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6살 때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과학관에 갔다. 그때 7살 아이를 둔 친구가 과학관에서 하는 유아 대상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진정한 멘토는 자기 아이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를 둔 선배 엄마들이다. ‘그때 했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유아기 버킷리스트’는 엄마들을 홀린다. 여느 때라면 아이가 놀아달라고 조르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졸고 있을 주말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1시간 거리를 달리는 내가 제법 대견했다. 돌아오는 길에 적혈구, 백혈구 같은 어려운 말을 종알거리는 딸아이는 더욱 대견했다. 3시간 수업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학부모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옆자리 엄마들의 ‘고급 정보’가 들려온다. 교육과정이 바뀐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지만 그때 벌써 그들은 ‘사고력 수학’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으니 재야일지언정 진정한 교육 전문가는 바로 그들이었다. 어쨌거나 토요일 오전, 대기실의 햇볕은 따사롭고 공기는 평화로웠다. 나한테만 그랬다.
어느 날 아이 수업이 늦게 끝나 교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까. 다음 시간 수업을 받을 아이들인 듯 함께 기다리던 두 남자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지난주에 우리 반 수업 안 했어.” “왜?” “선생님이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대.” “그런데 왜 오늘은 해?” “별로 안 다쳤나보지. 확 뒈져버렸으면 좋았을걸.” 두 아이는 키득대며 선생님이 다음에 사고가 나면 정말 뒈져버렸으면, 그래서 수업이 없어졌으면 하는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아이다운 천진한 표정과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더욱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타일러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하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말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주말 아침부터 ‘과학 놀이’에 불려나온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내 경우엔 아이가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기대보다는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컸던 탓에 다시는 그 수업에 가지 않았다.
7살 아들아이를 둔 내 친구 ㄱ씨는 얼마 전 영재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3살 때 혼자 알파벳을 깨친 ㄱ씨의 아들은 우리가 보기에도 좀 특별하긴 했다. 아이가 칠판에 수직선을 그리며 셈하는 것을 본 ㄱ씨는 자신이 아이의 재능을 몰라보고 방치해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중대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뛰어난 아이라면 한 번쯤 가본다는 이름난 영재 진단기관을 찾기로 한 것이다. 영재로 가는 줄은 길었다. 접수하고 여러 달을 기다려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48개월 이전에 영재 검사를 받았으면 훨씬 저렴할 것을 ‘너무 늦게’ 받은 탓에 2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 들었다. ㄱ씨는 점심시간에 시작해서 저녁 시간에 끝난 기나긴 검사를 거쳐 아이가 언어, 동작, 사회성 고루 잘 발달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매끄러운 덕담을 듣고 나니 몹시 허무했다고 한다.
신동이나 천재와 달리 영재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ㄱ씨 아들의 지능 수준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할 때 상위 3.7%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 기관에서는 1% 안에 드는 아이들을 영재라 부르고 기관에서 하는 영재교육을 강력히 권유한다고 했다. 우리는 ㄱ씨 아들처럼 똑똑한 아이가 1%에 들지 않는다면 대체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똑똑한 걸까 궁금해했다.
아이들끼리 비교하면 또 다를지 몰라도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은 모두 영재다. 30년마다 IQ가 20씩 올라가는 현상을 ‘플린 효과’라 하는데, 변화가 빠르고 교육열이 높은 사회에서는 10살 차이 나는 세대마다 IQ가 10씩 올라가기도 한단다. 시각매체 증가와 IQ 테스트 반복효과, 교육 확대, 영양 섭취의 증가, 조기교육 등 지능이 집단적으로 올라갈 이유는 많고도 많다. 그러니 부모들이 가끔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영어 읽는 아이, 선생님 말 이해 못하는 아이게다가 풍성한 영재교육 기회가 부모들을 더욱 조바심 나게 한다. 공교육에서도 영재교육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ㄱ씨 아들처럼 상위 3~10%인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영재반에 들어가고 영재학교로 진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부모들은 ‘스카이(S·K·Y)로 가는 사다리’로 여긴다.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내 친구 ㄴ씨 반에는 다양한 영재 학생들이 있다. 3월 학교에서는 1학년 아이들에게 글자 읽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강남에 있는 이 학교 아이들 모두 일기는 물론 논술까지 줄줄 쓰는 수준으로 입학을 한다. 문제는 반 아이 30명 중 연필을 똑바로 잡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1학년 때 이미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상담 때 교사를 찾아와서 아이가 ‘독서 영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수업 때 그 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운다는 것은 듣고 보고 느끼는 행위가 고루 동반되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읽기만 해온 아이는 듣는 법을 몰랐다.
