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죠? 이게 바로 생명의 소리예요.” 아직 사람의 형체도 아닌 무언가가 힘차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보통 임신 6주부터 들린다는 심장박동이 들리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참이었다. 여름이(태명)는 거의 8주가 다 돼서야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내 아이의 실체를 처음 실감한 그 순간, 눈물까지는 아니었지만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껏 내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은 기자라는 직업,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라는 지극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였다. 그런데 그 순간은 뭐랄까, 존재의 흔적을 남겨야 할 의무를 지닌 한 생명체로서의 나 자신과 맞닥뜨리는 느낌이었다. 말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임신 사실을 알고 ‘어떡하지’를 연발했던 나였지만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예상치 못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내 몸에 깃든 생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보냈던 얼마간의 시간 동안 나는 생각을 곱씹었다.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이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랬다. 치솟는 전셋값, 빠듯한 생활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보육 환경, 희생적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만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이로 인해 나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환경만 아니라면 말이다.
책 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 잡지) 화보 속 파일라(프랑스 여배우)는 유모차를 밀면서 동시에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기사에선 파일라를 프랑스의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헌신적인 엄마지만, 동시에 아이와 독립적으로 죄책감 없이 자유의 순간을 즐기고자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사를 보도했더라면? 악플이 수만 개는 달렸을 것이다.
유난히 모성애를 강조하지만 아이 키우기는 어느 나라보다 어려운 이곳에서 나는 본격적인 육아 전쟁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이름은 태명으로, 생년월일은 출산예정일로 적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기 위해서는 출산 뒤 1년 안에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절망스럽게도 80명 정원의 구립 어린이집 대기자 수는 1천 명에 육박했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태아보험 가입이었다. 만에 하나 아이의 몸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고액의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애초 설계된 보험료가 너무 비싸 절반 가격으로 낮췄을 때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다. 보험료 수치가 모성애의 수치를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고민은 끝없이 이어졌다. 복직 시기가 닥쳐왔을 때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린이집이 끝난 뒤 퇴근할 때까지 아이는 누가 봐주나. 아이 돌보미 비용을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가 큰 병에 걸리면 직장을 그만두고 간호해야 하는 걸까. 아이로 인한 행복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피로감부터 몰려왔다. 이 모든 고민을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느낀 감정 하나로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문득문득 내가 이 아이를 갖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로웠다. 아이를 낳기까지 39주. 기쁨과 설렘, 근심과 걱정이 마구 뒤섞인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송채경화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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