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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의 얼굴을 대면하라

‘세월호 참사’ 1년을 인문학·철학적으로 사색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등록 2015-04-18 18:16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참사 1년을 맞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약속했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책은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전남 진도 앞 바닷속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이 남아 있다. 1년, 그렇게 슬픔의 시간만 흘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안산시 하늘공원에서 ‘잊지 않을게’라고 적힌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안산시 하늘공원에서 ‘잊지 않을게’라고 적힌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정용일 기자

‘애도’를 ‘비애도’로 매개한 자들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나온 (현실문화 펴냄)은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천정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등 인문사회학자 13명이 세월호 참사가 불러온 인문사회학적 충격을 되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성찰한 책이다. 그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어떤 사유와 실천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4·16 이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최소한의 의무”(홍세화 가장자리협동조합 이사장의 ‘여는 글’ 중에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반의반의 주권’, 국가의 무책임, 사회적 연대가 결여된 한국 시스템의 결과다.” 김동춘 교수는 ‘국가 부재와 감정정치’ 편에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국가 부재의 원인을 안보/전쟁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가 결합된 국가 형성·전개의 역사적 조건에서 찾는다.

천정환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수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 내부의 적대와 어두움에 메스를 든다. ‘애도와 공감’을 ‘비애도와 반공감’으로 인위적으로 매개한 한국 사회의 매개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고. 천 교수는 “우리가 4월16일부터 지금껏 본 것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의, 한 나라를 이루는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지극한 슬픔과 공감하는 애도만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되는 비공감과 적대였다”고 지적한다. 감정을 정치로 매개한 대통령이 있으며, 모든 가치에 대해 혐오와 모멸을 생산하는 포스트모던한 감정의 전파자 ‘일베’가 있고, 일베를 방치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얻는 ‘보수우익 세력’이 있다. 또 비공감의 코드와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구성한 보수언론과 여당도 있다.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야기의 묵시’ 편을 쓴 노명우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 전광판 숫자로 만들려는 비애도와 반공감’ 세력들의 ‘사건화’를 경계하고 “희생자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희생자의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얼굴을 발견하고 희생자의 그 얼굴과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세월호 이후’의 과제는 무엇일까? 천정환 교수는 “공동체의 감각, 즉 ‘공감’을 회복하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꼽는다. 공감이 인위적 노력에 의해 비공감으로 전환된 것처럼, 공감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건 이후의 인간학’ 편을 쓴 국문학자 권명아씨는 광주항쟁, 경남 밀양 송전탑 투쟁,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투쟁 등 장기 투쟁의 역사를 살피며, 지난한 싸움에서 일궈낸 수치에 대한 저항의 한 형식인 ‘혼의 투쟁’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망각’이 아닌 ‘기억’으로

(이학사 펴냄)도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뼈아픈 물음을 되짚어보고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철학의 눈으로 성찰한다. 지은이 이충진은 “세월호 침몰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국가”임을 폭로한 것이라며 “세월호 ‘옆’의 국가는 무력했고 세월호 ‘앞’의 국가는 부자유와 불평등의 원천이었으며 세월호 ‘뒤’의 국가는 무심했다”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걸어갈 ‘세월호 이후’의 길을 찾는다. ‘외면’이 아닌 ‘대면’으로, ‘망각’이 아닌 ‘기억’으로 ‘세월호의 이후’를 만들자고 말한다. ‘지금 여기’의 철학에 대해 질문하는 게 과제 해결의 출발점이며 세월호 이후를 우리의 건강한 미래로 만들 때 비로소 세월호의 슬픔을 진정성 있는 슬픔으로 보존할 수 있다고.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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