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거짓말 때문에 인간이 산다

‘인간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왜 그렇게 번식하려고 노력하는가’에 대한 답변 <부정 본능>
등록 2015-07-08 15:28 수정 2020-05-03 04:28

사춘기 시절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망연자실하여 길거리에서 길을 잃은 듯이 운 적이 있는가. 가끔 이 인간이라는 종이 ‘필멸’이라는 운명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것이 이상할 때가 있다. (부키 펴냄)은 인간 진화의 방향을 ‘죽음’에 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특이한 이론을 펼친다.

저자는 인도 출신의 의사이자 과학자 아지트 바르키와 유전학자 대니 브라워다. 저작은 두 과학자의 한 번의 만남으로 잉태되어 바르키에 의해 주로 집필되었다. 미국 애리조나대학에 강연을 간 바르키는 학과장 브라워를 만난다. 바르키의 강연을 들은 브라워는 학자들이 쉬이 하는 잘못된 질문을 지적한다. “어떤 진화 과정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지 묻는 대신에 다른 많은 지적인 종들이 진화해왔는데 왜 복잡한 정신적 능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대니 브라워는 지적 능력이 만들어낸 ‘죽음’이라는 인식이 개체 진화를 실패에 이르게 할 텐데도(필멸하는데 번식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인간은 왜 멸종하지 않는지 질문하고 스스로 준비된 답을 내준다. 2년간 대화 내용을 고심하던 바르키는 장문의 전자우편을 브라워에게 보내지만 답장이 없었고 곧 그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르키는 브라워가 쓰던 원고를 받아들고 책을 완성했다. 죽음을 알고도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목에 있다. 부정 본능, 자기 기만, 거짓말 자아.

저자는 정신의 진화를 단계별로 나누는데 모든 종 중 유일하게 인간이 이른 단계는 ‘완전한 마음의 이론’이다. 이 단계에서 다른 이가 완전한 자기 인식을 한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한다. 죽음을 인식한 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적 불이익을 보완할 어떤 특별한 메커니즘이 있어야 했다. 거짓말을 잘하는 방법은 자신이 거짓말을 완전히 믿는 것이듯, 인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자기 기만을 통해 그 메커니즘을 얻었다. 실제보다 낫다고 믿는 과신은 진화에서 적응도에 이득을 가져다준다. 저자는 현실 부정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완전한 마음의 이론’의 출현보다 앞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현실 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는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 환자가 먹는 케타민은 일반인들에게는 마약이다. 조금 먹어도 단기간 환각에 빠진다. 우울증 환자의 환각이 바로 일반인의 현실, 진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울증 환자로 살아야 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전개한 뒤 이 생각이 별스럽지 않다며 여러 문헌을 뒤적인다. 프로메테우스는 “필멸의 인간들이 운명을 내다보지 못하게 했네”라고 말하고, 리처드 파인먼은 “(화성인이 본다면) 삶이 일시적임을 알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심리적 문젯거리”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보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지구온난화의 위협이 시시각각 다가와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거의 다 아는 심한 예도 있지 않은가. 저기 그분의 현실 인식.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