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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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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아이를 맡기고 쇼핑을 가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세계에서도 ‘호구가 진상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진리… 을로 봉사하며 ‘나만 제일 힘들다’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쓰는 데는 이유가 있었으니
등록 2015-07-03 13:02 수정 2020-05-03 04:28

처음부터 그는 친절했다. 엄마들의 브런치에 가본 적도 없고, 카톡방에서 타이밍 맞게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직장 다니는 엄마들을 배려하는 인상이어서 만나기 전부터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 아이들의 단체 생일파티에서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때 그는 내게 자신이 방문판매 사원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엄마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보다 어린 나이의 그 ‘친절한 엄마’가 방문판매 같은 힘든 일을 한다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 아이와 한 반인 친구 엄마라는 사실 때문에 나도 친절한 마음이 생겼다. 그 엄마가 파는 주방도구 같은 걸 살 일이 있으면 꼭 그에게 사겠다고 약속했다.

나만 빼고 비누를 돌린 ‘친절한 엄마’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가 또래집단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나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용일 기자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가 또래집단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나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용일 기자

다음날부터 친절한 엄마는 매일매일 자신이 파는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왔다. 주로 그릇 세트나 프라이팬 세트 같은 걸 권했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였지만 그 엄마를 실망시키거나 무안하게 만들기가 싫었다. 수십 장의 사진 중에 낱개로 파는 냄비를 겨우 하나 발견하고 이걸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냄비 하나 가격이 무려 100만원에 가까웠다. 깎아주겠지. 설마 같은 반 아이 친구 엄마한테 그 돈을 다 받을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빅딜’이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빅딜은 입금을 마친 다음에야 찾아왔다. 친절한 엄마는 내가 거래를 끝낼 기색을 보이자 갑자기 여태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상품 사진을 보냈다. 지금 세일하는 그릇들이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고 로비를 했고, 이 친절한 엄마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한 장사를 했던 것이다. 남편 눈치도 보이고 해서 더 이상은 살 수 없다고 발을 빼자 친절한 엄마는 친절하게 “택배로 받으시면 착불”이라며 거래 종료를 알렸다. 덤으로 나중에 다른 엄마에게서 친절한 엄마가 나만 빼고 다른 엄마들에게 비누를 한 장씩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는 법이 아니다.

“우월 콤플렉스와 열등 콤플렉스는 결국 한가지”

나의 호구 짓은 이걸로 그치지 않았다. 친구들이 낯설고 학교 생활이 서투른 1학년 딸아이를 도와주고 싶었던 나는 회사일을 쉬는 토요일에 아이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미안해서 어쩌냐며 거들겠다는 친구 엄마들을 손사래를 치며 밀어냈다. 걱정 마시고 어디 쇼핑이라도 가시라며 삼월이를 자처했다. 식사와 놀거리 제공에다 돌아갈 때는 작은 선물까지 쥐어주며 어린이 4명을 향응접대 풀코스로 모시길 3번쯤 했더니 아이들은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엔 한 달에 1번 만나던 아이들은 나중엔 2주에 1번씩 만났다. 모이는 곳은 항상 당연히 우리 집이었다. 친구 엄마들은 이제 아이를 우리 집에 맡기고 정말로 쇼핑을 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때가 지나도록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 엄마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내겐 ‘토요병’이 생겼다. 그들은 원래 아주 상식적이며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건 내가 벌인 일이다. 호구가 진상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진리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우리 아이가 또래집단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나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좋기만 한 친구, 나쁘기만 한 친구란 없다고 타이르거나 친구가 너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칠 때마다 이건 거울을 보고 스스로 다짐하는 기분이었다.

또 나들이를 가거나 축구팀을 짜면서, 체험학습을 같이 다니면서 내 사회성은 수시로 시험대에 올랐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관계맺기는 인간관계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았다. 아이들은 우정에 눈뜨고 친구 맛을 알아가는 시기지만 덤으로 엮여 다녀야 하는 어른들 사이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친구’라고 하면 함께 논다는 뜻인데, 엄마들끼리 친구가 되려면 ‘육아 놀이’를 잘해야 한다. 아이 키우는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친밀해지는 사이도 분명 있지만, 교육 경쟁 속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엄마 친구 관계는 공감보다는 비교, 경청보다는 탐색이 지배하며 망가지기 십상이었다.

실용적 사이라고 나쁠 건 없다. 돌아보면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우정을 배워야 할 아이의 입장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함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어른의 입장을 구분하지 못했던 나머지 호구 노릇을 했다. 마치 내가 너그럽게 친구들을 수용하는 아이인 것처럼, 친구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이인 것처럼 판을 벌였던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아이 친구 엄마들과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자고 제안했거나 너무 비싼 물건은 살 수 없다고 부드럽게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사실 내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는 항상 ‘을’로 처신해온 나만의 심리적인 관성이 있다.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 심리학을 빌려 “우월 콤플렉스와 열등 콤플렉스는 결국 한가지”라고 지적한다. 강한 열등감을 추구하는 열등 콤플렉스나 과도하게 우월성을 추구하는 우월 콤플렉스 모두 남의 시선에 목숨 건다는 것이다. 을로 봉사하며 ‘나만 제일 힘들다’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을 몰라주거나 자신만큼 노력하지 않거나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우월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이렇게 착하게 행동하는데 다른 사람은 왜 그렇지 않을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할까 따위의 질문을 버렸다.

피해의식을 유지하려는 심리적 관성을 완전히 버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적어도 아이 친구 엄마들을 상대로 봉사정신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배운다고 하더라도 호구로 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서로의 이익을 도모할 줄 아는 게 어른이라는 점에서 아이 친구 엄마들을 대하는 법을 익히고 나니 어른이 된 듯했다.

시어머니가 3천만원 들여 얻은 교훈

그런데 학부모 역사에서 이런 호구 엄마들은 늘 존재해왔던 듯하다. 100만원짜리 냄비를 사고 나니 불현듯 시아버지가 늘 시어머니를 비난했던 기억이 났다. 우리 시어머니는 30년도 더 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아주버님의 반 친구 엄마에게 거의 전세금이 될 만한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그 일로 시아버지가 두고두고 자신을 원망할 때마다 “세상에 자식 팔아서 사기를 치는 여편네가 있더라고. 내가 그 뒤론 아무리 아들과 친해도 그 집 어른들과는 딱 거리를 두지” 하고 쓰게 입맛을 다시곤 했다. 시어머니가 3천만원 들여 얻은 교훈을 나는 100만원으로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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