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줄곧 불행을 하소연했고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죽음조차 무책임했던 아버지는 조금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 뒤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키운 홀어머니는 이렇게 열렬히 미워하다니. 사춘기 때는 “어머니는 아들 그 자체보다도 아들 속에 있는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한다”는 니체의 말에 남몰래 밑줄을 그었고, 좀더 커서는 이빨을 드러내고 엄마에게 덤벼들었다.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반복한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불만을 쏟아낸 다음 나는 왜 이렇게 됐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나란 인간,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상담은 공전됐다.
어느 날 식당에 갔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가족을 봤다. 가족은 한눈에 봐도 다운증후군인 아이를 가운데 앉혀놓고 하염없이 행복한 분위기였다. 아이는 양말을 벗어던지고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밥상을 엉망으로 만드는데 할머니·할아버지는 그 아이를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알뜰히 시중을 들어주었다. 엄마·아버지는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이상한 소리지만 내막도 모르면서 그 아이가 부러워서 눈물이 치솟았다.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를 기쁘게 하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날 엄마한테 이런 마음을 적은 편지를 썼다.
그러나 엄마한테 쓴 편지는 상담실로 가져갔다. 가족은 정말 이상하다. 서로를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질 못한다. 엄마가 이 편지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그땐 엄마와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상담자는 내 편지를 ‘애정 공세의 결정판’이라고 불렀다. 원망과 분노 뒤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 애정에서 졸업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상담자에게 우리 엄마가 너무 지나치게 씻지 않고 집 안을 잔뜩 어지르는 버릇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걸 ‘네가 뭐라고 해도 난 네 말 따윈 듣지 않겠다’는 엄마 특유의 고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증상을 듣던 상담자는 치매나 우울증을 걱정했다. 엄마를 설득해서 병원에 모셔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검사지를 받아왔다. 나도 예전에 받아봤던 다면적 인성검사(MBTI2)다. 서면 검사만으론 정확한 진단은 안 되겠지만 엄마의 정서 상태가 병증에 가까운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엄마가 적어놓은 답안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검사에선 보통 방어기제가 발동해서 검사받는 사람들은 적당히 거짓 답도 하다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무심결에 진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 비일관성, 숨기는 태도가 상태를 진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방어고 뭐고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싫어한다”-“예”, “나는 잘하는 것이 없다”-“예”, “가족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예”.
사실 우리 엄마는 겉으로 보기엔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보통 할머니다. 그런데 엄마의 속마음은 모조리 ‘자기 비하’ 항목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특히 아버지나 남편과의 관계에 절망적인 답을 내놓고 있었다. 그 답안지는 어렵게 태어난 자식이 딸이라고 며칠 동안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외할아버지, 술에 취하면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가 미리 작성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맙소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었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매 맞는 아내였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우울감은 좀 있지만 우울증은 아니라고 했다. 그나마 엄마 성격이 낙천적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정말로 엄마가 가련해 보였다. 연민이 미움을 녹였다.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생긴 것은 이 일 덕분이다.
“키우느라 빚을 졌다면 직접 갚으시라”아직 끝난 게 아니다. 엄마와 나 사이에 정산이 남았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추석을 앞두고 외국으로 나가버린 오빠 때문에 잔뜩 낙심해 있었다. 오빠나 아빠는 붙잡을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 딸에게 하소연과 짜증이 시작됐다. 분란의 종이 울렸다.
평소와 같은 말다툼이 오간 끝에 드디어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나에게 오빠를 책임지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엄마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중학생 때 사촌동생에게 몇 달 동안 공부를 가르쳐줬더니 작은아버지가 밀린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일이 있었다. 난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네가 크면 꼭 작은아버지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진심으로 후회했다.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을 해서 돈을 벌걸 그랬다. 앞으로 두고두고 빚까지 갚으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지만 빚진 건 없다, 우리를 키우느라 엄마가 주변에 빚을 졌다면 직접 갚으시라는 이야기까지 독하게 다 해버렸다. 보내지 못했던 편지는 말로 날아갔다.
“엄마는 변하지 않으실 거예요.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상담자는 오랫동안 묵혔던 말을 했던 나를 칭찬하면서도 여러 차례 당부했다. 상담과 치유는 아무리 봐도 주관적인 행위다. 어떤 의미에선 소통을 전제하지 않는 자기만족이다.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대신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내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결코 나와 같은 마음과 뜻으로 알아듣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상담받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뜻을 알아듣지 못해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노골적인 채무 독촉은 하지 않지만 엄마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도 그렇다. 엄마와 나를 동일시한 나머지 엄마가 자학하면 나도 자존감이 짓밟혀진 기분이 들고 그 때문에 또다시 엄마를 미워하던 내 버릇만 좀 달라졌을까.
엄마는 나와 이혼하지 않을 테니까나도 변하지 않았다. 일에 대한 과도한 불안, 아이에 대한 과잉 걱정으로 늘 피로 상태에 있던 나는 내가 동동거리는 꼴을 엄마가 팔짱 끼고 보고 있기라도 하면 그 모든 화를 엄마에게 풀었다. 그러고 나선 알코올중독자의 아침처럼 후회가 찾아왔다. 패륜아들의 심정을 안다. 죄책감이 분노의 연료가 된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내가 분노하는 대상이 과연 엄마인지 의심이 생겼다. 엄마에게 화를 내기 전에 이미 내게 일을 대충 미뤄두는 남편에게 화가 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 앞에서는 남편과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결심한 뒤 무슨 화든 일단 꿀꺽 삼켰다가 가장 만만한 엄마한테 뱉어내곤 했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엄마는 결코 나와 이혼하지 않을 테니까. 사람은, 나는, 스스로 생각했듯 그렇게 도덕적인 존재는 아니어서 비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분노를 엉뚱한 데 투척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화풀이를 그만두었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을 ‘가족 로맨스’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딘가에 이상적인 진짜 엄마가 따로 있지 않을까 공상한다. 우리 집은 엄마도 딸도 서로 이상적인 가족상을 포기하지 않는 가족 로맨스를 갖고 있었다. 어딘가에 예전에 착했던 내 딸이 있을 것 같다고 믿은 엄마와 고귀했던 어머니가 따로 있기를 바랐던 딸이 서로 싸웠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이 나를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로맨스를 막장 드라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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