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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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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건 아이일까, 어린 시절 나일까

딸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아이를 집에서 잘 보살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학부모가 되면서 내 학교 징크스는 완성되었으니
등록 2015-04-02 16:05 수정 2020-05-03 04:27

3월, 부모들이 병아리로 변신할 시간이다. 지난해 이맘때 나도 아이를 초등학교에 들여보내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입학식에 이어 열리는 첫 번째 학부모총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 교실 우리 아이 자리에 앉았노라니 내 초등학교 시절의 온갖 트라우마가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묵은 기억에 사로잡힌데다 조금 전 사고까지 친 늙은 엄마는 병든 닭처럼 모가지를 드리우고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엄마들은 하나같이 8살 아이 못지않게 눈을 반짝이며 발표도 잘하는데 나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게 다였다. 30년 전처럼.

온 세상이 내 불행을 위해 합작한 날

그날 아침 옷 입고 머리 만지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왜 나는 집을 나서기 직전 가방 바깥주머니에 담배 한 갑을 넣었을까. 왜 그날 하필 비가 내렸고 왜 담임선생님은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었을까. 이건 온 세상이 내 불행을 위해 합작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니다, 백팩 멘 사람들을 규탄하는 ‘지하철 논쟁’이 옳았다. 백팩이 유죄다.

참관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나갈 때였다. 나는 1학년 30명 속에서 우리 아이 얼굴을 찾느라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비옷을 챙겨주려고 내 뒤쪽에서 분주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서 째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걸렸어요!” 내 가방 주머니 지퍼와 담임선생님 옷이 한데 엉켜서 가방 주머니가 열려 있었다. 소리를 지른 엄마가 누군지, 교실 뒤편에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서서 내 가방에서 담배가 반쯤 튀어나온 것을 봤는지, 나는 모른다. 눈앞이 갑자기 침침해졌고 담배를 가방 속으로 밀어넣으며 지퍼와 선생님 옷을 떼서 상황을 수습하는 손도 노인처럼 떨리고 둔했다. 담배를 들켜서 신나게 두드려맞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지금쯤 모두 정신을 차렸으리라. 이 나이에 그 무섭다는 같은 반 학부모와 담임선생님께 이런 꼴을 보이고 사는 나란 여자, 나란 엄마, 도대체 넌 누구냐.

자책감이 너무 커서 아무에게도 이 일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던 상담실에 가서야 원없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딸을, 아니 나를 집에서 잘 보살핀 듯한 여자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꿈이 산산이 깨졌다.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식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완성하려는 이런 사례는 상담자들이 딱 좋아하는 주제지만 고맙게도 나의 상담자는 그날만큼은 질문을 멈추고 다른 학부모 내담자들이 초등학교 부모가 되었을 때 삽질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날 상담자가 하지 않은 질문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떤가요?”

그즈음에서는 나도 조금씩 아이와 내 운명을 분리하고 있었다. 상담 초기엔 내가 어릴 적 살던 가난한 집에 아이와 함께 누워 있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들어서면 바로 찬장과 아궁이, 하수구가 있는 곳이 부엌이었고 부엌과 맞닿은 손바닥만 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돌아눕지도 못하고 잠을 잤다. 밤중에 잠이 깨면 혼자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가기 무서워 나는 다 크도록 몰래 부엌에 오줌을 쌌다. 꿈속에서 방은 기울어져 있었고 내가 오줌을 쌌던 하수구는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그 하수구로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 집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무게로 나를 누르지 않았다. 아이를 업고 안고 끼고 다니는 꿈도 줄어든 참이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위력은 10개월 상담의 성과를 지울 만큼 강력했다.

초1과 신입사원, 자존감이 가장 낮은 때

미국 아동심리 전문가인 매들린 러빈은 이란 책에서 부모들은 어릴 때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투사하고 아이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다른 엄마들의 두려움도, 듣다보면 대체로 자신의 경험이기 일쑤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낄 만한 체벌을 당했던 부모는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내 친구는 지금 자기 아이를 지나치게 보살피면서도 늘 뭔가가 부족하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 1살 일찍 입학했던 또 다른 친구는 늘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다. 나는 그리 가난하지도 않고 오빠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우리 아이를 두고도 늘 가엽고 불안했다. 내가 불쌍하고도 불안하게 여겼던 것은 과연 우리 아이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나일까?

물론 정서적으로 건강한 부모라도 초등학교를 두려워할 만하다. 모든 아이들은 공교육에 들어가면서 표준화된 시험 결과와 서열화에 상처를 입는다. 성과와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아이들이 느끼는 정신적 압박이 더욱 심하다. 사석에서 만난 한 정신과 의사는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 때와 신입사원 때 자존감이 가장 낮아진다. 어린 나이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일이 없으려면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2006년 경기대학교 황혜정 교수가 조사해보니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의 24%가 공부에 대한 압력으로, 8%는 부정적인 자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2005년 미국건강교육협회 조사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많다고 답했다. 가족이나 친구 문제보다도 경쟁과 서열화가 치명적인 공교육의 세계에서 부모의 심리 안정 따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가 어떤 식으로 불안에 맞서는지는 아이에게 중요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늘 위태했던 내게 불안을 이기는 가장 좋은 벗은 징크스였다. 신나게 학교로 오다가도 교문 앞에 그려진 선을 밟지 않도록 깡충 뛰어넘었다. 예전에 그 선을 밟은 날 교실에서 창피를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은 선생님들이 이유 없이 화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부잣집 외동딸 같은 친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온 날은 공연히 망신살이 뻗치기 쉽다. 이 모든 징크스를 종합하면 학교는 지뢰밭이니 어깨를 움츠리고 살살 걸어다니라는 것이다.

잘 보이려 애쓸수록…

총회 다음주에는 담임교사와 학부모들의 개별 상담이 있었다. 역시 처음 학부모가 된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는 자리다. 지난번 담배 사건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과 그사이 선생님이 내 얼굴을 잊었길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마지막 징크스를 깜빡하고 제일 좋은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심지어 동네에서 스케일링을 제일 잘한다는 치과에 가서 치석까지 말끔히 제거하고 학교로 갔다.

촌지나 선물은 일절 받지 않는다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좋은 분이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사이에 아이의 좋은 점을 일일이 알고 있었고, 말끝마다 “잘 가르치겠다”고 고개를 숙이는 통에 같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상담을 마치고 나오다 화장실에 들렀다. 문득 웃는 얼굴로 거울을 보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까 격렬한 스케일링을 받았던 입이 피를 머금고 있었다. 치석이 빠져나간 잇몸들은 28개의 치아에 고드름 같은 피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활짝 웃으며 다가앉을수록 선생님은 움찔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던 것도 같다. 아아, 학부모가 되면서 내 학교 징크스는 완성됐다. 나란 인간,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쓸수록 불운이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노력하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야 하느니라. 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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