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상담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봐도 이젠 기쁘지가 않아요.” “어떡해요, 죽는 게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 늦은 봄, 심리치유기업인 마인드프리즘에서 진행하는 직장맘 공개상담 자리였다. 내가 개인적으로 받던 상담에서 나는 “궁지에 몰린 느낌”을 호소하곤 했는데 거기 50명의 궁지에 몰린 엄마들이 있었다.
ㄱ씨는 퇴근할 때마다 자신이 지하철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 실종되는 상상을 한다. 집에 가면 낮 동안 돌봐주지 못한 아이에게 미안하고, 대신 아이를 봐준 시부모님에게 미안하다. 아니 미안해하는 의례를 거쳐야 한다. 정작 자신에겐 미안할 여력이 없다. ㄴ씨는 남편이 부부의 재산과 시부모님 집까지 담보로 잡혀 주식에 손을 댔다가 크게 잃는 바람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무력감에 빠진 남편과 시댁을 대신해 매일 전쟁하듯 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운다. 아무리 갚아도 빚의 자릿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렇게 일해도 어차피 아이들을 넉넉하게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마저 늘 엄마에게 굶주린 아이들로 만들고 있다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는 ㄷ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이 든다. 아이를 봐주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만둔 뒤,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만 돌아와보면 아이를 챙겨야 할 엄마 몫은 고스란히 남아 있기 일쑤다. 어쩐지 요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울어도 모른 척하고 몇 시간 동안 소파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때가 있다. ㄹ씨는, ㅁ씨는….
자기 비하, 무력감, 고립감과 분노…. 감정 상태를 두고 계급을 나눌 수 있다면 일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감정적 천민이다. 일하는 여성은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낮은 처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에게 적대적인 사회는 어머니에게도 적대적이기 때문에”(책 ) 그렇기도 하다.
다른 이들의 감정 토로를 들을 때마다 뇌와 눈물샘이 맹렬한 공감 신호를 울렸다. 나는 딸과 일이 늘 양쪽에서 내 팔을 찢어져라 잡아당긴다고 생각했다. 야근이 잦은 엄마 때문에 속상했던 딸은 “엄마가 오기 전엔 집에 가지 않겠다”며 저녁이면 아무도 없는 미끄럼틀에 숨어 있기 일쑤였다.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도 아이는 엄마가 자기 곁을 떠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 철저히 실천했다. 가끔은 내 딸의 애정에 감동하고 가끔은 그 물 샐 틈 없는 전술에 절망했다. 주말이면 노동운동을 하는 남편이 선수를 쳤다. 남편이 시위하러 나가버리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데리고 일하러 가야 할 때가 많았다. 취재하는 동안 아이를 어디에 둬야 하나. 차 트렁크에 넣어둘까, 차 위에 올려둘까. 아이를 차에 태우고 가면서도 대책이 서지 않았다. 문득 남편이 시위하고 있다는 서울역 광장을 지나면서 이 차가 광장으로 돌진하는 상상을 했다. 나는 멀리서도 분명 남편을 알아보고 정확히 깔아뭉갤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서 몸을 떨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헤매던
어머니가 되면서 신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게 됐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릴 때 정신없이 기도하고 나면 열이 내렸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맑고 선명한 아이 눈동자 속에 스쳐가는 복잡하고 오묘한 빛깔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아이를 재울 때나 아이가 아플 땐 경건해지고, 건사하기가 힘에 부칠 땐 짐승처럼 분노했다. 그런데 엄마들을 위한 신은 어디 있는 걸까, 가끔 궁금했다. 다른 사람을 구조하고 지원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지원노동자’라고 한다. 육아는 사적으로 일어나는 지원노동이다.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원노동자에겐 지원이 필요하다. 개인상담이 진행되면서 무섭게 극단적이고 분열적이었던 나는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않는 방책을 궁리하게 됐지만 그나마도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상담이 아니라 지원으로 구출해야 할 어머니들이 있다.
내가 만난 어머니들 중 가장 궁지에 몰렸던 어머니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ㅎ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데 전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상담하느라 자신의 아이는 돌아볼 수 없었다. 아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날이 한 달은 된 것 같았다. 직장맘 공개상담이 있던 날, ㅎ씨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이 ㅎ씨를 만나자고 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하니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헤매던 ㅎ씨는 이곳 상담실에 와서 급한 비명을 쏟아냈다. “안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내 아이는 어떻게 하나요.” 상담을 진행하던 정혜신 박사는 마이크를 놓았다. 다른 50명은 따라 흐느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6개월쯤 지나서 다시 정혜신 박사가 진행하는 공개상담 자리에서 비슷한 슬픔을 만났다. 서울시 여성소방관들이 모인 자리였다. 남자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한다면 여자 소방관은 대부분 구급차를 탄다. 소방관 ㄱ씨는 어느 날 어린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현장에 출동했다. 그 순간 오늘도 혼자 학교에 갔을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날 아이를 집에서 만나 숨이 막히게 끌어안았다. “내가 소방관인데 환자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에 쫓기는 것이 미안해요. 하지만 엄마·아빠가 소방관인 우리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요.” 밤에 구급차를 타는 소방관 ㄴ씨는 오후 4시쯤 두 아이를 두고 출근한다. 남편이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빈집에서 9살 큰아이가 5살 동생을 돌봐야 한다. 하필이면 어느 날 ㄴ씨는 출동을 나갔다가 어른이 없는 집에서 사고가 난 두 아이를 수습해야 했다. 사고가 난 아이들 모습 위로 자꾸만 자신의 아이들이 겹쳐졌다. 내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내 아이들은…. 집 안팎으로 지원노동자인 여자들에게 ‘내 아이는 어떡하냐’는 질문은 절박했다. 십수년 동안 소방관 일을 해온 고참 여자 소방관들은 “대책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괜찮기를 기도하면서 견뎌라”고 했다. 더 이상 이 어머니들의 슬픔에 토 달기를 포기한다.
*글에 나온 집단상담 사례는 모두 처지와 내용을 조금씩 바꾸었습니다.N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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