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어린이로서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는 어른의 욕망을 담는 그릇 처지에 놓이기 쉽다.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어린이를 돌보는 공동체는 희소하다.
어린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데는 품이 든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아버지’ 야누쉬 코르착이 어른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권리’라는 말로 어린이 사랑법을 정리한 이유다. 폴란드의 유명 의사이자 문필가, 교육자였던 코르착은 20세기 초 어린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기 위한 렌즈를 제공했다. “어린이는 본래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이는 ‘내일의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코르착은 “내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 아이를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만들고 놀라게 하고 화나게 하거나 흥미를 주는 것을 사소하게 여긴다. 아이가 이해하지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내일을 위해 사람들은 인생은 길다며 아이들을 속인다”고도 썼다.
그는 어른 중심 관점에서 어린이와의 관계를 미화하는 일을 경계했다. “나는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애정 깊고, 어리석으며, 정말 친절한 관계라는 잘못된 착각을 가지고 결국에는 중단하게 되는 것 대신에 사람들이 어린이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보기를 요구한다.” 차라리 “어른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의지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게 낫다고 봤다.
직접 실천했다. 그는 1912년부터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고아원을 운영하며 어린이들과 함께 살았다. 고아원을 ‘어린이공화국’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공화국’이어서, 법을 만드는 의회가 있고 법을 구현할 법원이 있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1천 개의 법조항 대부분은 용서와 무죄에 관한 것이지만, 마지막 조항은 피고인을 고아원에서 추방하는 내용이었다. 코르착은 어린이를 낭만화하지 않았고 자신이 우상화되기도 원치 않았다. 코르착도 어린이들의 고발로 재판을 받고 벌을 받았다.
1940년 고아원은 위기를 맞는다. 코르착과 어린이들은 게토(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강제 격리한 거주지역)로, 강제수용소로 옮겨가야만 했다. (청어람아이 펴냄)의 지은이 이렌느 코앙-장카(글)와 마우리치오 A. C. 콰렐로(그림)는 바로 이 시기를 그림동화로 보여준다. 역사가 퇴보하는 광기와 야만의 시대에도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던 코르착과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살아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토의 식량이 떨어지고 거리에 주검이 널브러진다. “독일 군인들은 유대인 아이들이 자라는 걸 바라지 않아요.” 어린이들은 안다. 그래도 코르착과 어린이들은 히브리어 공부를 하고 시를 배우고 음악극을 공연한다. 게토와 강제수용소로 이동할 때 행진조차 곧다. 한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는 코르착에게 혼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가증을 내밀었지만, 코르착은 어린이들과 함께하길 택한다.
1979년 코르착 탄생 100주년, 세계 아동의 해코르착과 어린이들의 삶은 강제수용소에서 끝났지만, 어린이의 권리를 지키려는 이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줬다. 유엔은 코르착 탄생 100주년을 기려 1979년을 ‘세계 아동의 해’로 지정했고, 10년 뒤인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한다. 협약은 코르착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글은 (유니세프), (이은경)를 참조했습니다.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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