 죽은 아이를 구덩이에 던지라고 했대요. 걔는 웃으면서 그렇게 했어요. 열다섯 살 먹은 개구쟁이가요. 대체 그건 어떤 열정일까요, 이상일까요?”
참혹한 집단 학살조차 죄의식 없는 일상이 됐다. “폴란드 전쟁 둘째 날에 포즈난 철도역에 폭탄을 투하했어요. 즐겁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셋째 날에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심정이 됐고 넷째 날에는 즐거워졌어요. (…) 폭탄 투하가 내게는 욕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짜릿합니다. 기분이 상쾌하지요. 총살만큼이나 기분 좋아요.”
지은이들은 홀로코스트의 일부는 유대인 증오나 나치 이데올로기로 설명되지만, 더 많은 살인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전쟁을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지만, 군인들이 왜 사람을 죽이고 전쟁범죄를 범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쟁은 평소 여건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건 및 행동의 맥락을 형성한다. 이런 맥락 안에서 군인들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유대인을 죽이고 국가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나라를 열광적으로 수호한다”고 설명한다.
가정에서 성실한 아빠이자 남편,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다정다감한 애인이었을 그들은 왜 괴물로 변한 것일까?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전투원’에 대한 범죄와 폭력이 있는 이유는 ‘전쟁’의 프레임이 요구하는 행동들과 기회 구조들이 그런 폭력을 억제하거나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전투원’을 ‘보통 사람’으로, ‘전쟁’을 ‘한국 사회’로 바꿔 읽어보자. 한국 사회에 주는 현재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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