ㄴ씨 반엔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도 많다. 그중 한 아이는 영어로 막힘없이 글도 쓸 수 있는 실력이지만 친구들과 일상적인 소통이 잘 안 됐다. 친구가 좋으면 갑자기 달려들어 뽀뽀를 하고, 싫으면 뺨을 때리는 식이라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영어 수준은 고등학생, 행동은 5살을 보는 듯했다. 다른 부모들이 항의하고 교사가 가정지도를 요청해도 부모는 “자유로운 영어 유치원 분위기에 익숙한 아이가 딱딱한 학교 교육에 적응을 못할 뿐”이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내 친구 ㄴ교사의 지극히 경험적인 시각에 따르면,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 중에선 성장의 한 단계가 빠진 듯한 경우가 많은데 그 아이가 그랬다. ‘소통의 성장’이라고 부를 만한 단계가 있다. 말을 배우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다투고 굽히고 관철하는 경험을 하는 소중한 시기다. 한쪽에 주력한 교육이 다른 것을 앗아가버릴 수도 있다.
ㄷ씨는 영재, 아니면 아주 똑똑한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ㄷ씨가 만든 아들 시간표를 보고 경악했다. 아침 7시에 책 읽기로 시작해 밤 10시에 영어책 읽어주는 오디오를 들으며 잠드는 일과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ㄷ씨는 영재 (사)교육에 주력하는 대한민국 분위기를 제대로 간파한 부지런한 엄마일 뿐이다. 그런데 ㄷ씨 아들 시간표엔 ‘그림 치유’ ‘놀이 치유’ 시간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ㄷ씨 아들은 몸과 마음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ㄷ씨는 “9살 아이가 이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다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미리 치유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아는 많은 영재 아이들은 아이돌처럼 길러진다. 그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기획사를 닮았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면서 심리학자인 앤드루 솔로몬은 이란 책에서 음악 영재와 그들을 관리하는 ‘스테이지 맘’의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서 자신의 야망을 본다. 천재 자녀를 기대하는 부모는 자녀에게서 뛰어난 재능을 발견할 것이며, 명성이 자신의 모든 불행을 덜어줄 거라고 믿는 부모는 그들의 아들이나 딸의 얼굴에서 탁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볼 것이다. …그런 부모들은 그들 자신의 희망과 야망,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의 자녀가 아닌 자녀의 능력에 투자한다. 자녀의 호기심을 길러주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향해서 전력 질주한다.”
“자의식이 없고 부모의 희망을 자녀의 희망과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라는 설명은 내 경우와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 아이는 영재는 아니지만, 음감이 좋은 편이다. 그전엔 아이가 음악인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는데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알게 됐다. 선생님에게 “이 아이는 재능이 있다. 전문적인 레슨을 받으라”는 권유를 듣는 순간 몸속에서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도파민이 불꽃놀이를 벌이는 바람에 흥분해서 며칠은 잠도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넘게 아이에게 엄격한 바이올린 레슨과 연습을 강요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작곡에 잠시 취미를 붙이기도 했고 또 다른 선생님에게선 성악을 시켜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행복 호르몬을 주체 못해 ㄱ씨, ㄴ씨, ㄷ씨에 버금가는 극성을 부렸다. 그러나 늘 몇 달 안 돼서 아이는 연습을 싫어했고 연주자가 될 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면 나는 화가 나고 실망했다.
딸과 사이가 나빠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상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왜 하필 바이올린이었나요?” 여러 번 질문을 받으면서 마지못해 자신을 들여다봤다. 아이와 함께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아이가 아니라 내가 단번에 바이올린에 매료당했다. 바이올린은 성대 가까이에서 화려한 소리를 내는 악기다. 나는 글이 아니라 음악적 언어로, 거대한 성량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세상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쉽게 주눅 들고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른이 되어선 아예 최소 성량만 유지하고 산다. 대신 대체로 목소리가 큰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친구들에게 내 언어를 주입하길 좋아했다. 작가를 꿈꿨지만 기자가 된 것도 생각해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아니라 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망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내 아이를 만나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문틈으로 들여다보게 되는데이러한 깨달음이 부모의 절대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19살 이전에 아이 미래를 결정하려는 영재 강국의 분위기는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행복을 좌우할 부모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상담 과정에서 여러 번 경험했지만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미 형성된 내 욕망이 밖으로 뻗치는 것을 늘 경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아이가 연습을 하든 말든 내버려두지만 가뭄에 콩 나듯 바이올린을 잡는 날엔 가슴을 두근거리며 문틈으로 들여다보는 행동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딱 거기까지다. 아이가 아예 바이올린을 집어던지는 날이 와도 입도 뻥끗해선 안 된다. 하지만 마음속으론, 앤드루 솔로몬의 표현대로라면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듯한 커다란 실망”을 맛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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