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말 것, 느끼지 말 것, 소란을 피우지 말 것, 강하게 살 것, 착하게 살 것, 바르게 살 것, 완벽하게 살 것. 어느 수도원의 규칙이 아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서비가 정리한 알코올중독자가 있는 가정의 규칙이다. 그런데 알코올이든 섹스든 뭔가에 중독된 경영자가 있는 조직은 알코올중독자의 집처럼 변한다. 솔직해지지 말 것, 모른 척할 것, 우리를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행동할 것…. 중독자의 규칙은 모습을 바꿔서 회사를 지배한다.
중독이란 그것을 얻고 싶은 욕망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상태를 말한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을 ‘동반중독자’라고 부르는데 알코올중독자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짓지 못해 혼란에 빠지는 증상을 겪는 것처럼, 회사에서 중독자들과 함께 일하는 동반중독자들은 일중독·우울증·강박에 시달린다. 결국 모두 중독과 같은 질병이다.
중독됐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중독자들은 쉽게 거짓말을 한다. 동반중독자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거짓말에 동참한다. 임상심리사로 조직컨설팅을 해온 지은이들은 애초 회사 내 중독자와 동반중독자들을 상담하다가 여러 회사에서 사람을 한 가지에 중독시키는 시스템을 발견한다. (앤 윌슨 섀프·다이앤 패설 지음, 강수돌 옮김, 이후 펴냄)은 “조직은 중독이 일어나는 환경인 동시에 중독물”이라고 보고한다.
조직의 사명, 생산물,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강조하는 것이 중독 시스템의 시작이다. 회사는 조직원들이 계속 굳은 소속감을 유지하도록 성과급, 보너스, 정년 보장 등을 마약처럼 활용하며 일중독을 조장한다. 사람들은 일중독 상태라는 것을 잊기 위해, 혹은 계속 일을 유지하기 위해 알코올중독, 니코틴중독, 탐식증, 약물중독 같은 2차 중독을 키우기도 한다.
일중독이 마약중독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책의 주장은 과하지 않을까? 일에 대한 애착이나 몰입을 북돋우는 조직과 중독 조직은 어떻게 다를까? 일중독자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간접소통과 뒷담화가 지배하는 조직 분위기, 비밀주의가 판치는 의사결정 구조, 숙련된 무능력이 다수라면 중독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가장 중요한 신호는 다들 자신의 회사가 저지르는 잘못을 못 본 척할 때 그 회사는 중독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치 중독자들이 윤리적 퇴행이나 불감증을 겪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병든 조직에서 사람들은 병들어간다. 서로를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하며 개인들은 고립감에 시달린다. 말미에서 중독 조직 치유 방법론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책의 목적은 희망을 주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중독자 치료는 자신이 중독됐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왜 이토록 많은 회사와 사람들이 중독자이거나 중독동반자가 됐는가? “사회는 중독을 촉진한다. 사회에서 가장 잘 적응한 사람이란 따지고 보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저 무감각한 좀비 같은 사람이다. 죽은 존재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겠지만 살아 있는 존재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숱한 일들이나 돌아가는 과정에 대해 계속 ‘아니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그들이 결국 체제의 문제를 언급하고 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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