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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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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등록 2015-09-17 18:45 수정 2020-05-03 04:28

얼마 전 북한과 전쟁이 나네 마네 했을 때,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 나면 어디로 가야 하지? 친구에게는 남편과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고, 나에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피란 가서 배가 고프면 고양이를 잡아 아이에게 영양식으로 먹여야겠다는 둥 농담을 하다가 이야기는 점차 진지해졌다. 대피소는 어디지?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뛰어야 할까? 공항으로 가면 전시에도 비행기가 뜨나?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쿠르디의 죽음 전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려고 길바닥에 끝없이 늘어선 사람들, 무작정 길을 걷고 터질 듯한 기차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시리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옷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떠나 길 위를 떠돌고 있나? 어느 벽에는 “우리는 왜 고향을 잃었나?”라는 낙서가 있었다. 한 어린 소년은 “나는 감옥에 갇힌 수감자다. 나는 독일에 있는 내 가족이 보고 싶다”고 쓰인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어떤 이들은 “메르켈! 메르켈!”을 외쳤다. 한 가나 여성은 7개월 된 딸아이의 이름을 ‘앙겔라 메르켈’로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터키 해안에서 ‘알란 쿠르디’라는 이름의 세 살짜리 아이가 죽은 채 발견됐다. 아이의 ‘무고한’ 죽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해시태그를 타고 전세계 사람들의 인간성을 건드렸다. 돌연 세상 사람들이 인도주의적 관대함으로 무장하고 나타나 박수를 치고 먹을 것을 주었을 때, 그들은 쾌재를 불렀을까? 역겨움을 느꼈을까?

그 일이 일어나기 불과 일주일 전, 트럭에 갇힌 70여 명의 난민들이 오스트리아의 도로 위에서 질식해 죽었고, 지난 4월에는 리비아의 해안에서 난민 800명이 익사했다. 2014년 지중해에서 익사한 ‘보트피플’은 2천 명에 이르렀다. 그때만 해도 유럽 국가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쿠르디의 힘을 빌렸든 아니든, 그들의 박수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든, 어떤 이들은 독일에 도착했다. 독일은 여느 유럽 국가들보다 난민에게 자비로웠다.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인간답게 일을 하고 아이를 교육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존 버거가 글을 쓰고 장 모르가 사진을 찍은 책 은 1970년대 터키·포르투갈 등 당시 개발도상국의 유럽 이민노동자들이 독일·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으로 가서 일하다가 귀국하기까지의 신산한 삶을 추적한다. 사진 속 노동자들의 얼굴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낯선 언어와 시간 속에, 결코 오지 않는 약속된 미래를 꿈꾸며 미숙련 노동을 반복하는 그들은 피로하고 멍하다. 존 버거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평등, 도시의 비인간화 등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민노동자의 경험의 윤곽, 그들의 구체적인 내면을 읽음으로써 직시하려 한다. “객관적인 경제제도와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연관시킬 때에만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정치적 현실, ‘부자유’의 문제가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

문제는 다시 어떻게 살아남을까

난민의 성공적 다음 단계는 이민노동자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중해와 트럭 속의 원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모두가 지금의 경제제도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연합(EU)은 각 국가들이 난민을 나눠 받는 ‘난민 쿼터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하고, 이를 거부하는 국가들은 탄소배출권처럼 돈으로 대신 지불하게 하는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그들 경제에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난민에 더 관대한 것이고, 헝가리나 체코가 이를 거부하는 것도 같은 틀의 이유 때문이다. 존 버거는 “이민노동자는 현대인의 경험의 한 외곽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그 중심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대피소가 어디인가, 가 아니었다. 일단 폭격에서 삶 쪽으로 넘어지고 나면, 문제는 또다시 긴긴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였다. 한국에선 어째서 최근 5년간 난민 인정자가 331명(전체 신청자의 3.6%)에 불과했나? 우리가 난민 신세가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아줄까, 동해에서 보트피플로 죽는 건가, 친구와 시시덕대다가 그 전에 이 나라를 뜨는 편이 나을 거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어디로?

이로사 현대도시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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