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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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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청년들

등록 2015-10-24 14:20 수정 2020-05-03 04:28

‘헬조선’이란 단어가 청년 세대에, 아니 인구 전반에 회자되고 있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뜻하는 단어이다. 물론 헬조선이라는 단어 이전에도 청년 세대의 비참을 표현하는 조어는 많았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오포 세대’ 등등.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참의 최종 심급</font></font>

이 신조어들은 청년 세대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갖는 비관적 전망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젠가 나에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데 대한 보상이 주어질까? 나는 과연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을까?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청년 세대가 ‘아니요’라고 답하는 다양한 변주들이 바로 그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함의는 좀더 총체적이다. 우리는 지옥에 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아프다.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헬조선이란 단어는 마치 과거의 모든 끔찍한 표현들을 종합하여 마침내 ‘비참의 최종 심급’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지옥 다음은 무엇일까?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유황불 속에서 절규하며 소멸할 때까지 버티는 방법 외에는. 그러니까 지옥이란 말을 쓰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최악의 방향으로 결정됐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헬조선이란 말에는 파국에 대한 상상이 담겨 있다.

헬조선이란 단어는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그 기원 자체가 온라인 커뮤니티이고 집단적 말놀이가 확장된 결과물이다. 헬조선은 현실에 대한 집단적 자조이자 풍자이다. 이죽거리는 표정과 쓰디쓴 웃음으로 무거운 현실을 가볍게 만드는 말의 의례이다. 그렇기에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소셜미디어에 쓰일지언정 유서에는 쓰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청년 세대는 말로 현실과 싸우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다. 자존심을 세워 현실에 대적할 수 있는 게 말밖에 없구나. 하지만 말은 말일 뿐, 현실을 변화시키진 않지.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말은 말에 그치지 않는다. 말은 세계에 대한 표상이다. 표상은 세계를 재현하며 동시에 세계와의 거리를 만든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한 청년은 헬조선이라는 집단적 풍경 속에서 문득 자신의 초상을 발견한다.

이른바 ‘어른’ 세대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담긴 청년 세대의 비극적 에너지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헬조선이란 단어는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또 다른 계몽적 개념이거나 자신들의 정책과 정치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을 둘러싼 언어시장에서의 ‘상징투쟁’은 아마도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시가’가 바닥을 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세련된 문체로 시대에 대한 논평을 시도하는 언어시장의 플레이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 한 청년을, 자취방에 홀로 머물고 있는 한 청년을, 불안에 젖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 도서관으로, 일터로 나갈 채비를 하는 한 청년을, 어떤 연민도 신비화도 없이 떠올려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유례없는 투쟁의 장면</font></font>

그 청년의 마음의 풍경은 이러하리라. 전망 없음, 그러나 취업 준비와 인턴십과 비정규직 생계 활동과 자기계발을 멈출 수 없음, 물론 잘 알고 있음, 나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부림, 희망찬 몸부림과 절규의 몸부림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

이것은 드라마나 다큐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것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고 반복되는 대한민국 현실의 한 장면이다. 동시에 이 평범한 장면은 유례없는 투쟁의 장면이기도 하다. 장담컨대 이 장면은 먼 훗날 현재의 청년 세대의 의식에 각인된 집단적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극복 불가능한 트라우마이건, 혹은 끝내 승리로 이끈 과거의 분투이건.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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